식민사학이 아직도 판치는 이유

한겨레신문 2008.08.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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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연구보다 일본 주장 받아쓰기 바빠
한국 고대사학계 향해 신랄한 비판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이희진 지음/소나무·1만2000원
 
 

몸담은 지 15년 되어가는 한국 고대사 학계를 지은이는 ‘복마전’ ‘지식 사기’ ‘파렴치’ ‘깡패 짓’ 같은 말로 묘사한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책 날개의 지은이 소개에는 “고대 한-일 관계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면서 대한민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미천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적었다.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는 <거짓과 오만의 역사> <전쟁의 발견> 등의 저서를 통해 한-일 관계 고대사의 왜곡을 지적해 온 소장사학자 이희진 박사(서강대)가 “아직까지” 한국 고대사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학의 과거와 현재를 파헤친 책이다.

 

그가 얘기하는 식민사학의 논점은 간단하다. “조선인은 열등한 민족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남의 지배나 받고 살아왔다. 당파성이 강해서 자기들끼리는 단결도 안 되고, 나라를 운영할 능력도 없다. 이런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된다.” “고대에는 나라의 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허약한 집단들이 중국·일본 지역의 세력에게 허구한 날 지배와 압력을 받으며 비굴하게 연명해 왔다.”

 

지은이는 이러한 식민사학의 뿌리를 일본의 황국사관에서 찾는다. 황국사관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이전 일본이 천황 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려는 목적으로 서술한 역사를 말한다. “일본의 기득권층은 한국을 지배하고자 식민사학을 만들기 훨씬 전에, 자기네 백성을 조종하려는 역사부터 만들어낸 셈이다.” 식민사학은 이러한 황국사관에 기대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사이비 역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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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쇼토쿠 왕자(574~622)와 두 아들. 일부 학자들은
이 그림에 나타나는 의복이 백제 문화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소나무 제공
 
일본의 고대사 부분 식민사학의 계파는 두 갈래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를 정복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말은 허무맹랑함이 도를 지나쳐 일본에서도 믿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에 반해 “천황에 대한 신앙고백”과도 같은 <일본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던 쓰다 소키치는 현재까지 일본 고대사학계에서 주류로 통한다.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의 식민사학이 뿌리박고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철저한 사료 비판을 앞세운 쓰다의 실증사학은 “남들에게 내세우지 못할 만큼 창피할 정도의 과장과 왜곡을 스스로 걸러내는 척이라도 하자는 취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일본서기>의 일부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 다른 사료를 끌어들이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철저히 무시해 한반도의 고대 국가 건립 연대를 늦춘 그의 주장을 국내 원로 식민사학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들 덕분에 쓰다는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한 ‘양심적인 학자’”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해방 뒤 한국 고대사학계를 장악한 이들의 주장이 쓰다 소키치의 억지 학설을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해방된 대한민국에 어떻게 식민사학이 남아 있을 수 있나?’ 이 지점에서 국내 고대사학계에 대한 지은이의 신랄한 비판이 시작된다. 해방 뒤 식민사학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고대사학계의 역사는 명백한 ‘자기기만’의 역사다. 원로 식민사학자들을 정점으로 ‘학파’라는 이름의 ‘패거리’가 형성된다. 거의 교주-신도의 관계와 다름없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참신하고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리 없다. ‘이러이러한 것이 잘못됐다,

 

다루어야 할 것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 원천봉쇄된 ‘강단 사학’에는 “연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아 일본 논문을 티 안 나게 일삼아 베낀다. ‘표절’과 ‘재탕’이 만연한 학계는 식민사학을 ‘정설’을 넘어선 ‘정통’으로 굳힌다.

‘검열’이 되어버린 학술 논문 심사, 학계 기득권층과 야합하는 학술기관들, 패거리 문화를 굳히는 ‘학술지 등급제’ 등등 “한 번 얽혀 들어가면 결국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연해 있다고, 지은이는 책장 밖으로 침이 튈 정도로 비판한다. “못다한 얘기가 많다”고 끝을 맺는 지은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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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가 어떻게 돌아가기에 아직 식민사학을 들먹어야 하는냐고 시비를 거는 자가 있다. 학계 속사정을 모르거나 알려지기는 꺼리는 부류가 이런 시비를 걸고 싶어 한다. 지금도 일제시대 버금가게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이러한 통제가 없다면 굳이 식민사학이라는 데에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 현실이라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식민사학적 논리가 활개치는 이유는 그런 논리를 심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논리가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대한민국이 일본에게서 해방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식민사학을 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는 무엇 때문에 그런 자들을 제거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식민사학을 심을 수 있을 정도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는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혹자는 이쯤에서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일부가 그렇고 그런 이유로 식민사학의 추종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만 해도 몇 개이며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고대사 연구자가 몇 명인데, 그 많은 사람들이 찍소리 없이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논리에 따라가 주었겠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만 가지고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일반적인 상식이 통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대사학계 내부에서는 알면서도 말을 할 수 없는 공공연한 비밀일 뿐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행태는 정평이 나있다. 알지도 못하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필자가 몸담은 지 15년이 되어 가는 고대사학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대사학계는 기득권층의 횡포가 심한 편에 속한다. 적어도 한국 역사학계만 놓고 보아도 다른 시대에 비해 훨씬 심하다.

 

복마전’‘지식사기’‘파렴치’‘깡패 짓’. 일반적으로는 점잖은 분야에서 금기(禁忌)로 여기는 흉칙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고대사 학계 내부에서 벌이지는 행각을 표현하기에는 양이 차지 않는 말이다. 흉기나 주먹을 쓰는 것만 깡패짓이 아니다. 정당하지 못한 수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핍박해서 이익을 챙기는 행각을 깡패짓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어떤 수법이 동원되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 때문에 반기(反旗)를 들지 못하는지도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다.

 

한국고대사에 침투한 식민사학적 논리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어 비판할 수 있는 집단은 뭐니뭐니 해도 고대사를 전공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식민사학적 논지에 왜 함부로 비판을 해대지 못하는지, 심지어 그런 논리를 심는데에 가세하게까지 되는지가 핵심적인 문제일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어떤 분야이건, 학술적으로 문제가 많은 학설은 같은 분야 연구자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게 정상이다. 학술논문의 성격을 감안해보면 원칙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학술논문은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하나는 남들이 전혀 손대지 않은 내용을 다루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잘못한 점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사 분야 같은 경우는 뒤의 경우가 많은 게 정상이다. 논문의 기반이 되어야 할 기록이 적으니, 다른 사람이 제시한 설과 다른 설을 제시하며 자신의 연구성과를 쌓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지금까지 끌어오던 논지와 반대로 들릴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의 학설을 비판하면서 업적을 쌓아 나아가야 한다면,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학설사 정리하는 김에 식민사학으로 쩔은 학설 한 번 신나게 까주면서 업적 쌓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제정신이 있는 연구자들이 자기 업적 쌓을 때마다 식민사학은 신나게 얻어터질 법하다. 하지만 그 정상적인 길을 간단하게 봉쇄해버리는 수법이 있다. 그게 바로 심사라는 것이다.

 

물론 학술 논문에 대한 심사 자체는 뭐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명색이 학술지인데, 아무 말이나 제멋대로 지어냈을 수도 있는 학설을 전문가들이 한번 걸러내지도 않고 대충 찍어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심사는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당연한 과정을 두고 검열운운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과정마저 괴물로 바꾸어 놓는 게 현실이다. 건전한 상식으로만 생각하자면 이러한 현실이 이해하기 어려울 지 모르겠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심사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면 심사가 왜 검열이라는 괴물로 둔갑하게 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흔해 빠진 학술지 게재 논문의 심사구조부터 보자. 학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학술지에 실을 논문은 딸랑 2 내지 3명의 심사위원이 심사라는 것을 한다.

 

학회마다 다르다는 전제가 또 붙기는 해야겠지만, 여기서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 많지도 않은 두세 명의 심사위원 중 하나만 제게 불가 등급인 D를 주면 그 논문은 다른 심사위원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끝장이 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한 놈한테만 제대로 걸리면 그대로 볼 장 다 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를 의식할 필요가 없을 만큼 심사의 공정성은 보장될 수 있을까? 개뿔이나.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 자체에 매우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극단적으로는 같은 논문을 두고 최고 점수인 A와 불합격 등급인 D가 동시에 판정되는 일도 있다. 아무리 사람마다 판단기준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런 정도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최소한 이 자체가 누가 심사를 하느냐에 따라 연구자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게다가 탈락시키는 기준도 제멋대로다. 어떤 경우에는 D가 나와도 두 번 세 번, ‘재심(再審)’이라는 것을 거쳐 실어주기도 한다. 반면 밉게 보인 놈은 두명의 심사위원에게 BC를 받고도 게재불가 판정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또 있다. 공정함이 보장될 수 없는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심사위원의 권리를 철저하게 보장해주는 데에서 나온다.

 

물론 심사위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아가며 해야 하는 심사라면 이 자체가 공정하지 말라는 처사니까. 소신껏 심사할 권리를 보장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심사위원은 원칙적으로 비밀에 부쳐진다.

 

그런데 세상에는 보장해준 권리를 악용하는 것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불급(過不及), 즉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

 

심사는 당연히 그 분야에 관련된 다른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경쟁자라는 뜻이 된다. 앞으로 누가 살아남을 지 모르는 험악한 풍조에서 경쟁자에게 뒤탈 없이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에 유혹을 느끼지 쉽다. 솔직히 공정하기가 어려운 입장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생살권(生殺權)을 쥐어주는 꼴이다.

 

이 장면에서 논문을 제출한 당사자에게 반론할 기회를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효가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무리 반론을 열심히 써서 학회에 보내봤자, 그것은 다시 심사했던 작자들에게 간다. 반론을 보고 아 내 생각이 짧았구나라며 다시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해피엔딩이 주로 일어난다면 지엽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해 볼 법도 하다.

 

문제는 현실이 그러한 기대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양심이라는 말을 들먹이기 미안할 만큼 먹물통의 똥고집은 유명하다. TV로 중계되는 공개 토론에 나와서도 남이 무슨 말을 하건 귀 틀어막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작자들 본 사람 많을 것이다. 그만큼 독선이 판을 치는 게 먹물통 세계다.

 

수백만의 시청자가 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데, 보는 사람 몇 되지도 않는 심사를 양심적으로 한다? 남에게 되지도 않는 생트집을 잡은 작자들이 남의 말을 찬찬히 살펴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 볼 양심이 있을 리 없다. 그럴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파렴치하게 트집을 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반론을 제대로 읽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것 같다. 무슨 반론이 있더라도, 그저 자기 했던 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해버리면 그만이다. 그게 고대사학계 상당수 심사위원들의 심보다.

 

또 그렇게 해도 심사를 했던 자에게는 별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파렴치하게 심사를 해도 취할 수 있는 조치에 한계가 있다. 고작해야 그 녀석에게 다시 심사 맡기지 말라는 정도가 제재라면 제재이다. 당사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도 않는다. 어차피 제재 같지도 않은 제재가 오래 가지도 않으니까. 회장 바뀌면 그걸로 그만이다.

 

딸랑 두세 명에게 남의 장래를 좌우할 생살권을 쥐어주고 아무 책임도 묻지 않는 꼴이다. 그것도 장래 경쟁자가 될 후보의 운명을. 칼자루를 쥔 망나니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봉착하는 학회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좋은 게 좋은 거니 대충 보고 실어주자는 쪽이다. 상당수의 학회가 그나마 버티는 것도 이런 융통성덕분인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말할 필요도 없이 누가 피해를 보건 말건 나 몰라라 하고 팔짱을 끼어 버리는 쪽이다. 고대사학계는 이런 경우가 많다. 덕분에 고대사 분야에 있어서는 학회를 운영하는 사람이 황당할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도 처참한 학살극이 벌어지는 바람에 학회지를 유지할 만큼의 논문조차 남아나지 않는, 웃지 못할 경우까지 있으니까.

 

이런 사정을 학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정말 모른다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뜻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왜 악착같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제도를 유지하려 할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미있는 것 몇 가지만 짚어보기로 한다.

우선 단 한 놈만 마음먹으면 아무나 매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누구에게 유리할 지 생각해보면 왜 이런 시스템을 고수하고 싶어하는지 쉽게 짐작이 갈 수 있다.

 

현 시스템에서 유리한 쪽은 당연히 패거리가 많은 쪽이다.

심사위원 중 하나 정도는 압도적인 숫자를 확보한 패거리 중에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니까.

 

좋게 말해서 영향력이 큰 파벌에 힘을 실어주게 되어 있다.

고대사학계만 하더라도 그게 어떤 집단인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패거리가 많아도 모든 심사에 들어갈 수도 없고,

심사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조리 파벌의 이익으로 심사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른다.

이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또 누구의 논문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심사를 하는데,

어떻게 심사가 검열의 역할을 하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얼핏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면 그야말로 속 모르는 소리다.

 

뒤의 것부터 보자면 속사정은 이렇게 된다.

좁은 학계에서 몇 되지도 않는 선수들끼리 서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는 점만 알면

사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또 그렇게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만이다.

사실 누군지 정확하게 알 필요도 없다.

 

무식하게 구별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전쟁터에서 그러하듯, 우리편 아니면 다 적이라고 간주해버리면 간단하다.

쉽게 말해서 자기 패거리 학설과 틀리면 무조건 D를 주어 버리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앞의 사정까지 설명해준다.

힘이 있는 패거리는 굳이 논문 하나하나 신경 써가며 짓밟을 필요가 없다.

본보기로 한 놈만 패는 걸로 충분하다.

이 수법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예를 들어 보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앞에서 굳이 초기 기록문제에 대한 식민사학의 영향을 거론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계제 불가 판정을 내리는데 아무리 형식적이라도 이유는 붙어야 한다.

그 명분으로 즐겨 쓰는 메뉴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이용했다!

 

학술지에 실을 수도 없는 수준의 논문을 제출했다는 것은 연구자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런 선고를 내리면서 뒤에 별다른 이유나 설명이 붙지도 않는다.

 

남의 인생 망가뜨리는 데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이용했다는 한마디면 충분한 셈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이용한 놈은 끝장날 각오하라는 훌륭한 메시지다.

 

결국

이 분야 연구자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식민사학의 잔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마디 할 수조차 없게 된다.

 

다음은 굳이 설명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명만 이런 식으로 밟아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긴다.

 

더 나아가서 극소수 몰지각한 과격분자(?)를 빼고는 학회 전체가 알아서 긴다.

그러니 굳이 모든 심사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해서 군소리 할 놈 씨를 말려버리는 것이다.

 

물론 모든 심사가 이렇게 파렴치한 트집만 잡는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진짜 말도 안돼는 내용을 논문이라고 내놓기 때문에,

이 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트집 잡는 경우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한탄이나 하자고 심사 과정의 문제점 늘어놓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집단이 어떤 집단인지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자리잡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자,

식민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원로들이 길러낸 일류대학 출신들로 이루어진

집단인 것이다.

 

식민사학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

또 그런 걸 두들기면서 자기 업적 쌓을 수 있는 기회까지 날려 버리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무엇 때문에 말도 못하는지 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출처 http://www.jsd.or.kr/hwan/community.php?mid=123&r=view&uid=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