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 위서론자들의 주장 그에 대한 반론

    『자유』지에 발표한 이유립의 글들

    『자유』지 발표 내용과『 환단고기』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므로 이유립이 썼다는 유력한 증거다.

    이유립은 자신이 갖고 있던『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자유』지에 글을 썼기 때문에 내용이 같은 것은 당연하다.

    『삼성기』의 저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함, 원로, 동중 세 명이 황해도 해주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삼성기』의 저자를 안함로, 원동중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세조실록』에『 안함로원동중삼성기』라 적힌 것은 안함로와 원동중 두 사람이『 삼성기』를 지었음을 뜻한다.『세조실록』의 다른 구절“ 문태, 왕거인, 설업 등 세 사람이 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몇 사람인지 혼동할 여지가 있는 경우『 세조실록』은 사람 숫자를 표기하였다. 이로보아『 삼성기』의 저자는 그 두 사람이 분명하다.

    근대 용어의 사용

    국가, 문화, 평등, 부권父權 등 근대어가 사용되었으므로『 환단고기』는 후대에 조작된 책이다.

    국가, 문화, 평등, 자유, 인류, 세계 등의 어휘는 고대로부터 사용된 예가 많다.

    『단군세기』16세 위나尉那단군조에 나오는 지명, ‘영고탑寧古塔

    청나라(1644~1911) 때 생긴 지명이므로, 고려시대 사람인『 단군세기』의 저자 이암이 이 지명을 알았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근세에 꾸며진 책이다.

    청조 이전부터 영고대 혹은 영고탑으로 불렸다. 많은 중국 문헌에서‘ 명대 초기에 여진족이 이곳에 정착하여 이곳을 동해와집영고탑로東海窩集寧古塔路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명대 초기 사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암이 살던 고려말에 영고탑이란 명칭이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에 나오는 지명, ‘상춘常春

    청나라 때 생긴 지명이므로『 태백일사』의 저자 이맥(1455~1528) 생존 시에는 없었던 말이다.

    상춘은 장춘長春과 같은 의미로‘, 늘봄’을 뜻한다. 장춘은 원나라 순제 3년(1343)에 편찬되기 시작한『 요사遼史』와『 금사金史』에 여러 번 나오는 지명이다.

    장수왕의 연호 ‘건흥’

    『환단고기』가 말하는 장수왕의 연호는 1915년 충주에서 발견된 불상佛像 광배에 새겨져있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1915년 이후에 쓰여진 책이다.

    1915년의 불상 출토를 계기로 비로소 장수왕 연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누구도 모르던 그 연호를『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환단고기』 내용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준다.

    연개소문 조부의 이름 ‘자유子遊

    1923년 발견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 묘지의 묘비에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 자유子遊’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1923년 이후에 쓰인 기록이다.

    이 또한 다른 사서에서 볼 수 없는『 환단고기』만의 독보적인 역사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확인시켜준다『. 환단고기』는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이 광廣이라는 것까지 밝혀주고 있다.

    「소도경전본훈」에 실린『천부경』

    계연수가 1916년에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 석각을 발견하고 탁본하였다는 사실은『 천부경』이 실린『 환단고기』가 1911년에 간행되었다는 것과 모순된다.

    계연수는『 천부경』을『 태백일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고 확신하고 그 실체를 찾다가 1916년 묘향산에서 발견한 것이다.

    기독교 교리용어와 유사한 술어사용

    기독교 교리와 유사한‘ 삼신일체’라는 말을 쓴다. 영혼·각혼·생혼은 명나라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기독교 교리를 중국어로 번역한『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성삼품설聖三品說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 위작된 것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환단고기』의 삼신일체는 전혀 다른 말이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인데, 성부 성자 성령의 세 가지 위격을 가진다’는 것이고, 삼신일체는‘ 우주의 조물주 하나님인 삼신과 한 몸 되시어 삼신상제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삼신, 삼신일체 등은 삼성조시대로부터 한민족이 사용해 오던 말이다. 리치 신부는 한자와 동양 문화를 섭렵한 바탕 위에「천주실의」를 저술하였다. 동양사람들의 보편적 개념인 영혼·각혼·생혼을 그가 인용해서 쓴 것이다.

    1년의 시간 길이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서 환웅이 책력을 지어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1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천문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수치이다.

    이집트, 중국 등에서는 고대로부터 1년의 길이가 365일에 1/4일을 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초 단위의 기록은 아마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의 건립시기

    『환단고기』는 고조선이 BCE 23세기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고대국가의 출현은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BCE 10세기 이전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환단고기』의 기록은 믿을 수 없다.

    청동기 사용이 고대국가 형성에 필요조건은 아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상한선을 이유로『 환단고기』가 말하는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부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최근 고고학 발굴에 의해 동북아 청동기 시대는 BCE 3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진국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

    대진국 문왕의 연호는『 신당서』에 이미 기록되어있다『. 환단고기』가 그 연호를 밝힌다 해서,『 환단고기』가 진서인 것은 아니다.

    『신당서』에 실려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문왕의 연호는 1980년 발견된 정혜공주 묘의 묘비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연호를 기록한『환단고기』는 진서임에 틀림없다.

    은나라 왕 무정의 귀방鬼方 공격

    『단군세기』 21세 소태蘇台단군 조에서 말하는‘ 은나라 왕 무정이 전쟁을 일으켜 귀방을 물리쳤다’는 내용의‘ 귀방鬼方’은『 주역』 63번째 기제旣濟괘에 이미 나오는 말이다.

    역사서도 아닌『 주역』에 나오는“ 고종벌귀방高宗伐鬼方(고종이 귀방을 정벌하다)”이란 구절을 찾아내『 환단고기』에 인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정의 귀방 공격 사실은 은나라의 유물인 갑골문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갑골문의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결론적으로『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정통사서 5권을 하나로 묶어 한민족사의 진실을 전하는 진서라고 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