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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민족의 연호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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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국 / 객원기자

 

한민족의 오랜 역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세상에 나온 지 1백년이 되었다. 아직도 강단 사학계에서는 한민족의 정통역사서인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배달의 6천년 역사를 넘어서 환국에 이르기까지 무려 9천년 역사를 방증하는 유일한 민족의 사서다.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연구가 많은 분들에 의해 지속되기를 바라며, 시론 원고를 이번호에 게재한다. -편집자주

연호의 기원
삼성조 시대 및 북부여 시대에는, 매년 돌아오는 해에 이름을 붙이는 연호年號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의 역대 제왕께서는 재위 원년을 기준으로 해의 숫자를 세면서 간지干支와 더불어 병행하여 기년紀年하였다.

간지干支는 곧 태고시대太古時代의 도술道術이니 우리 민족은 태고시대로부터 간지를 이용하여 연월일시年月日時의 변화를 예측하고자 했다. 따라서 별도로 연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국호國號에 삼신三神의 위대한 광명 정신을 담았으므로 달리 연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할 것이다.

동양에서 연호를 처음 사용한 것은 한나라 무왕 유철 때의 일이다. 이는 우리보다 앞서는 일이니, 이를 고구려 시조 태왕이신 고주몽 열제께서 취해 쓰셨다. 이에 우리 연호의 첫 시작은 ‘옛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다’는 뜻의 다물이라 하겠다.
이후로 한민족의 역대 태왕께서는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여 자신의 정치 철학과 목표를 연호에 담아 세상에 널리 공표하시게 되었다. 시대에 따라 연호 이름은 달랐으나 삼신의 광명을 이 땅에 밝힌다는 뜻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연호의 계승
연호와는 별도로 한민족에게는 고대로부터 개국 기원의 개념이 있었으니, 이는 환기, 배달기, 단기, 북부여기 같은 개념이다. 이는 훗날 후조선의 개국기원, 대한민국의 단기 등과 상통하는 개념이니 곧 연호보다 상위의 개념이요 포괄적인 개념이다. 칭제건원稱帝建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연호는 훗날 제왕의 권위와 국력을 상징하는 하나의 거대한 징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침략한 이민족들은 한민족의 역사를 침탈하기에 바빴고, 이민족의 종교에 물든 사가들은 더욱 더 스스로의 역사를 폄하하고 멸실하게 되었으니 이는 심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려 광종 이후 천년의 세월 동안 한민족은 이민족의 연호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점차 남의 나라에 정신적으로 예속되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쇠락衰落의 길로 이어졌다.

고려 광종황제께서 마지막으로 칭제건원하신 이래 다시금 칭제건원하신 분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이시다. 이는 고려 광종 재위 14년 계해 겨울 12월에 우리의 연호를 버리고 송의 연호를 받아들인 지 무려 933년 만에 이뤄진 일대 사건이다. 곧 대한제국의 연호 광무光武는 명실상부하게 칭제건원의 맥을 계승한 연호라 하겠다.

한민족에게는 유실된 연호가 너무도 많다. 환단고기에서도 정안국의 시조 열만화가 개원改元했다고 하였지만 그 연호를 미처 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백제와 가야가 연호를 사용하였다고 여겨지지만 아직 그 연호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아울러 한민족의 국통을 계승한 고구려 역대 황제의 연호마저도 셋 중의 둘은 아직도 그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세계는 서양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서기西紀를 사용하고 있다. 서양의 환락적 물질문명에 물들어 고유한 정신문명인 삼신신앙을 파괴하고 이민족의 유일신 종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 역사 연호의 시작은 다물多勿이다. 오랫동안 문무文武로서 동방의 역사를 제패한 한민족의 위대한 연호를 다물하며, 이 글을 마친다.

 

월간개벽14111_대한민국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