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B상생방송 보천교 본소 건축물의 훼철과 이축과 차경석과 보천교 운동 


 

십일전(十一展) 상량 공사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있는 기운 그대로 풀어 버릴 수밖에 없다.” 하시고
경석에게 백목(白木)을 가져오라 하시어 상량 공사(上樑公事)를 행하시다가
백목이 부족하다.”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더 가져오게 하시어 공사를 마저 마치시니라.

 

이어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천자 소리를 듣기는 듣는다만 집을 지으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따금 경석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인’이라 부르시니라.

(증산도 道典 5:343)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머무르실 때
경석을 데리고 네 차례 비룡산(飛龍山)에 오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그 뒤에 경석의 집 벽에
千古春秋阿房宮이요 萬方日月銅雀臺라
천고춘추아방궁 만방일월동작대 라고 써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시고
또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187)


차경석의 교권 장악
치복의 본소 이전 운동을 저지한 경석은

이 해 동지절에 통교권(統敎權)을 장악한 다음 김형규(金炯奎), 문정삼(文正三) 등

심복 신도 스물네 사람을 24방주(方主)로 임명한 뒤에 각 지방으로 파견하여 신도들을 수습하고

교권(敎權)을 집중시키니라.

 

주렴을 걸고 신도들의 알현을 막음

이 때부터 경석은 태모님께서 옆에 계시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태모님께서 날마다 “네 이놈, 경석아!” 하시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자기의 체면이 손상될까 두려워 먼저 태모님과 신도들 사이를 이간하여

인맥을 끊게 하고 다음으로 태모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을 ‘영실(靈室)’이라 칭하며
방문에 주렴(珠簾)을 걸어 놓고는 예문(禮門)’이라 하여 자신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출입을 금한 채

그 아내 이씨(李氏)에게만 태모님의 수발을 들게 하니 이는 겉으로는 태모님을 높이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신도들이 태모님을 알현(謁見)하는 길을 막기 위함이더라.

이로 인해 도장에는 신도들의 자취가 끊어지고 오직 경석이
그의 아우들과 더불어 태모님을 모시니라.

(증산도 道典 11:39)

 

 

자작자배하는 자는 살아남기 어렵다

태모님께서 하루는 여러 성도들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차경석, 조철제와 각 교단이 저토록 집을 화려하게 지어 놓은 것을 부러워 말라.
그러한 일들은 다 허황하며 기만에 불과하니라.” 하시고

추수를 해서 오곡을 종류별로 갊아 두는 이치와 같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공사에 없는 법으로 행동하고 자작자배(自作自輩)하는
놈은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412)

 


찰방에 똥단지나 될는지

21일에 유일태가 태모님께 여쭈기를
세상 사람들이 ‘차경석은 천자(天子)가 되어 등극(登極)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될는지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단지 찰방(察訪)에 똥단지나 될는지
나는 모르는 일이로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133)

 

 

선도 오세요 악도 오세니라

3월 보름경에 태모님께서 채유중을 용화동에 보내어
기별하시기를 “정읍 일을 다 보았으니 20일에 돌아가겠노라.” 하시니
19일에 이성영이 태모님을 모시러 왕심리에 오니라.

 

이 날 저녁에 성영과 용기를 보천교 새 건물을 향해 세우시고
태모님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성영에게 물으시기를 “경석이 이제 상제님을 배반하고
수백만 신도의 앞길을 그르치니 어떻게 조처함이 옳겠느냐?” 하시므로

 

성영이 아뢰기를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
이라 하였사오니 죽어야 마땅할까 합니다.” 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수백만 신도의 피를 거두어 지어 놓은 것이 마침내 허사로 돌아가니

어떻게 조처해야 좋겠느냐?” 하시니 성영이 대답하기를 “허사로 돌아갈진대 뜯어 버림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매 태모님께서 세 번씩 물어 다짐을 받으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선도 오세(五歲)요 악도 오세니라.” 하시며
발로 성영의 다리를 차시니 성영이 엎어지니라.

 

이로부터 5년째 되는 병자년에 차경석이 죽고
이어 십일전(十一殿)을 비롯한 보천교의 큰 건물이 모두 뜯겨 버리니라.

(증산도 道典 11:319)

 

 

월곡 차경석의 회한과 죽음

병자(丙子 : 道紀 66, 1936)년 윤3월 10일에
차경석이 가족들과 60방주를 비롯한 많은 신도들을 불러 모으고 말하기를
내가 신도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600만 교도들, 저 불쌍한 사람들,
내 사람들…. 내가 없어져야 한다.” 하더니

 

잇몸을 찔러 피를 내고 마약을 입에 넣은
뒤에 얼마 후 숨을 거두니 시각은 오후 두 시경이라.

이 때 곁에서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은 경석의 아내 이씨와 그 아우 윤경과 윤덕,
아들 용남, 봉남, 계남, 봉용, 사위 노영한과 이석래, 당질 순옥,
당질부 손승례, 재종손녀 봉수 등이더라.

 

장례는 9일장을 치르는데
600만 신도들이 모두 상복을 입으니 마치 국장과 같거늘
18일 탈상 때는 대흥리에서 삼산리 고직동(三山里 庫直洞)까지 장지(葬地)로 가는 길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니라.

(증산도 道典 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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