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증산도는 천도를 집행하는 기구다.

또한 천도를 집행하는 틀이 돼서 한번 실수하면 도저히 무를 수 없다.

세상사라는 게 잘못되면 갈아 끼울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고,
다시 만들 수도 있지만 증산도는 자연섭리, 자연이법, 천도를 집행하는 단체인지라
사회 속의 다른 단체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시 묶어서 얘기하면,

상제님 천지공사 내용이념을 집행하는 단체라는 말이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이념이라는 것은 천리를 집행하는 일이라,
다시 바꿀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연기할 수도 없고,
천리와 더불어 그냥 흘러 넘어가는 것이다.

 

천리天理를 바탕으로 한 증산도 남에게 좋게 하라

 

남에게 좋게 하라

상제님 진리만 안다고 해서 심법을 고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 신도들이 심법이 안된 사람들이 얼마고 있다.

나는 다만 '저 사람이 정신이 어떻게 됐나?' 하고 신도들의 심법을 본다.

상제님 신앙을 하려 할 것 같으면 참사람이 돼야 한다.

내 앞에 큰 감 놓으라고 그러지 마라. 사람은 봉사정신을 가져야 한다.

 

역사적인 과정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한 사람들을 성자다,

현인이다, 군자다, 공로자라 한다.

세상 사람이 제 비위 맞추기 위해 생겨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내가 남의 생각에 적응해 줘야 세상 사람들도 나를 받들어 주고 내 생각에 적응해 준다.

 

세상에 아무런 공로도 없고 남을 위해 한 것도 없는데,

세상 사람 보고 왜 내 비위를 맞춰달라고 하나? 그건 잘못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이 문명사회 속에서 자연도태 된다. 자연도태라는 것은 스스로 뽑혀나가는 것이다.

누가 뽑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상대를 안 해 주니까 그렇게 된다.

사람은 지도자가 되려면

남에게 잘 해야 밑엣 사람을 통솔하고 거느릴 수 있다.

또 잘난 척하는 것도 안 된다.

화복化服이라고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도 덕화德化로써 해야 되지,

역복力伏, 즉 힘으로 억누르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때는 무서우니까 “예” 하지만, 돌아서면 '요놈의 자식 두고 보자.'고 한다.

애들보고 위협해 봐라. '나 크면 두고 보자. 나 크면 그냥 안 둔다.'고 하지.

그러니 정신적으로 남에게 좋게 해서, '참. 과연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과연 따를 만하다. 배울 만하다. 가까이할 만하다.' 이렇게 돼야 한다.

기독사회의 사랑 소리가 그런 데 해당한 것이다.

기독교 진리가 뭐가 있나? 사랑, 신앙(믿음), 희망(소망)이 있다.

희망? 사람 쳐놓고 희망 없는 사람이 있나? 누구도 다 희망이 있지.

 

그 다음 신앙은 신앙인으로서 신앙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허면 기독교 진리는 사랑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사랑 하나 가지고도 여러 천 년 끌고 내려오지 않는가.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 남을 위해줘라. 남을.

'덕자德者는 본야本也요, 재자才者는 말末이라.'

덕이라 하는 것은 바탕이 되는 거고, 재주라 하는 것은 최하 말단이다.

 

재주 있는 사람 쳐놓고 촐싹대고 경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람은 그저 후더분해야 된다. 옛날 사람들 말로 배고픈 사람 밥 잘 주고 말이다.

 

-道紀133(2003)년 5월 11일 증산도대학교 도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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