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오직 일심에 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진리를 신앙하는 것이다.

신앙이 뭔가?

믿을 신 자, 신앙信仰이다.
그러면 진리 그대로 신앙을 해야 될 거 아닌가?

절간에 가면 석가모니를 믿어야 될 게고,
기독사회를 가면 예수를 믿어야 될 게고. 맞잖은가?
증산도에 오면 상제님의 진리, 우주원리, 대자연 섭리를 믿어야지 않겠는가.
상제님의 진리는 묶어서 말하면 대자연의 섭리다, 우주변화원리.

강증산이라고 하는 분이

우주의 주재자, 절대자라고 해서 그 양반이 만들어 놓은 게 하나도 없다.

자연섭리를 순리 그대로, 사실 그대로, 실정 그대로,

그렇게 되어진 그대로, 상극이 사배한 역사 속에서 발생한, 파생한 그것을 그대로 집행하셨을 뿐이다.

하나 보탠 것도 없고, 일 프로도 보탠 게 없다. 일 프로도 또 뺀 것도 없다.
사실 그대로를 절대자, 통제관으로서 그렇게 틀을 짜주신 것이다.

그 틀이 인사적으로, 역사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게 상제님 공사내용 전부다. 알고서 보면 얼마나 쉬운가.


성공은 오직 일심에 있다

상제님 신앙을 하는 데는 지식은 열둘째다. 신앙은 반드시 심법이다, 일심!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죽어져서 넋이야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 있으랴.”
하는, 기존의 그 충신들의 그런 일편단심!

상제님의 말씀으로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이 배를 배질하고 전명숙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천추에 혈식을 받는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천추에 혈식을 받을 수 있냐 하고 물어보니까
그 모든 신명들이 하나같이 다 “일심에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한다.”

상제님도 “내가 천지의 복록을 맡았으나
일심 가진 자가 적어서 태워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라.
만일 일심만 가진 자가 있으면 빠짐없이, 누구에게도 다 고루 태워줄 것이다.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또, “일심만 가지면 못 되는 일이 없다. 안 되는 일이 없다.” 왜 안 되나?

척신에 걸려서 못 들어오는 사람,
내가 지극정성이 있을 것 같으면 그까짓 놈의 척신 밀어낼 수도 있다.
그 사람 척신을 밀어낼 수도 있다.

일심을 가져라, 일심! 일심!
일심소도一心所到에 금석金石을 가투可透라.”고 옛날 사람들도 일심 기운에 대해 얘길 했잖은가.

심야자心也者는 대어천지大於天地라, 마음이라 하는 것은 천지보다도 크다.”
내가 일심을 가졌는데 무엇이 안 되리오. 무엇이고 밀고 나갈 수가 있다. 일심! 죽고 살고 일심!

진표율사가 망신참법亡身懺法,
죽기를 한하고서 일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가 보니까,
수도를 하다가 보니까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도 만나게 됐다.

상제님이 하늘나라에서 보다가
“자~ 저렇게 나를 찾으니 내가 저놈을 안 만나주면 저놈이 곧 죽겠구나.
나를 만나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도외시할 수가 있냐.

내가 안 만나주면 저 사람이 죽으니, 내가 죽이는 건 아니지만,
제가 스스로 죽는 거지만 내가 어떻게 차마 저걸 볼 수가 있냐.” 맞잖은가?
그래서 상제님도 어쩔 수 없이 진표를 감싸 안았다.

사람은 정성이 지극할 것 같으면,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지극한 정성을 가질 것 같으면 하늘도 감동을 한다. 안 되는 일이 어디에 있나?

-道紀134(2004)년 2월 8일 증산도대학교 도훈 말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