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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적십거무궤화삼이니라.
 
열 십十의 어원
 
10은 열은  열린다. 연다. 새롭게 시작한다. 는 뜻이다.
 

Ⅱ. 신화

[완전, 전체] 백제 시조 온조와 비류 신화에,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10명의 신하와 더불어 나라를 세워, 국호를 십제(十濟)라 했다.

후에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백제(百濟)로 고쳤다.

 

고려 태조 왕건의 선대조(先代祖)에 호경(虎景)이 있다.

아홉 사람과 더불어 사냥을 나갔다가 범을 만났는데, 열 사람의 관을 던져 범이 무는

관의 임자를 희생시키기로 한 일화가 있다.

 

주몽 신화에,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늘에서 웅심산에 내려오는 데 열흘이 걸렸다.

수로왕 신화에, 허 황후가 죽은 지 10년 만에 수로왕도 죽는다.

 

이와 같이, 신화에 나타나는 ‘10’이라는 숫자는 나라를 세울 때,

위험한 일을 도모할 때, 필요로 하는 완전한 수로서 전체를 뜻한다.

또, 열은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기간으로서, 천상의 몸이 지상의 몸으로 화하는

시간으로서 완전함을 의미한다.<羅景洙>

 

Ⅲ. 무속·민속

[중앙] ‘十’은 모든 수를 갖춘 기본이자,

동서를 나타내는 ‘─’과 남북을 잇는 ‘|’이 합쳐진 것으로, 사방과 중앙을 갖추는 상서로운 수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물의 문양으로 즐겨 쓰는 십장생(十長生)은 음양 오행과 십간(十干) 등

여러 복합적인 관념들을 내포한다.

[완전] ‘十’은 모든 수를 낳는 모태(母胎)의 자리이므로,

하도(河圖)에서 토(土)로 배당된다. ‘土’는 흙이고, 지(地)자로도 표기 된다.

‘十’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수이고, 꽉 차서 넘치는 수이다. 또, 一과 十은 거의 동일시되는데,

一이 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늘] 10간(干)과 12지(支)는 우주 만상의 이치를 나타내는 부호이다.

하늘을 상징하여 10간을 둥글게 배설하고, 땅을 상징하여 12지를 네모지게 배설한다.

10간은 하늘을 상징하므로 천상의 신들과 관계되며, 하늘의 이치를 나타낸다.<金善豊>

 

Ⅳ. 풍습

[장구함] ‘十(열)’은 기간을 나타내는 단위에 붙어 오랜 시간을 뜻한다.

부귀 영화가 오래 가지 못함을 “십년 세도(勢道)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고 하고,

오래 기다린 보람이 없음을 “십년 과수로 앉았다가 고자 영감 만난다.”고 한다.

 

또, “십년 묵은 체증이 가신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십`년 묵은 환자(還子) 라도 지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등의 말에서도 십년이 매우 긴 세월임을 알 수 있다.

[다수] 열[十]은 많은 사람이나 여러 물건, 많은 횟수를 나타낼 때에도 쓰인다.

죄는 여럿이 짓고 한 사람만 벌받음을 “열 골 물이 한 골로 모인다.”고 하고,

여러 곳에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을 ‘열 소경에 지팡이 하나’라고 하며,

여러 번 싸서 소중히 간직함을 ‘십습(十襲)’이라 한다.

 

그 밖에, ‘열 사람이 죽 한 그릇’, ‘십목소시, 십수소지(十目所視, 十手所指)’,

‘십시일반( 十匙一飯)’,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 등이 있다. 한편, 충분하다는 뜻으로

‘십분(十分)’이라는 말을 쓰고, 완전하여 결점이 없음을 ‘십전(十全)’이라 한다.

또, 게으름을 빗대어 ‘십지부동(十指不動)’이라 한다.

[장거리] 친한 벗 중에도 원수가 있다는 뜻의 “십 리가 모래바닥이라도 눈 찌를 가시나무가 있다.”,

얼굴이 그을린 사람에게 하는 말로 “십 리 강변에 빨래 길 갔느냐.”나 실현 불가능한 일을 빗대어

“십 리 사장 세모래에 정 맞거든`�.”이라는 말은 먼 거리나 넓은 지역을 뜻한다.<金善豊>

 

Ⅴ. 종교

[유교: 간신] 맹자(孟子)에 “하루 햇볕을 쬐고

열흘 동안 차게 하면, 제대로 생장(生長)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제(齊)의 선왕(宣王)이 왕도 정치에서 벗어나는 처사를 하자, 맹자가 제자에게 한 말이다.

맹자 홀로 왕에게 바른 정치를 전해 주었지만, 열 간신(奸臣)이 왕의 판단을 흐리게 해 망쳤다는 뜻이다.

여기서 ‘일폭십한(一暴十寒)’이라는 고사 성어가 생겨났다.

[도리] 인륜(人倫)의 지위에 따라 정해진 10종 도리를 ‘십의(十義)’라 한다.

예기( 禮記)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애로워야 하고[慈], 자식은 효도해야 하며[孝], 형은 어질어야 하고[良],

아우는 형을 잘 받들어야 하며[弟], 남편은 의로워야 하고[義], 아내는 혼자 휘두르지 말아야 하며[聽],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보살펴야 하고[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따라야 하며[順],

임금은 너그러워야 하고[仁], 신하는 충성스러워야 한다[忠]고 했다.

[불교: 무한, 자유] 사방(四方)과 사우(四隅) 및 상하의 시방세계(十方世界)는 무한한 공간을 나타낸다.

이러한 공간을 인식하면 공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 자재로 천지에 출신(出身)하게 된다고 했다.

[구원]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에 보살이 갖춰야 할 열 가지 행(行)을 밝히고 있다.

보살은 이 십행을 배움으로써 중생 구제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즐거운 행, 이롭게 하는 행, 어기지 않는 행, 굽히지 않는 행, 어리석음과 산란을 떠나는 행,

잘 나타나는 행, 집착 없는 행, 얻기 어려운 행, 법을 잘 설하는 행, 진실한 행이다.

 

그리고 십회향품(十廻向品)에서는,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의 회향을 배워 중생을 구원해야 한다고 설한다.

[완전, 만수] 신라의 의상(義湘)은 경북 영주 봉황산에 부석사를 창건한 후, 40일간 법회를 열었다.

이 때, 화엄의 일승십지(一乘十地)에 대해 설법함으로써 화엄종을 펼치고 전국 열 곳의 사찰에 교(敎)를 전했다.

 

 

여기서 10은 화엄 사상에서의 만수(滿數) - 완전한 수 또는 가득 찬 수이다.

십중대계(十重大戒)를 비롯해

십계(十界), 십락(十樂), 십선(十善), 십념(十念), 십신(十信) 등의 지침에서 예를 볼 수 있고,

원효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과 의상의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등의 저서명에서도 볼 수 있다.<洪潤植>

 

Ⅵ. 동양문화

[중국: 영원함] 다른 수들은 잠시 표상되었다가 곧 사라진다.

그러나 ‘十’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함을 뜻해 십장생(十長生), 십계(十戒), 시방세계(十方世界) 등에 수용된다.

[완전] 완전하고 큰 것으로 인식하여 예부터 ‘十’을 중요시해 왔다.

10일을 1주기로 삼아 제사 지냈고, 십간(十干)을 기초하여 천지의 변화를 읽었으며,

씨족의 조직이나 군대 조직을 10명 단위로 분류하는 십진법(十進法)을 사용했다.<洪潤植>

 

Ⅶ. 역사·문학

[충분함, 많음] 열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함께 많은 것을 뜻한다.

아전들이 와서 돈을 찾아 내려고/늙은 아내를 묶기까지 하였네/

담을 넘어 험준한 곳을 찾아가서/열흘 동안 가시밭에 숨어 지내면서(후략).

 

<성간, 원시(怨詩)> 비처럼 내리는 잎 어쩔 수 없어/빈 산이 한껏 야위어 가네[空山瘦十分].

 

<김시습, 낙엽> 밝은 달은 진실로 내일 밤에도 뜨련만,

/남은 꽃이 자아내는 온갖 시름이여[十分愁思屬殘花].<허종, 야좌즉사(夜坐卽事)>

 

오랫동안 숨어 지냄을 ‘열흘 동안’으로 표현했고,

마음껏 야위어 감과 많은 시름에서 ‘십분(十分)’으로 충분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주인공 허생이 글읽기로 정한 기간인 십년의 10도 충분함을 뜻하고,

춘향가에서 춘향이 매 맞는 장면을 노래한 ‘십장가(十杖歌)’의 10은 많음을 뜻한다.

[십자가, 네거리] ‘十’의 자형은 십자가나 네거리를 표상한다.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윤동주, 십자가>

 

여보소, 공중에/저 기러기./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김소월, 길>

윤동주의 ‘십자가’는 종교적 희생 정신과 시인의 자기 인식이 만나는 것으로 상징화되고,

김소월의 ‘열 십자 길’은 정신적인 방황 또는 목표 상실을 의미하는,

고향으로 갈 수 없는 방황의 길이다.<蘇在英>

 

Ⅷ. 현대·서양

[우주, 창조의 전형] 열은 우주를 나타내는 수로, 창조의 전형(典型)이며, 모든 수를 포함한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모든 가능성을 상징한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열(10)을

처음 4개의 수 ‘1, 2, 3, 4’의 합(合)으로서 총체성과 완결을 의미하는 수로 정의했다.

 

수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수로 간주된 열은

형태적으로는 테트라크티스(tetraktys)형(1+2+3+4=10),

즉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분령( 四分嶺)으로 표상되어 우주적 상징이 도출되고, 그들의 설법에 이용되었다.

 

이 도형은 다음과 같이 10개의 점이 4단으로 나뉘어 형성된다.

이 도형은 전체적으로 10을 형성하면서 창조된 우주와 아직 창조되지 않은 우주를 총체적으로 상징한다.

이집트에서도 열은 우주를 상징하는데, 특히 천구(天球)의 층(層)수를 의미한다.

[완성, 회귀] 열은 양손의 열 손가락을 기초로 나온 수로서, 완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완성을 뜻하는 열은 완성수(完成數)로서 1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9년 동안 방랑을 하고 10년째에 귀국했는데,

 

여기서 열은 기원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그리고 로마 숫자의 열은 ‘Ⅹ’인데, 이는 완전한 숫자 또는 완성을 의미한다.

[양성, 이중성] 열은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갖춘 양성 구유(兩性具有)를 의미한다.

열이라는 수의 모양은 가시적(可視的) 세계를 나타내는 남근적(男根的), 남성적, 자의적(自意的)인 ‘1’의 뒤에,

무한의 우주를 나타내는 여근적(女根的), 여성적, 초의식적(超意識的)인 ‘0’이 연결된 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의 배수인 열은 존재의 이중성을 환기시킨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교체와 공존을 의미한다.

[시작, 독창성] 열은 시작과 독창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무한대는 열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그리고 성서의 노아는 아담의 제10대손으로,

대홍수 속에서 살아나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시작한다.<李眞成>

 

Ⅸ. 도상

[장수, 깨달음] 십장생문에 등장하는 열 가지 짐승과 사물은 각각 생명의 근원을 뜻하는 것들로,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십바라밀도(十波羅蜜圖)’는 대승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10종 실천 수행 덕목을 표현한 것이다.

 

즉, 둥근 달은 청정한 보시(布施)를, 반달은 지계(持戒)를,

신발은 인욕(忍辱)을, 가위는 정진(精進)을, 구름은 걸림없는 선정(禪定)을,

금강저는 반야 지혜[慧]를, 전후 좌우의 쌍우물은 방편(方便)과 원력[願]으로 중생을 깨우침을,

2개의 고리는 조화로운 힘[力]을, 별 가운데 둥근 달은 삼세 및 시방을 두루 비추는

큰 지혜[智]를 상징한다.<李基善>

참고 문헌 *일연, 삼국유사.

*박용숙, 韓國古代美術文化史論, 일지사, 1976. *김열규, 韓國의 神話, 일조각,

1976. *이기문, 俗談辭典, 일조각, 1980. *구미래, 한국인의 상징 세계, 교보문고,

1992. *孟子. *河萬壽, 易巫白書, 민산출판, 1990. *Ad de Vries, Dictionary of Symbols and Imagery, 1974.

 

 

1에 9까지 숫자의 의미


고대부터 지금까지 뛰어난 성인,
성현들은 모든 만물에는 기가 내재되어 있고 기에는 현상이 따르고,
현상은 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천지의 큰 틀을 동양에서는 음양이라고 하였는데
양은 뻗어나가고 돌출되는 성질이 있어 숫자로는 홀수이다.
음은 움츠러들고 구멍이 있어 두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음수이다.

1, 3, 5, 7, 9 는 양수이고 2, 4, 6, 8, 10 은 음수이다.


모든 기운의 중재역할을 하는 기운이 있어
방위는 중앙이고 성질은 흙과 같아 5, 10 토라고 한다.

 

또한 10은 정 중앙에 위치하는데
모든 것을 완벽히 중재하고 완성시키는 완성수이므로 하느님을 뜻하는 수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신과 영성을 상징하는 기호는 십자가의 모양이다.

그러나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십자가는 완전한 십자가가 아니고 형틀을 상징하는것 뿐이다.

 

즉  형틀을 상징하는 아래가 길쭉한  불완전한 십자가 이기 때문에

象數철학적으로 볼 때 정십자 =十가 아니므로  미래가 파멸을 뜻하는  죽음의 십자가인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되게 하느님을 받들고 있다는것을 數의 상징으로서도 알 수 있는것이다.

불교의 만자 역시 십자가가 태극모양으로 꺾여 있는 것이고
기독교 역시 아래쪽이 긴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에서만 쓰는 것이 아닌데

이러한 암호코드가 사람들 속에 알게 모르게 전해져서 신을 뜻하는 기호는 십자 형태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만자도 기독교의 십자가도

모두가 불완전한 종교라는것을 뜻하고 다만 십수를 지향하는 종교라는 뜻이다.
애초에 10은 하느님, 완성을 뜻하는 정십자가의 십수이다.


1은  만물이 시작하는 첫 양 기운이고 물을 뜻한다.


2는  1에서 만들어진 불을 뜻한다.
1과 2는 기운만이 존재하다가 서로 만나 최초의 형태를 갖춘 모습이 3 이다.
동양에서는 그래서 3을 대부분 성스러운 숫자로 여기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7을 좋아하는데 7은 성장의 기운이 가장 큰 수이기 때문이다.
가장 역동적이고 활발한 숫자이므로 좋은 운이 담긴 숫자라 하여 7은 좋은 수로 전해지고 있다.
숫자 9는 분열, 성장하게 하는 양수의 마지막 변화 단계를 뜻한다.

 

따라서 달이 차면 기울듯이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반대되는 기운이 올 차례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생기게 되는데
현자들은 이 시점에 세상에 큰 변국이 닥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재수, 운수, 뽀쪽한 수,횡재 수, 볼 수,기막힌 수, 신수.묘수등등..  모든것이 수數가 들어간다.

그래서 이 숫자로 우주와 인간과 국가와 인류의 운명을 계산하고 미래를 꿰뚫어 볼 수數 가 있는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수數(象數철학)를 공부함으로써  살아 남을 수數가 생기는 것이다.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 아니고 심법을 공부하는 도를 닦는 책인 것인데

길흉을 점을 친다는것은  좁은 차원의 의미에서 술術이며, 작은 응용에 불과한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죽을 수數도 모르면서

사주니, 명리니, 추명이니, 그러면서 '병신이 육갑한다고' 이것만 보다가는 신세를 망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현대에는 알맹이는 쏙 빠지고
결과만 전해지며 문화 속에 남게 되어 대부분 9수를 좋지 않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9는 금을 뜻하고 가을을 뜻하는 수이기도 하다.

 

가을은 만물을 익게 하고 통일, 결실하는 완성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반드시 살기가 생기는데 , 기후로는 서리가 치는 것과 같다.

 

또한 가을은 봄, 여름에 풀어놓은 모든 것들을 심판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른바 추수다. 잘 익은 열매는 남아서 풍요를 누리게 되고 설익은 열매는 서리가 치면서 다 떨어져버린다.


따라서 옳고 그름, 잘되고 못되고를 판단하는 시기이므로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9수를 좋지 않은 숫자로 생각하였다.
이 부분은 각 종교와 각 민족의 설화에 나오는 종말과 구원에 대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7수종교인데

즉 럭키세번을 강조하는 붉은벽돌로 7자 형태의 건물을 짓고  붉은 십자가를 사용하는 붉은색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여름의 철의 종교인데 가을의 숫자 4.9금金과 13수 4+9=13 의 가을철이 닥치면  사라지게되는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불길과 죽음의 숫자라 그러면서 4.9를 두려워 하는것이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와 같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여름철 한철로 끝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4라는 숫자 역시 죽음의 숫자라고 하여
불길하게 생각하는데 4, 9는 모두 가을, 서쪽에 속해있는 숫자이다.
9와 4를 합치면 13이 되는데, 13 역시 불길하게 여기는 숫자이다. 13수 역시 하느님의 숫자이다.

또한 하느님은 '서신사명西神司命'이라고도 하는데 가을의 신神을 상징한다.

 

동경대전의 최수운대신사께서

'열석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리'라고 함과 같이 이 숫자는 성스러운 하느님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그의미는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의 13석자의 주문이다.


쉽게 말해 세상은 크게 발전과 통일이라는
두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9는 발전의 끝을 의미하는 수이기 때문에

발전과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더 뒤가 더 없다는 뜻이므로 불길하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9수는 성장의 맨 끝이기 때문에 발전의 클라이막스를 뜻하기도 하다.
과거 선조들의 밝은 지혜가 남아 아직까지도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입신의 경지에 이른 것을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숫자 10이 완성의 의미라면 9는 완성에 가까운 절정,
성숙을 뜻하며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최상급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정치 9단, 바둑 9단이란 단어가 이를 대표한다.

 

참고: 숫자 9를 '카프리카의 불변수'라고 한다.
이는 0부터 9까지 숫자 중 서로 다른 숫자 두 개 a와 b를 정한다.

 

단, a가 b의 숫자보다 더 커야 한다.
크기순으로 배열해 두 자리 숫자 10a+b, 10b+a를 2개 만든다.


큰 수에서 작은 수를 뺀다.

여기서 나온 숫자를 다시 10a+b, 10b+a에 대입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항상 숫자 9가 나오게 된다. 참 신비한 결과이다.


또 하나 9의 배수를 더하면 항상 9로 돌아온다.

9×2=18이고 1과 8을 더하면 9가 된다.  9×3=27이 되고 2와 7을 더하면 9가 나온다.


이는 1949년 인도의 수학자인 D.R.카프리카가
발견한 공식으로 카프리카 상수' 혹은 '회생숫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자료출처 : http://blog.daum.net/069114/10617425

 

불사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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