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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Thales of Miletus, 기원전 약 624~약 546)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인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 밀레토스 사람으로
최초의 유물론 학파인 밀레토스학파의 시조. 그는 기하학, 천문학에 정통하여 B.C 585~584년
당시의 일식을 예언하였다고 전해지며, 또한 정치 활동도 하였다.

 

그 당시 이오니아 지방은

그리스 식민지로서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그와 같은 환경은 이오니아 자연철학이라는 세계관을 발생시켰다.

 

탈레스는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적 물질의 근원을 밝힌 최초의 사람으로, 그것을 '물'(水)이라 하였다.
이 물은 경험적으로 파악된 물질적 질료이며, 스스로의 변화에 의해 다양한 만물을 형성한다.

 

이 학설은 자연과 그 다양성을 자연 그 자체로부터 설명하고자
한 유물론의 입장으로 지적 탐구를 통해 전체로서의 세계를 하나의 실체로부터
통일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점에서 종교적 설명과는 다른 철학적 세계관의 발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유럽 철학의 시조가 되었다.

 


수화일체론(水火一體論)과 탈레스의 사상

 

탈레스(BC 640~530)는 희랍 철학의 창시자였다.
그의 사상은 철학계에서 차츰 부정하는 경향으로 흘렀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사상적 진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일어난 불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것을 고찰하면서 동양 철학과 비교연구하여 보려는 것이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물(水)이라고 하였다.
물은 물질적인 물체이면서 운동하는 힘(力)이 있으며
또한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물은 만물의 실체이며 원리이므로


또한 만물을 육성하는 것인즉

인간 생활에 있어서 불가결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러한 물은 변화성과 자동성과 무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운동하는 만물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상에 논한 바는 그의 사상의 개요인바 그가 물을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이므로 변화성과 자동성과 무한성을 가지 운동의 본체라고 한 점은 실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정도로 하여 두고
다음은 우선 象數學의 水火一體論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우리가 물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木火土金水 5원질(五原質)의 근본이 바로 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에는 응고성과 자율성과 조화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영원하고도

항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水(물)에는 그의 본질이 되는 삼대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응고성과 자율성(자동성)과 조화성의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動하는 모든 원인으로서의 응고성이 없다면 통일할 수가 없고

자율성이 없다면 변화할 수가 없고 조화성이 없다면 모순 대립을 조화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水는 본래 亥子丑의 삼근(三根),

즉 응고성과 자동성과 조화성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원성과 자동성과 변화성이 있는 것인즉  이것은 탈레스의 사상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象水學은 여기에 대해 行과 運의 운동 법칙을 세웠고

또한 운동하는 목적으로 水火一元運動의 산합 법칙(散合法則)을 세워놓은 것이니

이것을 수화일원운동(水火一體論)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변화는 氣가 化하면 無가 되고

氣가 변하면 有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水火作用인 것이다.

 

그런즉 水火 作用이란 것은

기화(氣化)기변 작용(氣變作用)의 반복인즉 이것은 물질현상인 바의 물과 불은 아니다.

 

탈레스가 우주의 본체를 물이라고 본 것은

그가 비록 구체적이며 법칙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물에는 무한성과 변화성과 자율성이 있다고 했고

또한 물은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실체라고 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가 제창한 바의 물은

물질적인 물만을 말한 것이 아니고 물의 기화 작용에 대한 현묘한 오의(奧義)까지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象數學의 水火의 운동현상과 그의 변화하는 바를 좀더 자세히 말하면

소위 五行運動의 과정에 있어서 水氣의 발산이 끝나는 때가 수의 종점인 동시에 火의 위(位)요,

 

水氣의 종합이 시작하는 때가 水의 시점인 동시에 土의 位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土化(未土) 作用을 일으켜서 분산된 바의 火를 다시 水 본연의 자세로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보면

水가 발산하면 象이 되고 火가 종합하면 그 象이 바로 水인 것이다.

그런즉 水와 火라는 개념은 변화 현상으로서의 구별 일 뿐이고 그 실상을 따져보면 火란 것은

水의 기화 작용에서 이루어진 물의 변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火란 것은 현상계에 나타난 바의 실체인 것이고 결코 만물의 본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火는 주관적 실체인 것이고 결코 만믈의 본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火는 주관적 실체인 일수의 影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즉 水는 火를 산합하기 위해서 응고성과 자율성과 조화성을 가지고 있는 기본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와 같은 水가 없다고 하면 우주에는 생명도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水를 우주 운동의 본체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水火一體論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와 같은 水는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기에서 논할 바가 아니고 정신론이나 본체론에서 논할 것이므로 약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象數學의 水火一體論은 이와 같은 陰陽 運動의 법칙 위에 서 있는 것이므로

이것으로써 분열과 통일을 설명하고 또는 水와 火라는 이질적인 두 개의 원질은 一水를 본체로 한

一인 본체의 二原質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데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象數學으로 水火一體 사상을 생각하면서

아울러 탈레스의 사상을 되새겨보면 그가 말한 바의 삼요소는 물론이고 물이 정신과

물질의 본체라고 한 점까지 아울러서 생각할 때에 그는 분명히 철학의 심연에까지 들어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유감인 것은 그가 자연계의 운동 법칙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후일 여기에 반기를 들기 위하여서 다원론이 나왔고 또 그를 경시하게 됨으로써

철학계를 난마(亂麻)와 같이 어지럽게 하였던 것이다.

 

그 여파로서 오늘날에 와서는

그가 그림자(影)로써 피라밋의 높이를 측정하였다든가?

또는 BC 585년 5월 28일의 일식(日蝕)을 예언하였다든지 하는 사실 등을

다만 전설로써 넘기려고 하거나 혹은 우연의 일치로써 간주(看做)하려고 할 뿐이고

이것을 그의 특출한 철학적 지능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象水學的 변화 원리를 숭배하는

우리는 그의 천재적인 고찰에 감탄할지언정 절대로 경시하지는 않는다.

 

오호라! 탈레스와 같은 대천재가

만일 太極이 양의(兩儀)로 발전하고 兩儀가 四象(水火金木 : 坎離震兌)으로 전개될 때에

土의 中和를 얻음으로써 五運의 변화작용이 일어났다고 하는 정도의 원칙만 알았다고 할지라도

아니 설명했더라면 희랍의 자연 철학은 물론이고 오늘의 철학계는 그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의 욕심으로 말한다면 거기에다가

지축의 경사 때문에 일어나는 五運과 六氣의 五六變化 作用까지 말했더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것은 바랄 수도 없었던 일이다.

 

아니 백보를 후되해서 물의 통일과 분열 작용 한 가지만 확실히 말했더라고

경박한 철인들이 탈레스가 동적 현상을 부정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엉뚱한 비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헤겔도 그의 변증법을 완성할 수가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그의 변증법이 발전의 일면만에서 헤맸을 것이 아니라

통일의 이면에까지 미침으로써 완전한 변증법적 체계로써 우주의 변화를 설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도 말하리라. 땅 위에 있는 철학의 눈(眼)을 동(東)으로 모으라.

그 다음에는 씹고 또다시 씹으라. 그래도 안 되면 양사(良師)를 구하라.

시간과 良師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동석 우주변화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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