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비밀을 푸는 건 수학에서 시작됐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말했고, 400여 년 전 갈릴레이 갈릴레오도

세계는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장대한 책’이라며 숫자가 만물과 우주를 설명하는 열쇠라고 판단했다.

 

피타고라스의 생애와 업적

 

그리스의 종교가·철학자·수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으며,

수학에 기여한 공적이 매우 커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 것이며, 그의 증명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에게해 사모스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므네사르코스(Mnesarchos)는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에게 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으며 아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어려서 부터 리라 연주와 그림, 운동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고 긴 여정의 장사길에 함께 데려가기도 하였다.

 

이후 피타고라스의 스승이었던 탈레스(Thales)의 주선으로 이집트로 유학을 떠나

23년간 수학하였으며,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이집트가 함락되고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이송되어 12년을 보냈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접한 피타고라스

56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섬에 학술 연구 단체이면서

수도원 성격을 띤 최초의 철학공동체를 결성하였다. 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영혼의 윤회사상을 가르치며

육식을 금하는 채식주의를 따랐고 백색의 옷과 담요를 사용하였다.

 

그후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온화, 겸손, 과묵을 덕목으로 추구하였으며

신들과 양친, 친구, 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 자제, 복종을 설파하였다.

 

그의 종교적 교의는 윤회와 사후의 응보로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육식을 금하였다.

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을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또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을 1이라 할 때 √2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

 

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로 불리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중외비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

 

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을 그의 교단의 휘장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 그의 영향은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임을 확신하고,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함을, 지구 자전으로 인한 낮과 밤의 생김,

기울어진 자전축으로 인한 계절의 변화가 생김을 이미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과학자들에 밀려 1000여년 간 다른 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인해 과학혁명의 최초에 피타고라스가 있었음이 인정되었다.

피타고라스에 의해 우주는 코스모스(Cosmos)로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자료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0167&cid=40942&categoryId=33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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