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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 서문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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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 奇 古 史(번역본)   

단기고사 저자의 말씀

 

신이 삼가 생각하기로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과
설인귀(薛仁貴)를 몹시 원망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에
그 국서고(國書庫)를 부수고 단기고사(檀奇古史)와 고구려사, 백제사를 전부 불태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이 다시 고대사를 편집하고자 하여
여러 의견과 많은 사기(史記)를 참고하여 그 윤곽을 잡았습니다.

 

오직 임금께서는 타고난 영특하고 늠름한 자태로써

단기(檀奇)의 계통을 이어 천하의 살만한 곳을 정하시고, 황상(黃裳)을 드리워 입으시며,

 

천훈(天訓)의 경급(瓊笈)과 신한(宸翰)의 보찬(寶贊)을 받들어 모을 때에,
신에게 명을 내리시어 서문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이 해에 또 말씀이 계셔서 단기고사를  편찬하라 하시니,
신은 황공히 그 말씀을 받들어 사해(四海)에 널려 있는 사서를 수집하고,

 

여러 역사적 평론을 참고하여

의심되는 것은 빼고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여 13년이 걸려 비로소 완성하였으니, 오호라!

이글이 어찌 우연히 되었겠습니까.

 

대개 신조단제(神祖檀帝)와 기자(奇子)로부터 고구려에 이르도록
성자신손(聖子神孫)이 계승되었으며, 성조(聖祖)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세대를
하나의 계통으로 혁혁하게 신정(神政)이 일체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륜과 법이 이 책에 실려 찬연히 세상에 밝게 비치니,
얕은 소견과 적은 지식으로는 감히 이 깊은 학문의 뜻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무릇 신조단제는 천하의 대성(大聖)으로서

천하의 대도(大道)를 닦으시고, 천하의 대정(大政)을 행하시어 천하의 대심을 얻었으니,
그 마음을 얻고 연구하면 대도와 대정을 또한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사람과 사물이 같이

삼진(三眞)을 얻었으니, 이는 성(性)과 명(命)과 정(精)인데 ,
참된 성은 선악이 없고,참된 명은 맑고 탁함이 없고, 참된 정은 후하고 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흐려 거짓되고 허황하여졌습니다.

 

단군께서 이에 천하의 대도(大道)로써 기둥을 삼아 가르침을 내리시어,
망령된 것을 돌이켜 참(眞)으로 돌아가게 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교화되어 구족(九族)이 화합하므로
복된 징조가 하늘에 보이며 광명이 대지를 비쳤습니다.
이는 만고에 끝없이 다행한 경사입니다.

 

신이 명을 받은 지 13년 동안 주야로 근심과 걱정을 하며,
부탁을 어길까 두려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석실(石室)에 있는 장서와
옛 비와 흩어져 있던 사서를 참고 하다가 돌궐국(突厥國)에까지 들어가 탐사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원본은 임금께 올려 목판에 글자를 파서 국서고에 두고
또 그것을 베껴서 백성을 가르침으로 국민의 역사의식의 만분의 일이라도 도왔습니다.

 

천통(天統)31년 3월3일 반안군왕(盤安郡王)

신(臣) 야발(野勃)은 명을 받들어 삼가 서문(序文)을 쓰나이다.


<단기고사, 고동영(옮김)>중에서....

 

 

 

檀奇古史(단기고사)


이 단기고사는 大震國(대진국) 즉
渤海(발해)의 건국 시조인 大祚榮(대조영=高王)의 아우 盤安郡王(반안군왕) 大野勃(대야발)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사해에 널려 있는 사서를 수집하고


石室(석실)에 있는 장서와 옛 비문과 역사적 평론을 참고하다가
돌궐국(터어키)에까지 두 번 들어가 고적을 탐사하여 의심되는 것은 빼고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여 13년이 걸려 729년 天統(천통) 31년에 완성한 檀君朝鮮史(단군조선사)이다

 

檀奇古史(단기고사) 서문 첫머리에서 저자 大野勃(대야발)은
당나라 장군 蘇定方(소정방)과 薛仁貴(설인귀)가 백제와 고구려 멸망당시
그 國書庫(국서고)를 부수고 단기고사와 고구려 백제사를 전부 불태워버린 관계로


다시 고대사를 편집하고자 여러 의견과 많은 사기를 참고하여 그 윤곽을 잡았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그 서문에는 대야발이 발해국 고왕의 명을 받들어 천통 17년 3월 3일에
三一神誥(삼일신고) 序(서)를 적게 된 경위가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삼일신고의 보배로운

참 이치가 있으며 심오하고 현묘한 신령스러운 글들이 있으며

특히 제1세 단군왕검(BC2333년)으로부터 제47대 단군(병인 원년 BC295년) 까지

약2천여년의 역사를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檀君王儉(단군왕검)이
삼일신고를 천하에 널리 알리고 참전계경의 366사의 神政(신정)으로
정성스럽게 훈교하여 그 교화를 받은 모든 백성들이 10월 3일에 桓儉(한검)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그가 제1세 檀帝(단제) 라고 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름만 전해 오던 것을
구한말의 한학자인 柳應斗(유응두)가 中國(중국)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薛仁貴(설인귀): 613년 ~ 682년
당나라 고종 때 安東都護府(안동도호부)의 총독으로
659년(보장왕18년)에 고구려에 침입하였다가 橫山(횡산)에서 고구려 장군
溫沙門(온사문)에게 패하였다가


돌아간 후 668년(보장왕 27년이며 연호가 개화며
개화27년이다)에 羅唐(나당) 聯合軍(연합군)에 고구려가 망한 후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그는 檢校安東都護(검교안동도호)가 되었다 

 

大震國(대진국): 698 ~ 926년 즉
발해국의 국호는 외부에서 부르던 명칭이었으나 스스로 부르던 이름이 아니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계속해서 고구려라고 자칭했었다.
그러나 일본식민사학은 대진국인 곧 발해를 한국사에서 잘라버렸었다
한국사에서 대진국시대는 남북국시대사의 북조사에 해당한다.


전 감찰원장 황영시가 펴낸 『겨레의 역사』 에서는
통일신라시대를 남북국시대로 구분했음은 특히 인상적이다 

 

開化(개화) 27년: 고구려 마지막 28대왕인 보장왕의 연호가 開化(개화)이다.
개화 27년은 곧 서기668년이며 보장왕 재위 27년이다.

 
고구려 마지막의 멸망 때까지 칭제건원을
사용 했다함은 반드시 기억해 둘 일이요 많은 교훈을 주는 일이다 
第47世 高列加=古列加(고열가): 58년간 재위 (BC 295년 ~ BC 238년)

 

2년에 임금께서 국정을 친히 집행하시니
외척의 권위를 물리치고 어진 이를 기용하며 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 백성을 다스리셨다


5년에 犬戎(견융)이 不服(불복)하므로 군사를 보내어 물리쳐 평정하였다
10년에 奇子朝鮮(기자조선) 사절이 입조하였다
16년에 魏(위)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20년에 풍년이 들고 동해에서 많은 고기가 잡혔다
22년에 蘇定國(소정국)이 建築學(건축학)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25년에 歐老先(구노선)이 種樹學(종수학)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1년에 각처에 伸寃函(신원함)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투서하도록 하였다


40년에 御使(어사)를 시켜 백성들의 사회를 몰래 다니며
부정한 사건을 비밀리에 탐지하여 바로 잡았다


45년에 燕(연) 나라 大夫(대부) 荊雲(형운)이 망명하여 입국하였다
48년에 先檀帝廟(선단제묘)를 성의 남쪽에 세웠다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宗親(종친) 解慕嗽(해모수)가 옛 도읍지 扶餘(부여=夫餘)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北扶餘(북부여=北夫餘)라 하였다

 

後檀帝(후단제)는 이것으로 대가 끊기니
25세 率那(솔나)로부터 古列加(고열가)에 이르기까지 23대 875년간이며
前檀朝(전단조) 1,222년과 後檀朝(후단조) 875년 모두 2,096년간이다  

 
解慕嗽(해모수) = 解慕漱(해모수) = 解慕潄(해모수)     
嗽(양치질하다수) = 漱(양치질할수) = 潄(양치질할수)

解慕嗽(해모수=解慕漱)는 北扶餘(북부여=北夫餘)의 시조이다
조상은 藁離國(고리국) 사람이다
단군세기에 고구려는 해모수의 고향이기 때문에 고구려라 한다고 했다


이 보다 앞서 宗室(종실)의 대해모수는
몰래 須臾(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天王郞(천왕랑)이라 칭했다

 

須臾侯(수유후) 箕丕(기비)를 권하여 番朝鮮(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上下雲障(상하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前檀朝(전단조) 1,222년과 後檀朝(후단조) 875년을 합치면 2,096년간이다
이는 檀君世記(단군세기)와 揆園史話(규원사화)의 역대 단제는 일치한다

                                                                                              
<檀奇古史> 끝..

 

 

 

환씨전(桓氏典)에,
동방에 부여족(夫餘族)이 태백산(太白山) 부근에 흩어져 살았는데,
그중 환인(桓仁)은 관대하고 도량이 커서 가옥의 건축과 의복제도를 시작하고,
아들 황웅(桓雄)을 낳으니, 그 뛰어난 모습을 호걸이라 했다.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사람을 널리 구제하시니,
풍백(風伯)과 운사(雲師)와 뇌공(雷公)등을 거느리고 천평(天坪)[주:天坪-길림(吉林)동쪽]에

이르러 음식절차(飮食節次)와 혼인규례를 창설하시고

천부경(天符經)[주:天符經-우리나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묘한 경전, 81자로 되어 있고 우주의 창조원리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의 생성원리를 적었다. 

 

옛 우리 글로 되어있던 것을 신라의 최치원이

한문으로 옮겼다함]을 설교하시니, 사방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듣는 자가 많았다.


환웅(桓雄)이 아들 환검(桓儉)을 낳으니, 곧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장성하여 비서갑(非西岬)[주:非西岬-만주 할빈근방이라고 함] 하백(河伯)의 딸을 아내로 삼고,
아들 부루(扶婁=神仙)를 낳으니 이분이 부여족의 시조가 되었다.

 

 

참고 자료출처 : http://blog.naver.com/hanuloo?Redirect=Log&logNo=10009715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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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

 


단기고사(檀奇古史)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아우
반안군왕(般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이 8세기경에 편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서이다.
1959년에 출간된 국한문본과 1990년에 복원된 한문초략본(백산본)이 전해지고 있다.

 

국한문본은 그 내용이 각 시대의 상황과 맞지 않아

일반적으로 국사학자들은 구한말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로 평가한다.

 

단기고사는 '단군(檀君)과 기자(奇子)의 옛 역사' 라는 의미로,
전단군조선과 후단군조선으로 분류된 47대 약 2천여 년에 걸친 역사와,
그보다 늦은 기자조선의 42대 1천여 년의 역사, 재위기간과 각 시대의 주요 사실을 시대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은 기존의 기자조선(箕子朝鮮)과는 다르며,
단기고사의 기자(奇子)가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기자(箕子)를 받아들인 것으로 되어 있다.


[편집] 출간경로 및 유래

저자의 말'과 '중간서(重刊序)', '출간경로'에 의하면, 단기고사는
728년 대야발이 흩어진 사료를 모아 발해문으로 지었으며, 100년 후에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되었던 것을 구한말 학자인 유응두가 중국에서 발견하여 수십권 등사하였고,
이관구, 김두화, 이시영이 국한문으로 번역.교열하여 간행하였다고 한다.
1949년 간행본을 구할 수 없게 되자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국한문본으로 복원하였다.


현재 1959년에 간행된 국한문으로 번역된 복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990년에 국한문 번역본이 실제 내용과 다름을 지적하여 기억을 되살려 복원한 한문초략본이 공개되었다.


[편집] 내용

[편집] 1959년 국한문본의 구성
출간 및 책 내용과 관련된 자료
보충자료 - 역대총계표, 각종 기사, 역대약기, 전단제.후단제.기자조선 지도
단기고사중간사(김재형), 단기고사중간서(정해박), 본사출간경로(김재형, 정해박, 이종국) 등 출간정보

 

보충자료 - 국조단군칙어, 원본국가, 천부경
단기고사재편서(발해국 대야발) 단기고사중간서(이경직), 단기고사중간서(신채호)

 

본문
제1편 전단군조선
제2편 후단군조선
제3편 기자조선


각 역년별로 국한문본의 특이한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문초략본에는 47대 1168년 간으로 기록되어 《규원사화》와 비슷하다.)


[편집] 단기고사의 역년 및 기록
왕검(王儉)단군 : 재위 93년 (B.C.2512)
부루(扶婁)단군 : 재위 58년
가륵(嘉勒)단군 : 재위 45년
오사구(烏斯丘)단군 : 재위 38년
구을(丘乙)단군 : 재위 16년
13년, 혼천기(渾天機)를 제조
달문(達文)단군 : 재위 36년
한율(翰栗)단군 : 재위 54년
우서한(于西翰)단군 : 재위 8년
아술(阿述)단군 : 재위 35년
노을(魯乙)단군 : 재위 58년
도해(道奚)단군 : 재위 58년


48년, 평양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 양수기, 자행윤선차, 경기구, 자발전차,
천문경, 소금천리상응기, 진천뢰, 어풍승천기, 흡기잠수선, 측우기, 측한계,
측서계, 량우계, 측풍계 등 제조


아한(阿漢)단군 : 재위 52년
흘달(屹達)단군 : 재위 61년


16년, 지방자치제 실시.
20년, 법정학교(法政學校) 설립


고불(古弗)단군 : 재위 60년
벌음(伐音)단군 : 재위 51년
위나(尉那)단군 : 재위 58년
여을(余乙)단군 : 재위 68년
동엄(冬奄)단군 : 재위 49년
종년(縱年)단군 : 재위 55년
고홀(固忽)단군 : 재위 43년
소태(蘇台)단군 : 재위 52년


색불루(索弗婁)단군 : 재위 48년
아홀(阿忽)단군 : 재위 75년
연나(延那)단군 : 재위 11년
10년, 정치원론 저술
솔나(率那)단군 : 재위 89년


39년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김(후 단군조선), 서여가 기자조선 건국 (B.C.1291)
추로(鄒盧)단군 : 재위 65년
두밀(豆密)단군 : 재위 26년
해모(奚牟)단군 : 재위 28년
마휴(摩休)단군 : 재위 34년
내휴(奈休)단군 : 재위 35년
등올(登兀)단군 : 재위 25년
추밀(鄒密)단군 : 재위 30년
감물(甘勿)단군 : 재위 24년


오루문(奧婁門)단군 : 재위 23년


사벌(沙伐)단군 : 재위 68년
매륵(買勒)단군 : 재위 58년
30년, 성리학, 심리학 저술
50년, 의학화학 저술
마물(麻勿)단군 : 재위 56년
다물(多勿)단군 : 재위 45년
두홀(豆忽)단군 : 재위 36년
달음(達音)단군 : 재위 18년
음차(音次)단군 : 재위 20년


4년, 종교론 저술

을우지(乙于支)단군 : 재위 10년
5년, 지리학, 광물학 저술
물리(勿理)단군 : 재위 25년
8년, 논리학원본설 저술
구물(丘勿)단군 : 재위 40년
5년, 동물 및 식물학 저술
16년, 백과서 저술
여루(余婁)단군 : 재위 55년
28년, 의학대방 저술
40년, 자본론 저술
보을(普乙)단군 : 재위 46년
고열가(古列加)단군 : 재위 58년
22년, 건축학 저술
25년, 종수학(種樹學) 저술


기자조선 멸망, 위만조선 건국 (B.C.194)
고조선의 치세기간은 기원전 2512년 ~ 기원전 416년에 해당되며, 47대 2096년간 지속되었다.
평균 재위기간은 44년 7개월이다.

기록상 전단조선의 치세기간은 1214년 간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계산하면 1222년간이다.


기자조선의 치세기간은 기원전 1291 ~ 기원전 194년에
해당되며, 42대 1097년간 지속되었다. 평균 재위기간은 26년이다.

위만조선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194년으로 추정하였다.
기록상 기자조선의 치세기간은 1052년간으로 되어 있다.

 

 

[편집] 《환단고기》와의 유사점
국한문본 《단기고사》 와 《환단고기》〈단군세기〉에는
그 연대는 서로 다르나 왕의 명칭 및 재위기간은 거의 일치하는 50여 건의
유사한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부루 3년 도량형 통일 (단기고사: B.C.2416, 단군세기: B.C.2237)

가륵 2년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精選)

오사구 7년 배만드는 곳을 살수 상류에 설치
우서한 7년 세발 달린 까마귀가 대궐에 들어왔는데, 날개 너비가 석자였다.

아술 원년 두개의 태양이 나란히 나와 보는 자 마치 넓은 울타리 같았다.


노을 16년 장백산의 누운 돌이 일어나고,
발해에 용귀(龍龜)가 나타나고, 흑수(黑水) 강가에 금괴가 노출되니 수량이 열한섬이나 되었다.


아한 2년 외뿔 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났다.
창해역사 여홍성은 비석을 지나며 시를 읊었다.

 

마을 밖 변한이라 이르는 곳에  홀로 뛰어난 돌 하나 있었네

받침은 깨지고 철쭉만 붉었는데  글자는 보이지 않고 이끼만 푸르구나

다듬어져 처음 생겼을 때 그대로  흥망의 황혼에 우뚝 서있으니

글에 보이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이 어찌 단군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흘달 50년 오성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고불 56년 관리를 사방에 보내어 호구조사. 총계 1억 8천 만.
위나 28년 만국의 제후들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회의. 고흘 40년 공을홀이 천하의 지도를 제작하여 바쳤다.


해모 11년 태풍이 일어나 폭우가 쏟아지니, 육지에 고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마휴 8년 여름에 지진이 일어났다. 9년 가을에 남해(南海)의 조수가 석자(三尺)나 물러났다.


추밀 13년 3월 일식.
오루문 10년 두 해(兩日)가 함께 떠오르듯 왕무(黃霧)가 사방을 덮었다.


사벌 6년 황충의 피해와 홍수.
매륵 28년 지진과 해일이 있었다. (단기고사: B.C.855, 단군세기: B.C.676)


35년 용마가 천하에서 나왔는데 등에는 별무늬가 있었다.
국한문본 《단기고사》의 연대는 동일한 《환단고기》〈단군세기〉의 기록보다 179년 앞선다.

 

국한문본 《단기고사》〈기자조선〉의 기록은
《환단고기》의 「번한세가」의 내용과 왕의 명칭과 업적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편집] 진위 논란
단기고사에는 근대용어의 등장이나 시대에
맞지 않는 기록 등 여러 가지 모순으로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자료로 채택되지 않는다.


[편집] 천문 기록의 연구
박창범(연구당시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 현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은
국한문본 《단기고사》에 기록된 10여 건의 천문 관련 기록의 실현 여부를 연구하여
1993년 한국 상고사학회에 제출하였다.


상고사학회는 고고천문학의 참신함을 인정하여 논문을 받아들였다.
그 내용이 2002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도서에 수록되었는데, 그 내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논문의 주장과 그 반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장 - 오성취합은 25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데,
기록과 실제 현상은 1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썰물 기록도 200년 사이에
가장 큰 썰물이 4년의 오차로 기록되었다. 이는 매우 적은 확률이며, 따라서 기록이
임의로 조작된 것일 확률도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반론 - 논문은 국한문본 《단기고사》가 위작일 경우
막연하게 꾸며내었을 것을 가정하고 있지만, 동양 천문학의 지식이 있다면,
특히 천체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게 된 조선 세종시대 이후라면 옛 천문현상을 예측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연구의 기준으로 쓰인 연대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에 건국되었음을 가정한 것이며,
국한문본 《단기고사》로부터 추정할 수 있는 연대가 아닌 《환단고기》의 연대를 따른 것이다.


[편집] 북한의 연구

《단기고사》의 지나치게 긴 재위연대에는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 근대 이후에 사용된 용어 등 많은 부분이 후대에 가필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단기고사》 초략본(백산본)을 별도로 주목하고 있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의 기록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전조선·후조선의 구분은 채택하였다.


[편집] 내용상의 모순
서지사항(출간년도와 원본)
국한문본 《단기고사》는 한문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1949년 간행본은 구할 수 없고, 1959년의 국한문 번역본 이전의 것은 없다.
1990년에 공개된 한문초략본은 국한문본과 다른 내용이다.


1907년에 공개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김교헌이나 신채호의 글에 《단기고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국한문본에서 1907년에 씌여진
이경직의 서문에 1910년부터 사용한 명칭인 '대종교'가 등장한다.


대야발의 서문은 천통 31년에 씌여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대조영은 재위기간이 20년이었고, 뒤이은 무왕은 '인안'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편집] 참고문헌 및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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