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檀奇古史(단기고사)

 

◐ 이 단기고사는 大震國(대진국) 즉 渤海(발해)의 건국 시조인

大祚榮(대조영=高王)의 아우 盤安郡王(반안군왕) 大野勃(대야발)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사해에 널려 있는 사서를 수집하고 石室(석실)에 있는 장서와 옛 비문과 역사적 평론을 참고하다가

 

돌궐국(터어키)에까지 두 번 들어가 고적을 탐사하여 의심되는 것은 빼고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여

13년이 걸려 729년 天統(천통) 31년에 완성한 檀君朝鮮史(단군조선사)이다

 

檀奇古史(단기고사) 서문 첫머리에서 저자 大野勃(대야발)은

당나라 장군 蘇定方(소정방)과 薛仁貴(설인귀)가 백제와 고구려 멸망당시 그 國書庫(국서고)를 부수고

 

단기고사와 고구려 백제사를 전부 불태워버린 관계로 다시 고대사를 편집하고자

여러 의견과 많은 사기를 참고하여 그 윤곽을 잡았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그 서문에는 대야발이 발해국 고왕의 명을 받들어

천통 17년 3월 3일에 三一神誥(삼일신고) 序(서)를 적게 된 경위가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삼일신고의 보배로운 참 이치가 있으며

심오하고 현묘한 신령스러운 글들이 있으며

 

특히 제1세 단군왕검(BC2333년)으로부터 제47대 단군(병인 원년 BC295년)

까지 약2천여년의 역사를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즉 桓儉(한검)은 桓雄(한웅)의 아들이며

桓因(한인=桓仁)의 손자인 檀君王儉(단군왕검)이 삼일신고를 천하에 널리 알리고

참전계경의 366사의 神政(신정)으로 정성스럽게 훈교하여

그 교화를 받은 모든 백성들이 10월 3일에 桓儉(한검)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그가 제1세 檀帝(단제) 라고 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름만 전해 오던 것을

구한말의 한학자인 柳應斗(유응두)가 中國(중국)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개 神祖檀帝(신조단제)와 奇子(기자) 로부터 고구려에 이르도록 聖子神孫(성자신손)이

계승되었으며 聖朝(성조)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새대를 하나의 계통으로 혁혁하게

神政(신정)이 일체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륜과 법이 이 책에 실려 찬연히 세상에 밝게 비치니

좁은 소견과 적은 지식으로는 감히 이 깊은 학문의 뜻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무릇 神祖檀帝(신조단제)는 천하의 大聖(대성)으로서 천하의 大道(대도)를 닦으시고

천하의 大政(대정)을 행하시어 천하의 大心(대심)을 얻었으니

그 마음을 얻고 연구하면 대도와 대정을 또한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사람과 사물이 같은 三眞(삼진)을 얻었으니 이는 性(성)과 命(명)과 精(정)인데

참된 성 즉 眞性(진성)은 善惡(선악)이 없고 참된 명 즉 眞命(진명)은 맑고 탁함이 없고

참된 정은 즉 眞精(진정)은 후하고 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흐려 거짓되고 허황하여 졌습니다

 

단군께서 이에 천하의 大道(대도)로써 기둥을 삼아 가르침을 내리시어

망령된 것을 돌이켜 참으로 돌아가게 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교화되어 九族(구족)이 화합하므로

복된 징조가 하늘에 보이며 광명이 대지를 비쳤습니다

이는 만고에 끝없이 다행한 경사입니다


신은 즉 盤安郡王(반안군왕) 大野勃(대야발)은 신의 명을 받은지

13년 동안 주야로 근심과 걱정을 하며 천통31년 3월 3일에 이 책을 著述(저술)하였습니다


그 원본은 임금께 올려 목판에 글자를 파서 國書庫(국서고)에 두고

또 그것을 베껴서 백성을 가르침으로 국민의 역사의식의 만분의 일이라도 도왔습니다

신은 명을 받들어 삼가 序文(서문)을 쓰나이다 


▲ 薛仁貴(설인귀): 613년 ~ 682년 당나라 고종 때 安東都護府(안동도호부)의 총독으로

                          659년(보장왕18년)에 고구려에 침입하였다가 橫山(횡산)에서 고구려 장군

                         溫沙門(온사문)에게 패하였다가 돌아간 후 668년(보장왕 27년이며 연호가 개화며

                         개화27년이다)에 羅唐(나당) 聯合軍(연합군)에 고구려가 망한 후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그는 檢校安東都護(검교안동도호)가 되었다 


▲ 大震國(대진국): 698 ~ 926년 즉 발해국의 국호는 외부에서 부르던 명칭이었으나 스스로

                         부르던 이름이 아니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계속해서 고구려라고 자칭했었다 그러나 일본식민사학은

                         대진국인 곧 발해를 한국사에서 잘라버렸었다

               한국사에서 대진국시대는 남북국시대사의 북조사에 해당한다

               전 감찰원장 황영시가 펴낸 『겨레의 역사』 에서는 통일신라시대를 남북국시대로

               구분했음은 특히 인상적이다 


 ▲ 開化(개화) 27년: 고구려 마지막 28대왕인 보장왕의 연호가 開化(개화)이다 개화 27년은

                            곧 서기668년이며 보장왕 재위 27년이다

                            고구려 마지막의 멸망 때까지 칭제건원을

                            사용 했다함은 반드시 기억해 둘 일이요 많은 교훈을 주는 일이다 



第47世 高列加=古列加(고열가): 58년간 재위 (BC 295년 ~ BC 238년)

2년에 임금께서 국정을 친히 집행하시니 외척의 권위를 물리치고 어진 이를 기용하며

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 백성을 다스리셨다


* 5년에 犬戎(견융)이 不服(불복)하므로 군사를 보내어 물리쳐 평정하였다


* 10년에 奇子朝鮮(기자조선) 사절이 입조하였다


* 16년에 魏(위)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 20년에 풍년이 들고 동해에서 많은 고기가 잡혔다


* 22년에 蘇定國(소정국)이 建築學(건축학)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 25년에 歐老先(구노선)이 種樹學(종수학)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 31년에 각처에 伸寃函(신원함)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투서하도록 하였다


* 40년에 御使(어사)를 시켜 백성들의 사회를 몰래 다니며 부정한 사건을 비밀리에

  탐지하여 바로 잡았다


* 45년에 燕(연) 나라 大夫(대부) 荊雲(형운)이 망명하여 입국하였다


* 48년에 先檀帝廟(선단제묘)를 성의 남쪽에 세웠다


*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宗親(종친) 解慕嗽(해모수)가

  옛 도읍지 扶餘(부여=夫餘)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北扶餘(북부여=北夫餘)라 하였다


* 後檀帝(후단제)는 이것으로 대가 끊기니 25세 率那(솔나)로부터 古列加(고열가)에

  이르기까지 23대 875년간이며

  前檀朝(전단조) 1,222년과 後檀朝(후단조) 875년 모두 2,096년간이다  

 

♠ 解慕嗽(해모수) = 解慕漱(해모수) = 解慕潄(해모수)     

                              嗽(양치질하다수) = 漱(양치질할수) = 潄(양치질할수)

  ① 解慕嗽(해모수=解慕漱)는 北扶餘(북부여=北夫餘)의 시조이다

     즉 고구려 시조 高朱蒙(고주몽)의 아버지이다

     조상은 藁離國(고리국) 사람이다

     단군세기에 고구려는 해모수의 고향이기 때문에 고구려라 한다고 했다


     이 보다 앞서 宗室(종실)의 대해모수는 몰래 須臾(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天王郞(천왕랑)이라 칭했다

     須臾侯(수유후) 箕丕(기비)를 권하여 番朝鮮(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上下雲障(상하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② 前檀朝(전단조) 1,222년과 後檀朝(후단조) 875년을 합치면 2,096년간이다

     이는 檀君世記(단군세기)와 揆園史話(규원사화)의 역대 단제는 일치한다

                                                                                               [檀奇古史]

                                                                                                     (終)


      桓紀 9205년    檀紀 4341년    戊子年    西紀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心操彿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