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刊序(중간서)
내가 일찍이 조선의 옛역사를 읽을때에 檀奇古史(단기고사)라는 문헌을 구하지 못하여

혹 檀君一世(단군일세)의 나이가 1,048세라 하기도 하고 權陽村(권양촌)의 말에 의하면 王世(왕세)가

몇대를 이어 왔는지 알수가 없고 歷年(역년)은 천년이 넘는다고 하니 책을 덮고 통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 우리 扶餘民族(부여민족)으로서 중국의 堯舜(요순)의 史記(사기)는 대개 알지만

檀奇(단기)의 옛역사를 알지 못하며 漢(한)과 唐(당)의 文化는 능숙히 담론하면서 고구려의 大武精神(대무정신)과

신라의 花郞徒(화랑도)를 설명할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의 문헌이 다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학부 편집국장이 되면서부터 조선역사를 널리 구하기를

노력하였으나 아직 까지 實史(실사)를 얻어보지 못하여 더욱 갈망하는 한이 있었다

전에 萬國史略(만국사략)을 편찬 할적에 조선편에는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따로 명기할 것이 있어

아직 기입하지 않노라 한 이유는 장차 조선의 옛역사가 출현하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부식과 一然(일연)등이 쓴 역사는 얻어 보았으나 별로 상고 할만한 것이 없고

오직 大野勃(대야발)이 지은 사서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아직 구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중국인 王常春(왕상춘)이 책한권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내 놓으며 말하기를 이책은

귀국 역사의 일부임에 틀림 없는듯하니 혹 참고가 된다면 그리 하라 하였다

이책을 상세히 살펴보니 책모양이 너무 오래 되어

앞뒷장이 떨어져 다만 남아 있는 것은 가운데 부분 몇장 뿐임으로 저술자와 저술 연대를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기사로 보아 조선의 역사인 것이 틀림 없었다

그후 동지 李允珪(이윤규) 군이 또 책 한권을 가져 와서 이것이 檀奇古事(단기고사)이니

학부에서 출간하여 세상에 공표하라 하기에 내가 상세히 고찰해 보니 저술자는 大野勃(대야발)이고

중간한 사람은 黃祚福(황조복) 註譯(주역)한 사람은 張上傑(장상걸)이고 그 책 모양이 먼저

王常春(왕상춘)이 가지고 왔던 것과 서로 같았음으로 몹시 이상하게 여겨 차레로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 檀典(단전)의 文體(문체)는 書傳(서전)의 堯典(요전)과 비슷하고

그 전후 檀朝(단조)와 奇子史(기자사)의 制法(제법)은 司馬通鑑(사마통감)과 비슷하고

그 정신은 조선을 높이고 외족을 물리치는 大義(대의)가 뚜렸하여 정말 웅대하고 건전한 그 文勢(문세)는

고려나 이조시대의 儒學者(유학자) 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오! 이 책이 비록 수천년 후에 저술 되었다 할지라도 그 참고한 바가 넓었고 기록한 것이 정확하였고

그 연구한 것이 깊었고 그 증명한 것이 틀림없으니 어찌 얕은 견문과 적은 지식으로

대수롭지 않는 小史(소사)와 겨룰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 檀奇(단기) 시대의 疆域(강역)은

어느 흙이 그 옛땅이 아니며 어느 물건이 옛 선조의 유적이 아니리오

새는 지저김으로 벌레는 소리로 그 마음을 전하고

꽃이나 풀도 오묘한 색깔이 있는 것을 그의 덕이 천하에 덮혀 영화로움은 광명의 빛과 같도다

더듬어 보면  石壇(탱석단:고인돌이나 지석)이 백두산에서 처음으로 일어나

西쪽으로 歐洲(구주)의 발칸 반도와 동쪽의 日本(일본)과 남쪽으로 남양 군도 까지 한결 같은

濟度(제도)로 전파 하셨다고 쓰여 있는 것과 大野勃(대야발)이 쓴 역사의 내용은 하나도 어긋나는 것이

없었으니 그 누구가 이 물적 증거를 부인 할수 있겠는가

위로는 檀君聖祖(단군성조)님의 거룩한 덕을 사모하고

아래로 <부여민족>의 계통을 잇는 마음이 이 책을 읽을수록 더욱 두터워 지기에

이를 인쇄하게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노라

大韓帝國學部(대한제국 학부)
편집국장 李庚植(이경식) 識


重刊序(중간서)
天下의 盛德(성덕)과 大業(대업)이 누구가 애국자 보다 더 나은이가 있으리요

참된 애국자는 國事(국사) 이 외에 뜻을 둔다면 國史(국사)를 버리고 즐기고 좋아 할것이 없고

희망 할것도 없고 근심 걱정도 없고 경쟁도 없고 환희도 없고 분노도 없도다

참된 애국자는 國事(국사)를 처리 할때 어렵거나 곤란 할것도 없고 위험하다고 할것도 없고

성공 할것도 없고 실패했다 할것도 없고 지금 그만두자 할것도 없는 것이다

또 참된 애국자는 그 애국하는 방법과 기술이 같지 않으니 혹은 혀로하고

혹은 피로서 하며 혹은 붓으로하며 혹은 검으로 혹은 기계로서 하되 앞에서 부르면

뒤에서 따르는 도다 활을 잘 쏘는 자는 서로 모순은 있을지라도 그 향하는 과녁은 마침내

하나의 목적으로 합하지 아니 함이 없을 것이다

대개 동서의 국가와 고금의 민족이 수천 수백이 되나 영특하게

이를 보전하는 자는 백에 하나에 불과하도다 저를 鼓吹(고취)하며 鑄成(주성)하며

締結(체결)하며 장엄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을 누가 감복하지 않으리요 애국자가 심혈과 뇌력과

필검으로서 활도한 것은 우리나라 건국이래 반만년 역사상 가히 노래 할만하며 즐거워 할만한

사실이 수만번에 그치지 않고 애국한 영웅호걸과 충의열사가 수천을 넘는다

그러나 檀奇史蹟(단기사적)에 대하여는 歷年(역년)이 자세하지 않다하고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箕子(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고 하는 김부식 같은 썩은 선비는

망언하기를 夷(이)에 관한 일은 상고할수 없고 항간의 말은 그 뜻을 모른다고 하였다

 

저 중화인의 많은 글에는 자국만 높이고 남의 나라는 업신 여기고

동족은 찬양하고 外族(외족)은 좋지 않게 말하며 자기 나라 이외에는 모두 야만스러운 오랑케라 하였으니

그러한 서적은 아무리 많을지라도 우리 역사의 行蹟(행적)으로 참고하기 어렵고

정말 이같은 일을 생각하여 보면 책을 덮고 통탄하지 않을수 없도다

壬子年(임자년)에 내가 安東縣(안동현)에 이르렀을때 뜻을 같이한 華史(화사) 李觀求(이관구)

동지가 한권의 古史(고사)를 가지고 와서 장차 출간할 마음으로 나에게 머리말을 써줄 것을 청하기에

 

몹시 이상히 여겨 그 책을 받아 읽어보니 渤海(발해)의 盤安郡王(반안군왕) 野勃(야발)이

편찬한 것인데 발해의 大文人(대문인) 황조복이 다시 발간한 책이였다

책 모양은 비록 오래되어 헐었으나 眞本(진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에

그 유래를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文人(문인) 柳應斗(유응두)는 고금의 사실에 능통하고

 

지식이 많은 碩學(석학)인데 일찍이 중국의 여러 곳을 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한 서점에 들어가

이 책을 얼핏보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끼기를 천금을 얻은 것과 같았다 곧 이책을 사가지고

門下(문하) 庸菴(용암) 李允珪(이윤규)등에게 수십권을 베껴 쓰게하여 장차 출간할 예정이라 하였다

오호라!
나 또한 생각하기를 檀奇(단기) 2000年史가 반듯이 실사가 있을 터인데

아직 상고할 데가 없는 것은 여러번 병화를 겪으면서 역사를 보존하지 못하였기 때문 이였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요 하였더니 밝은 하늘은 진실로 헛되이 돌아가지 아니 함으로

柳氏(유씨)로 하여금 이 원본을 얻어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다

유씨가 가져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그가 평생에 갈망하던

열성 중에서 얻어온 것이므로 누가 기쁘게 읽지 않으며 누구가 말하여도 전하지 않겠는가

실로 우리 檀奇(단기) 2000년사가 다시 이세상에 밝혀지게 됨은 참으로 천고의 기이한 일이로다

原著(원저) 주인공 野勃(야발)선생은 13년이란 성상을 노력하여 친히 古蹟(고적)을 박람하며

 

모든 역사를 참고하여 精選(정선)하여 편찬하였고 그 백여년 후에 발해의 大文人 黃祚福(황조복)이

다시 펴내어 세상에 널리 전하였으니 이 두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공은 대단히 크며

이것을 다시 전한 일에 관하여는 柳李(유이) 두분의 공도 또한 적지 않다

오호라!
大野勃(대야발) 皇祚福(황조복) 선생은 마음과 붓으로서 국가를 위하여

腦力(뇌력)과 血誠(혈성)을 다한 참애국자요 柳,李(유,이) 두분도 심력과 필력으로서

애국하기에 정성을 다한 분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번역하고 계속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펼치면

역시 만고에 없어지지 않을 공이 되리로다

丹齊(단제) 申采浩(신채호) 識

註解:李觀求(이관구:1885-1952) 자는 明叔(명숙) 호는 華史(화사) 황해도 송화 태생으로

牧隱(목은) 李穡(이색)의 20세손이며 이 책을 중국에서 찾은 柳應斗(유응두)의 제자인 庸菴(용암)

李允求(이윤구)의 아들이다

대성학교를 거쳐 숭실학교 재학시 항일운동에 투신 상해에서 신채호 이동영 등과 함께

同濟社(동제사)를 조직하여 비밀결사활동을 하였으며 이시영과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성곽규 조선환에게

총독 암살지령을 내려 1918년 왜헌에 체포 10년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후 건국협진회를 조직하고 사학연구회도 설립하였고 1949년에 아버지 李允求(이윤구)로 부터

물려 받아 숨겨 오던 한문으로 된 檀奇古史(단기고사)를 金斗和(김두화)와 함께 국한문으로 번역하여

출간하고 피난지인 전북 옥구에서 1952년에 세상을 떠났다

서울 성북동 집에 두고온 檀奇古史(단기고사) 한문본도 6.25동란 때에 없어졌다
둘째 아들 夏馥(하복)씨는 천안에 살고 있다
申采浩(신채호:1880-1936) 구한말 언론인이며 사학자로서 충남 대덕에서

출생하여 20여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논설위원을 지냄

일본의 침략으로 독립운동에 투신 조선혁명선언문을 발표하고

사대주의를 통박하여 민족사관을 고취하였으며 일본과 맞서다가 중국 여순 감옥에서 옥사하셨으며

<조선상고사> <독사신론>등 저서를 발표하여 민족사학에 큰 행적을 남겼으며

 

특히 중국에 있으면서 국내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많은 기고를 하였으며

북경의 권위지 중화보 북경일보에 기재된 선생의 논설은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華史(화사) 李觀求(이관구) 선생과는 친구사이로 1912년 만주 안동에서 이책을 출간하려고 하였다

檀奇古史(단기고사)의 책을 옮기면서
단기고사는 대야발이 천통 31년(서기727년)에 쓴 책으로

처음에는 발해문이였으나 건흥 8년(서기 825년)에 황조복이 한문으로 옮겼다

이 한문본이 긴세월 전해져 오다가 광복후(서기1949년)에

김두화 이관구 선생 두분이ㅣ 국한문으로 펴낸 것을 이번에 누구든지 이해할수 있도록 한글로 옮겼다

이 책이 어떠한 책이라는 것은 저자의 말과 같이 이경직 신채호 선생 등의 설명이

자세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우리 역사를 말살하려는 시도가 그렇게도

집요하게 계속되는 세월속에서도 천년이 넘도록 이 책이 살아 남아 후손된 우리가 볼수있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라고 여겨질 뿐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어떤 보물에도 비길수 없는 값진 겨레의 유산이다

이 책은 광무 11년(1907년)에 학부에서 출간계획을 세웠다가 중단된 일이 있다

그후 임자년(1912년)에 만주에서 신채호 이관구 두분이 펴내려 하다가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복후 이관구 선생은 김두화 선생과 함께 국한문으로 번역하고 이시영 선생의 교열과 한재용씨의

뒷바침으로 비로소 펴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책 역시 굳게 절어 붙은 사대 사학자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한채 때가 되기 만을 기다려 왔다

이제 겨레의 가슴에는 새로운 기운이 돌고 있으니 할머니 품에서나 들을수 있었던

아득한 조상의 얘기를 확인하고 싶어하는등 커가는 자식들이 우리에 대한 관심이 이외로 높다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겠기에 쉬운 말로 옮길 마음을 먹게되었다 황조복의 한문본은 끝내 찾지를 못했다

이 책이 어디엔가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워 버릴수 없다

<단기 4319년(1986년) 4월 고동영>

 

자료출처 : http://blog.daum.net/looktrue/2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