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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역시 4가지 본이 전해집니다.

 

1. 발해 석실본

발해의 제3대 임금 문왕(737 ~ 797)이 백두산 보본단 석실에
봉장한 책으로 전문 366자를 천훈, 신훈, 천궁훈, 세계훈, 진리훈의 5훈으로 분장하였다.
현재 대종교에서 사용하고 있다.

 

2. 천보산 태소암본

행촌 이암이 천보산 태소암 근처에서 발굴한 석함 속에서 찾은 책으로
전문 366자를 1왈 허공, 2왈 일신, 3왈 천궁, 4왈 세계, 5왈 인물의 5왈로 분장하였다.

 

3. 태백일사본

일십당 이맥(이암의 현손)이
1520년에 편술한 태백일사에 실려있는 서본(書本)으로
이암의 소장본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문 366자를
제1장 허공, 제2장 일신, 제3장 천궁, 제4장 세계, 제5장 인물의 5장으로 분장하였다.

 

4. 신사기본

1908년 홍암 나철(대종교의 교조)이 백두산의 도인 백봉신사가 보낸
두암(頭岩)으로부터 친수(親受)하였다는 <신사기> 가운데 교화기(敎化記)에 기록된
서본으로 전문 366자가 장별 소제목 없이 5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마 발해 석실본이 원본인 듯하며, 그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일신고가 발해에 전해진 뒤
발해에서 다시 찬문과 서문이 덧붙여졌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이 후세에 전해지게 된 <삼일신고봉장기>를 통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발해 이전까지의 전래 경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구려의 개국공신으로 알려진 극재사의 <삼일신고독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 때 한문본 <삼일신고>가 전래되어 유통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해 석실본의 전래 경위를 알아본다.

고구려로부터 발해로 전해진 한문본 <삼일신고>는 먼저 발해의 왕실로 들어갔다.
천통 16년(서기 713년) 10월에 고왕 대조영은 <삼일신고>를 읽고 감동하여
이 책을 찬양하는 <어제삼일신고찬>을 짓는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는 반안군왕 대야발(대조영의 아우)이
고왕의 명을 받들어 이 책의 서문을 썼다.

 

그리고 선조성의 좌평상사 겸 문적원감인 임아상이 본문의 주해를 달았으며
문왕 대에 이르러 앞의 찬문, 서문, 본문 및 주해에다

전조(前朝) 고구려 개국공신 극재사가 쓴 <삼일신고독법>을 넣고,
책의 말미에 자신이 쓴 <삼일신고봉장기>를 덧붙여 <삼일신고어찬본>을 엮었다.

그 때가 대흥 3년(서기 739년) 3월 15일이다.


문왕은 자신의 봉장기에서 예전의 석본, 단본이 세파에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 했고,
조부 고왕으로부터 <삼일신고>를 전해 받은 뒤로 이 책을 잃어버릴까 봐 항상 근심하였다 한다.

 

그래서 당시 영보각에 봉장한 어찬본의 <삼일신고>를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보본단 석실 속에 옮겨 보관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비장된 상태로 약 1200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고 있다가
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수도하며 도천하던 백봉신사가 한배검의 묵시를 받아


보본단 석실에서 이 책을 찾아낸 뒤 두암이라는 노인을 통하여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한얼교실] 삼일신고 1강 천훈1

 

 

한얼교실 삼일신고 1강 천훈2

 

여기에서 이 강의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것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형상없는 유일신의 하느님이 아닌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말하면 우리민족은 기독교가 이땅에 들어 오기전에

이미 형상이 없는 하느님이 아닌 인격적인 하느님을 모시고 있었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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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하면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민족은 인격적인 하느님을 모시고 천제를 올리고 받들어 모셨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만 하는것이다.

 

그것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고있는

환단고기와 천부경 그리고 삼일신고에서 명명백백히 밝히고 있는것이다.

 

이것을  삼일신고에서 밝히고 있는 인격적 하느님을

기독교의 형상이 없는 유일신하느님으로 착각하면 아니되는 것이다.

 

불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