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의 위작 논쟁2

 

 이번에는 재야사학자의 입장에서 환단고기와 그에 관한 논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강단사학자들이 위서로 평가해버린 고서를 놓고 반대의 의견이 만만치 않음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상당수의 사학자들은 이 책을 근거 있는 것으로 믿으며,

찬란한 고대사의 기술 자체를 부정부터 하고 보는 기존의 사학계와 국정 교과서의 저자들을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공격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사실 현대적인 용어가 사용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위서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후세에 다시 쓰이면서 가필(加筆)이지 전체의 위작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보편적인

증거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재야사학자들의 논거

단군조선과 관련된 역사의 논쟁이 환단고기와 규원사화 등에서 논쟁이 거듭되자

젊은 천문학자들을 중심으로 고서들의 과학적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다시 말해 단군세기에서 열거된 천문학적인 내용을 검증해 봤던 것이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와 표준 연구원 천문대의 라대일 박사는 학계에서 방치해 왔던

상고사 서적들의 내용을 천문학적인 방법론으로 검증한 결과 상당 부분이 당시의 실제 상황과 일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들의 연구는 상고사 서적들에 나타난 당시의 천문 현상 기록을

당시의 실제 천문 현상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교수와 라박사가 연구의 원본으로 삼은 서적은,

단군조선 시대에 대한 풍부한 역사 기록과 함께 당시의 천문 현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단기고사>와 <환단고기>에 들어 있는 <단군세기>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확한 오행성의 일치 현상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학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후세에 맘대로 쓰인 날조된 위서가 아니라는 것이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오행성 결집 현상과 함께 박교수 팀이 주목한 것은 큰 썰물에 대한 기록인데 두 사서 모두 제29세 마휴단제

9년 (BC 935년) 때 「남해조수퇴삼척」이라 하여 남해의 바닷물이 3척이나 뒤로 물러났다고 적혀 있다.

 

오행성에 대한 조사와 마찬가지로, BC 935년을 기점으로 전후 2백년 간에 나타난

조석력의 작용을 조사해 본 결과, 기록에 나타난 해로부터 4년 후인 BC 931년 11월 22일에 이 기간 중

가장 큰 조석력이 작용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기록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전후 2백년 기간에 가장 큰 조석력이 4년 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박교수는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후대의 누군가가 작위로 이 기록을 써넣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식민사관의 관점인지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일제 때 단군조선 말살 운동에 앞장섰던 일인 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가 "조선의 고대사 관련 사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밖에 없다.

그 밖의 사서는 사서가 아니라 위서다."라고 주장한 것을 기성 사학계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의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한 소국의 역사로 개악하고자 했던 일인 학자들에게,

적어도 고대 조선이 대륙을 사이에 두고 중국 민족과 자웅을 겨루었던 고대 강국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는 이들 상고사 서적들은 눈의 가시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기성 사학계의 원류와 현재 국정 교과서 편찬위원을 맡았거나 그들에게서

수학한 사학자들은 엄밀히 따져 보면 일제시대에 그들의 밑에서 우리의 국사를 배웠던 계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들에게서 수학했던 사관이 황국사관이었음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우리의 현재 국사 교과서를 봐도 여기저기에서 그 잔재가 나타난다.

 

고서는 신중한 연구를

우리 역사의 연구는 사실 일제시대를 기점으로 활발해졌고 거의 모든 기록이

일본인들이 정리해 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저변에 깔린 황국사관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 곁에서 맴돌고 있다.

 

깊이 있는 연구도 해보지 않고 용어 몇 개를 이유로 들어 찬란한 우리의 역사일지도

모르는 부분을 그냥 위서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굳이 실증사학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저변에

황국사관이 꿈틀대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재야 사학자들의 의미 있는 항변이라 하겠다.

 

이번 연구 결과 박교수 팀이 내린 결론은, 이 사서들이 그 동안 일본인 학자들이나

국내 기성 사학계에서 주장한 것처럼,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전적으로 날조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은 왜곡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천문 현상은 윤색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서들의 상당 부분은 단군 조선 당시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라는 것이

박교수의 말이고 보면 진위를 떠나서 찬란한 고대사인 우리의 환단고기는

학생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자료출처 : http://handam.kr/70084116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