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僞書)라는 말은 어디서 생긴것일까?

여기서 위(僞)란 글자는 거짓 위 자이다. 환단고기가 거짓이다. 란 말인데

위서란 말고 거짓이란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환단고기는 알려진대로 5권의 책이 합본된 서적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옛날 인쇄를 하는 것이 아닌 필사로 책을 엮어내는 시대에는

여러가지 이본이 존재한다는것이다. 예를들면 같은 제목의 책이라도 필사하는 과정에서

글자의 오류나 내용으로 인해 알아볼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5권의 책이 오래된 책이라 

판독이 힘든 구절은 필사자가 문맥상 맞는 단어를 첨부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시대 서적을 보면 00본 00본 등 판본이 여러가지가 존재하는 서적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단지 본이 다르다는것을 이야기 할뿐 그자체가 위서라고 말하는 자는 없다. 

환단고기에는 분명히 현대적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단지 그것만을 가지고 환단고기 전체가 거짓이다 란 말로 매도하는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임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더 잘알고 있다고 본다. 국사를 배운 사람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1945년 이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울궈먹어오던 현대 사학자들이 가장 근간을 둔

문헌이 삼국사기 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신뢰할수 없다 라는 이유로 아예

언급자체를 해오지 않았고 삼국의 역사를 대폭 끌어내렸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는 그당시 이미 위서로 취급되었어야 하는데 왜 연구되었단 말인가?

 

물론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의 사서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임이 분명하다. 형평성을 말하고자 하는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풍납토성발굴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리고 삼국유사도 조작되지 않은 정덕본과 일본이

조적한 삼국유사 판본이 있음이 이미 확인되었다.

 

삼국유사 정덕본에는 석유환국(釋有桓國) 이라고 되어 있으나

일본의 금서룡이 조작한 삼국유사는석유환인(釋有桓人) 이라고 조작되었음은

이미 확인된 내용이다.

 

아울러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몇가지 증거와 함께 위서론에 대한 반론정도

몇가지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예컨대 민족사를 알려면 그 민족사와 함께한

정서와 정신을 알고 있어야 한다.

 

불교인의 가치관을 유물론자의 잦대로 재어 "고려시대에는 왕이 타락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절을 무분별하게 지었고 이로인해 농민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란

내용과 불교의 근본정신을 철저히 연구하고 공부하여 고려시대의 귀족과 농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것이다. 

 

또한 중세시대의 사람들을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입장에서 비판하는것도

잘못된 것이라 할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나라와 함께한 정신과 철학에 정통하지

않으면 평할 자격이 없다

 

필자가 운영했던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까페(지금은 운영을 넘겨주고 하지 않고 있다)에서

정리했던 내용을 기억나는대로 되짚어 보겠다.

 

환단고기는 이유립선생이 마지막으로 발간했던 1940년도에 인쇄한 80권의

환단고기 인쇄본이 있다. 그중 2권을 가까운 몇몇 지인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유립선생이 사망직전 무렵의 내용과 원본행방에 대한 내용은 다음번에 서술하기로 하고

요약만 하겠습니다.

 

첫째 환단고기에 강화도 제천단에 참성단을  단군세기 단군왕검 무오51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단고기의 단군조선 실재를 보여주는 평앙도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릉이 1993년 북한 당국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여기서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까지 발견 되었다.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여기에 대해 "역시 조작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근거로 

말한것이 관에 박힌 못이 단군시대의 것이 아니라 연대로 보아 고구려시대 정도의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짜다 라고 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만 보더라도 영조실록에 영조가 단군릉이 훼손되어서 

단군릉을 보수할것을 영조가 직접 지시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조선왕조 실록에 단군릉에 대한 내용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그것을 볼때 조선시대때에 단군릉을 보수하고 실존하였음을 알수 있다.


둘째 환단고기에는 발해 3대왕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大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이라고 언급하여 이사실은 1949년에 입증되었다.

 

===> 이것을 가지고 환단고기가 1949년 이후 이유립선생이 지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2012년에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어 증명된다면 그때는 환단고기가 2012년

이후에 발간된것이겠군.


셋째 환단고기의  단군조선 13세 흘달간군 50년 (기원전 1733)  오성취루현상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로 입증  천문현상이 조작 왜곡될 확율은 0.007%라고 했다.

그러나 오성취루 현상 뿐만아니라 일식과 월식등이 등장하는데 그 오차는 다른 고려시대

사서보다  오히려 정확하다고 할수 있다. 1년정도는 정말로 근소한 차라고 할수 있다.


넷째 고구려 이정기왕국의 입증은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고구려를 위하여' (김병호저)에서

처음으로 소개 되었고 KBS 역사스페셜 팀에서 상세히 촬영 중국 현장 답사를 거쳤다. 

일제시대때 독립운동으로 만주일대를 숨어다니던 개인이 이런 방대한 유적답사를 직접해서

다 조작할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다섯째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장수왕이 즉위하자 建興이라는 년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이 년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光背銘 에 建興五年歲在丙辰으로

나타납니다. 한단고기에만 建興라는 연호를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불상의 光背銘 에 建興五年歲在丙辰라고 적혀져 있죠. 이것이 1915년 밝혀진 일이다.

여섯째  조대기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太祚이고

조부는 子遊이며 증조부는 廣 이라 했다. 환단고기 기록에만 등장하는 조부 증조부 이름이다.

 

이것은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이 子遊로 나타나고 있다. 계연수 선생이 이 정보를 입수하여

 

환단고기를 조작하였다면 중국정부를 움직이는 분이었다고 할것이다.

그것도 그당시 부패할대로 부패한 중국정부를 일본군을 피해 도망다니는중에 말이다.

 

일곱째 태백일사에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 국과

백제 상인이 교역한 기록이 있다. 이는 백제가 현재 캄보디아인 扶南國과 교역 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까지 뒷받침 해 줍니다. 

 

여덟째 사대 식민사학의 원조인 이병도박사도 조차도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단군조선은 실존역사라고 죽기직전에 조선일보 기고문을 쓰고 죽었다.

지금 식민사학의 주장을 하는 이들은 거의 모두가 이병도박사의 제자들이다. 

 

한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은 서적 구성상 몇가지 단어가

현대적 용어가 보인다는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근 현대적 용어 몇개가 보인다는것이

위서가 될수 있는 이유가 절대로 아니다.

어떤 사서이든 전체 내용이 완벽하게 입증되는 사서는 단 하나도 없다.

 

전세계를 막론하고 수백년이 지난 역사서는 다 그렇다.

그러나 유독 환단고기만을 붙들고 하는 소리인것이다. 그것이 인정된다면

지난 1945년 이후 주장해온 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사람들이

바로 그런소리를 하는것이다.

 

바로 임승국교수님과 안호상 박사님이 1974년 국사편찬위를

상대로 제소한 국사교과서 파동의 책임을 지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 http://blog.naver.com/garion70?Redirect=Log&logNo=140009252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