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에 합본된 삼성기는 조선왕조실록 세조편에 나옵니다
환단단고기 제일 첫편에 나오는 사서입니다

→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할 정도로 지시의 긴박성이 나온다


아래 자료를 참고 바랍니다

http://sillok.history.go.kr


世祖 007 03/05/26(戊子) 003

→ 서기 1457년 / 명나라 천순(天順) 원년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諭八道觀察使曰: “《古朝鮮秘詞》、《大辯說》、《朝代記》、《周南逸士記》、

《誌公記》、《表訓三聖密記》、《安含老》、《元董仲三聖記》、《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文泰山ㆍ王居仁ㆍ薛業等三人記錄、《修撰企所》一百餘卷、《動天錄》、《磨蝨錄》、《通天錄》、

《壺中錄》、《地華錄》、道詵^《漢都讖記》等文書, 不宜藏於私處, 如有藏者, 許令進上, 以自願書冊回賜, 其廣諭公私及寺社。”

【원전】 7 집 200 면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도증 기 지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

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박성수) 안함로와 원동중

→ 검색 박성수로 하시면 더 자세한 자료를 보실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실린 네 사서는 어떻게 해서 계연수에게 전해졌을까 ?.
“환단고기”의 범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그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삼성기’에는 두 종류가 남아내려 왔었다고 하는데
서로 유사하고 또한 어느 것도 완편이 아니다.

‘삼성기’ 두 편중 하나는 우리 집(계연수)에 있었던 것인데 안함로가 찬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동중이 찬한 것으로
태천의 백관묵이 얻어 보관해 온 것으로 이것을 ‘삼성기’ 하권으로 삼는다.
그리고 상․하를 합해서 ‘삼성기’ 전이라 한다.


그러므로
계연수가 “삼성기”를 상, 하로 나누었으나
실은 그 찬자 즉 편자가 다르고 소장자 역시 다른 이본이었다.
그러니 어느 쪽이 정본인지 알 수가 없는 책이었다.

삼성기 (1) 상편  안함로 찬  계연수 소장
삼성기 (2) 하편  원동중 찬  백관묵 소장
그런데 위의 “삼성기”(1) 상권의 찬자 안함로는 어떤 사람이었나.

안함로는

신라 시대의 스님으로 본명이 김안홍이라 하였으며
“해동고승전”에는 신라 진평왕 23년(601)에 왕명으로 중국 수나라에 갔다가
4년간 대흥성사란 절에서 수도하였으며 진평왕 27년(606)에 귀국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 안함로는 신라의 유학승이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576년 즉 진지왕 1년에 귀국하였다고 기록되어있어
약간의 시차가 발견되나 문제 될 것은 없다.

어찌 되었건 안함로의 신원은 밝혀져 있으나
“삼성기” 하편의 저자 원동중은 그 신원이 미상이다.

한 편 삼성기를 소장했던 사람의 신원을 보면
“삼성기” 상편을 간직했던 분이 운초 계연수(?-1920)였다.

이 분은 근대 인물이다.

평안북도 선천의 선비로서
해학 이기(1848-1909)에게 사사하다가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러다가 현지에서 별세한 애국지사였다.

계연수는 일가족을 대동하여 만주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 등을 설립하여
유명한 석주 이상룡(1858-1932),
그리고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1868-1943)
송암 오동진(1989-1930) 등 독립운동가와 새겨서 서로 벗이라고 할 정도로 친했고
이 책을 내는데도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런데 신원 미상의 원동중이 찬한 [삼성기 하편]은 평안북도 선천의 백관묵 진사인데
계연수가 그에게서 얻어 소장해 온 것이라 전하는 것이다.


(계  속)

▒ 보완자료 조선왕조실록 "수거령"관련 사서목록


< 세조 3년 5월 26일 >


세조 3년 5월 26일(무자) :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 대변설(大辯說)
- 조대기(朝代記)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誌公記)
-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 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 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 동천록(動天錄)
- 마슬록(磨쳗錄)
- 통천록(通天錄)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 예종 1년 9월 18일(무술) >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志公記)》
- 《표훈천사(表訓天詞)》
- 《삼성밀기(三聖密記)》
- 《도증기(道證記)》
- 《지이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 문태(文泰)·옥거인(玉居仁)·설업(薛業) 세 사람의 기(記) 1백여 권과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명경수(明鏡數)》 및
-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綿布) 50필(匹)를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하였다.

< 성종 원년 12월 9일(무오) >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을 수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보내다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전일에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志公記)》
- 《표훈천사(表訓天詞)》
- 《삼성밀기(三聖密記)》
- 《도증기(道證記)》
- 《지리성모(智異聖母)》
- 《하소량훈(河少良訓)》
-  문태(文泰)·왕거인(王居仁)·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 권과,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명경수(明鏡數)와 무릇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 등

여러 서책(書冊)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보낼 일을 이미 하유(下諭)했으니,

상항(上項) 명경수(明鏡數) 이상의 9책과
-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
- 《도선참기(道銑讖記)》는
전일의 하유(下諭)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 하였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