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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천을 예고하심
상제님께서 하루는 수부(首婦)님께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세상에 있으면 삼계의 모든 일이 지연되리라.


이제 천상에 가서 공사를 펴내어 빨리 진행케 하고
오리니 기다리지 말라. 공사를 마치면 돌아오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0:1)

 

 

8월 1일에 환궁하리라

이 날 저녁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곳에서 일을 꾸미기가 구차하여 이제 떠나려 하노라.
갔다 오는 사이에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일이 있으면 내가 하는 것으로 알아라.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
내가 짓는 일이 호호탕탕(浩浩蕩蕩)하리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팔월 초하루에 환궁(還宮)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0:32)

 


형렬에게 기대어 태을주를 읽으심


이 때 호연이 신안으로 보니 장수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장들이 말을 타고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채
문밖과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더라.


신장들이 상제님께 각기 인사를 드리며
저는 아무개입니다, 아무개입니다.’ 하고 일일이 보고를 드린 다음
한 신장이 앞으로 나서서 “모시러 왔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호통 치시기를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 뭣 하러 그새 발동을 했느냐!


때가 되기도 전에 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
신장들이 일제히 양쪽으로 갈라서서 하명을 기다리더라.


형렬이 호연에게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니 호연이
비가 저렇게 쏟아지는데 나가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 하며 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안아다가 놓아 줘라.” 하고 명하시매
누가 뒤에서 덥석 보듬어다 찬문의 방에 내려놓고는 문을 닫고 가 버리는지라

 

호연이 홀로 방에 앉아서 보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신장들 가운데 한 신명이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탁 쳐 보더니
신장들을 향하여 “아직도 시간이 멀었구나.” 하고 이르더라.


이에 줄의 맨 앞에 선 신장 하나가
줄의 가운데로 걸어나오니 양쪽 신장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르거늘
그렇게 얼마를 걸어나와 다시 양쪽으로 갈라져서 되돌아가더니 이내 처음과 같이 정렬하니라.


신장들이 두 줄로 서서 명을 기다리는데
상제님께서 “나○○ 왔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그 신장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기로
다른 신장이 나서며 “오시(午時) 지났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놈아, 네가 시기를 아느냐?” 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어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드시고
날은 덥고 머나먼 길을 어찌 갈꺼나.” 하시며 형렬에게 몸을 기대신 채
작은 소리로 태을주(太乙呪)를 읽으시니 방안에는 김형렬과 최상문,

그 외 두 명의 성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더라.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
(증산도 道典 10:58)

 


너는 올 곳이 못 된다

사방에 잠시 흑암이 깃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호연이 있는 방으로 번갯불이 쑥쑥 들어오며 문이 저절로 열리거늘


호연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올라가지 마요. 떨어지면 어째요?
나랑 가요!” 하고 동동거리며 울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니라.


상제님께서 이를 애처로이 여기시어 “너는 올 곳이 못 된다.
나도 이제 몇 번을 둔갑할지 모르고, 나라고 안 늙고 이렇게 생겼간디?” 하시니


호연이 천만 뜻밖에 상제님께서 대답해 주심에 반갑고
또 안심이 되어 “둔갑은? 또 호랑이 가죽 둘러써요?” 하고 대꾸하거늘
상제님께서 “아니, 내가 천하를 갖고 내두르니 너 같은 녀석은 후우 불면 날아가.” 하시니라.


하늘길만 쳐다보며 울더라

이에 호연이 아직도 상제님께서 곁에 살아 계신 것처럼
느껴지므로 어디 해 봐, 내가 날아가는가. 안 날아가네!” 하며 장난을 치는데

 

상제님께서 “호연아, 잘 있거라. 이 다음에 또 만나자!”
하시며 마지막 인사말을 하시더니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시거늘


마당과 고샅에서 엎드린 채 비를 맞으며 흐느끼던
성도들이 모두 일어서서 오색 서기가 비치는 하늘길만 쳐다보며 울더라.


이 날은 환기(桓紀) 9108년, 신시개천(神市開天) 5807년, 단군기원(檀君紀元) 4242년,
조선 순종(純宗) 융희(隆熙) 3년,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6월 24일(양력 8월 9일)이요
상제님의 성수(聖壽)는 39세이시더라.
(증산도 道典 10:60)

 


영신이 뜨셨다

호연이 상제님을 뵈려고 바깥사랑으로
들어가니 형렬이 “벌써 떠나셨다.” 하고 이르거늘
그래도 가까이 가서 주물러 보며 ‘여기 있는데, 참말일까?’ 하고

용안에 얼굴을 가져다 대니 찬바람만 훌훌 나오더라.


이를 지켜보던 형렬이 안쓰러워 “영신(靈身)이 뜨셨다.” 하고 재차 이르거늘

상제님께서 조화로 하늘에 오르시고 몸만 계시는 줄로 믿었던 호연이 그제야 상제님께서

어천하셨음을 실감하니라.


이 때 공우가 크게 울며 말하기를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大人)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이상이 없이 잠자는 것과 같으리오.” 하고
덕찬, 준찬 형제는 “허망하다, 허망하다.” 하며 슬피 울부짖으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나자 잠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뜨고 날이 청명하게 개며 오색 구름이 뜨더니
지붕으로부터 하늘까지 뻗친 영롱한 서기가 이레 동안 계속되니라.
(증산도 道典 10:61)

 

 

이놈들 일어나거라

다음날 아침, 어천하신 지 이레 만에 출상을 하려는데
형렬이 상여꾼을 얻지 못하게 하고 종도들로 하여금 상여를 메게 하거늘
종도들이 한 번이라도 더 상제님을 가까이 하고 싶어서 대여를 서로 메겠다고 나서니라.


대여 준비를 마치니 형렬이 한 종도에게
호연이 불러오라.” 하여 호연을 천구(遷柩)하는 과정부터 참관토록 하고 종도 네 사람으로 하여금

상제님의 성체를 대여에 모시도록 지휘하니라.

 

이에 네 사람이 사랑방으로 가는데 문앞에 이르니
방문이 벌컥 열리며 상제님께서 수의(壽衣)를 입으신 채 걸어 나오시거늘


종도들이 모두 질겁하여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버리니
상제님께서 “야, 이놈들! 일어나거라.” 하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시니라.


종도들이 의아해하며 살며시 안에 들어가
재궁(梓宮) 속을 들여다보니 상제님께서는 여전히 누워 계시거늘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여 재궁을 들고 밖으로 나서는데


돌연 재궁 속에서 무겁다고 마라. 무겁다고 마라, 잉?”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는지라

종도들이 “야, 선생님이 안 돌아가셨다!


살아 계신데 이래서 어쩔거나. 태운장 어른, 나오시오~!” 하며 재궁을 들고 우왕좌왕하매
형렬이 사랑방에서 급히 따라 나오며 “개의치 말고 어서 모셔라.” 하고 이르니라.

 

이에 어찌할 수 없이 성체를 대여에 모신 뒤에
종도 열여섯 사람이 대여를 메고 발인을 하려고 하니

 

느닷없이 “나 간다~. 아이고,
내가 또 언제 여길 와서 이럴거나~.” 하는 구슬픈 만가 소리가 울리거늘

처음에는 모두 요령잡이가 하는 소리로 알았더니 자세히 들어 본즉 상제님께서 부르시는 노랫소리더라.


종도들이 마음을 졸이며 ‘정작 안 돌아가신 것을 이러는가?’ 하여
그저 서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재궁을 내려서 확인해 보니 고요하신 모습 그대로이거늘


마음을 다잡고 다시 대여를 메고 가려는데 또 “무겁다고 마라.
내가 무겁게 하려면 무겁고, 가볍게 하려면 가벼우니 무겁다고 마라.” 하는 노랫소리가 들리는지라
종도들이 다시 대여를 멈추고 확인을 해 보나 역시 그대로이더라.

 

이렇듯 대여를 메고 가려고만 하면 살아 계신 듯 조화를 부리시니
출상을 하려다가 멈추기가 수차례요, 아침에 시작한 것이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나가게 되니라.

(증산도 道典 10:70)

 

 

흩어져 돌아간 성도들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즈음에 성도들에게 몇 차례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거든 일심(一心)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 데 공을 세우고

 

오직 의로운 마음으로 두 마음을 두지 말고
덕 닦기에 힘써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더니
천만 뜻밖에도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매 몇몇 성도들이 크게 낙심하여 흩어져 돌아가니라.
(증산도 道典 10:62)

 

 

대여가 고향 객망리를 찾아가니

날이 밝으매 재궁을 다시 대여에 모시고 고부로 향하려는데
형렬이 다가가 재궁을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아뢰기를 “서운하지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이어 “도용이 ‘도(道)’ 자를 쓰려니 도용이 이리 오너라.” 하고 호령하니라.
이에 호연이 나오니 대여 앞 장강채 위에 앉히며 “어디 가지 말고 꼭 이 근처에 있어라.”

하고 단단히 이른 후에 대여를 출발시키거늘

전날과 같이 종도 열여섯 명이 대여를 메고, 서른두 명이 그 뒤를 따르며 번갈아 메니라.


대여의 맨 앞에는

湖南西神司命
호남서신사명이라 쓴 명정(銘旌)을 세우고
이어서 만장, 공포, 불삽, 운삽이 따르며 그 뒤를 수없이

많은 종도들이 ‘수(壽)’와 ‘복(福)’이 새겨진 기를 들고 따르거늘
수많은 깃대들이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마치 물결치는 듯 장관을 이루더라.

 


대여가 구릿골을 출발해 내주평을 거쳐 고부로 가니
운상 행렬이 지나는 마을마다 평소 상제님께 은혜를 받았던 이들과 풍문으로라도
그 신이하심을 들었던 이들이 모두 나와서 절을 하고


서로 ‘이 세상 뜨신 것이 참으로 아깝다.’고 이르며
술을 동이째로 내놓거늘 행렬을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목을 축이면서 가니라.


또 상여 속에서 “무겁다고 마라, 무겁다고 하면
어깨가 미어지니 무겁다고 마라.” 하는 상제님의 노랫소리가 들리므로
종도들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가는데

 

대여가 내주평에 다다르니
길 양쪽으로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거늘
내가 죽어 나가는데 너는 장승마냥 서 있냐?” 하고 호통치시는 상제님의 음성에
나무들이 저절로 뚝뚝 부러져 나가는지라


이를 본 모든 사람들이
비록 어천은 하셨을지언정 여전히 신이하신 그 조화권능에 감복하여
어찌 멀쩡하던 나무들이 저렇게 뚝뚝 부러지는고?” 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


대여가 고부 객망리에 이르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맞이하거늘
개를 잡아서 칼을 꽂아 올리고, 술도 동이째로 올린 후에 모두 대여를 향해
절을 올리며 상제님의 어천하심을 슬퍼하니라.


이윽고 대여 행렬이 본댁 앞에 이르매 대여가 앉았다 일어났다 하거늘
호연이 “왜 앉았다, 섰다 해요?” 하고 물으니 형렬이 대답하기를 “하직하시느라 그런다.” 하니라.
선산과 본댁을 향해 하직 인사를 마치고 대여를 돌려 구릿골로 돌아오니 이미 해가 기울었더라.
(증산도 道典 10:72)

 


어천하신 후

하늘의 해와 달처럼 언제까지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상제님께서 뜻밖에 어천하시니
성도들은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 오장에 사무치는 슬픔을 안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때 몇몇 성도들이 원평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에서
오는 구릿골 사람을 만나 상제님께서 어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니


그 사람이 이르기를 “그게 무슨 말이오? 그대들의 선생께서
방금 장승백이에서 술 잡수시는 것을 내가 보고 왔는데.” 하며 믿지 않는지라


성도들이 모두 이상히 여기는데 한 성도가 짚이는 바가 있어
다시 구릿골로 돌아가 남의 이목을 피해 초빈을 헤쳐 보니 과연 빈 관만 남아 있더라.


또 다른 한 성도가 전주에 가서
자기의 친구에게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네.” 하고 말하니

그 친구가 “자네의 선생님이 지금 용머리고개에서 술을 잡숫고 계시는 것을 보고 왔네.” 하며 의아해하더라.
(증산도 道典 10:77)

 

 

너희들을 살리려고 갔는데

하루는 형렬이 힘없이 방에 앉아 울며 탄식하기를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 하며 남부끄러워 크게 울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뜻밖에 방 밖에서 큰기침 소리가 나며
형렬아, 너는 그만하면 대략 알 줄 알았더니 그다지 무식하냐?


너희들을 살리려고 내가 갔는데 탄식이 웬 일이냐.”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므로 형렬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상제님께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형렬이 눈물을 흘리며 배례하고 옆으로 서니 말씀하시기를
그래, 형렬아. 너는 너희 선생 미쳤다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더냐.


수운가사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르고 보면
만단설화(萬端說話)한 연후에 소원성취(所願成就) 하련마는 알고 따르기 어려워라.
따르는 자 만복동(萬福童)이요, 못 따르는 자 깜부기 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판안 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이러하니,
판안 사람 판안 공부 소용없어 허리띠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鳳凰)이 지저귄다.


판안에 그 문서(文書)로 아무리 돌려 보아도 할 수 없어
판밖의 것을 가르치자고 허튼 마음 거머잡고 죽기로 찾았으니 조금도 걱정 마라.


누런 닭이 소리치며 날개 털면 판밖 소식 알리로다.
네가 그렇게 서러워하니 판밖에 있더라도 소식을 전해 주마.” 하시니라.
그 뒤로 얼마간 상제님께서 밤마다 오시어 생존시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일러 주시니라.
(증산도 道典 10:81)

 

 

어천 후에도 자주 나타나신 상제님


하루는 전주 종도 최 모(崔某)가 김 무역차 남도(南道)로 가는 길에
광주군 송정(光州郡 松汀)을 지나는데 길가 주막에서 상제님께서 약재를 걸고 계시거늘


한걸음에 달려가 절을 드리고 주안(酒案)을 마련해 올리며
여러 가지 말씀을 여쭌 뒤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그 종도가 일을 서둘러 끝내고 다시 그곳에 가 보니 상제님께서 계시지 않거늘
주막 주인에게 물으니 “며칠 전에 강선생님께서 약포(藥包)와 여러 기구를 운반하여
이 안동네로 옮겨 가셨소.” 하고 말하는지라


급히 그 마을에 가서 물어보니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


또 전주에 사는 종도 이도성(李道成)이
구례(求禮), 곡성(谷城)으로 마포(麻布) 무역을 위해 가다가
남원부(南原府) 근처의 큰길가 주막에서 상제님을 뵙고 큰절을 드린 후
주안을 준비하여 올리고 출발하였는데


무역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상제님을 다시 뵙고자 그 주막을 찾았으나 상제님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더라.


이렇듯 어천하신 이후로도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상제님을 뵈었거늘

어떤 사람은 ‘선생님과 더불어 영달리(永達里) 주막에서 술을 마셨다.’ 하고
남원에서는 김병선(金炳善)이 만나 뵈었다 하며


또 갈재 너머 사거리에서 약을 걸고 계신
상제님을 뵈었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전남 영광(靈光) 땅에서 뵙고 왔다는 사람도 있더라.
(증산도 道典 10:82)

 


첫 어천절 치성에 나타나신 상제님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신
어천 1주기 치성절을 맞이하여 많은 종도들이 구릿골로 찾아오니라.


종도들이 모여 “아이고, 우리 제자들이 수십 날을 육로로 천 리,
물로 천 리 그렇게 왔는데 선생님은 가뭇없이 안 계시니….” 하며 탄식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저희들이 다 모였는데 어찌 모르십니까? 진정 모르십니까?” 하며 부르짖거늘 갑자기 벼락이 치고

하늘이 우그르르 울리며 오색 찬란한 구름이 수를 놓더니

하늘로부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때 누워 계셨던 자리로 오색 서기가 박히더라.

 

그제야 종도들이 기뻐하며 탄성을 지르거늘
호연이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얘기 좀 하세요.” 하고 애원하니
상제님께서 “뭔 얘기를 하느냐? 시시하니 일부러는 얘기를 못 한다.


네가 하도 원을 하니까 너를 생각해서
이렇게라도 가다오다 해 주지, 내가 누구라고 나타나겠느냐.”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신명이 안 들고는
일을 못하는 것이니 너희들이 제를 지내면 천지신명들도 먹고 좋다마는 내가 천하일을 하러 다니는데

그것 먹으려고 내려오겠느냐?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마음을 진정으로 잘 먹어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0:94)

 

 

 

상제님을 만난 개벽대장 박공우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 박공우는 허망함과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신해(辛亥 : 道紀 41, 1911)년 봄 산기도를 가는 길에 전주장에 들러 경황없이 장터를 돌아다니는데
누가 등뒤에서 “공우, 자네 왔는가!” 하고 등을 치매 돌아보니 천만 뜻밖에도 상제님이시더라.

 

공우가 반가운 나머지 주저앉아 상제님의 다리를 부여잡고
한없는 서러움에 목놓아 우니 상제님께서 “공우야, 그렇게 울지 말고
저기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하시고


주점으로 가시어 술을 사 주시니 공우가 목이 메어 술을 마시지
못하다가 여쭈기를 “무심하게 저희를 버리고 어디를 가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하, 이 사람 별소릴 다 하네.
내가 나중에 올 터인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거듭 술 석 잔을 권하시고 일어서시며
자네, 어서 볼일 보러 가소. 나는 내 볼일 보러 가야겠네.” 하시거늘


공우가 여쭈기를 “볼일이 다 무엇이옵니까?
장보기를 작파하겠사오니 함께 가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자네하고
같이 가지 못하네.”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상제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꽉 붙잡으니 어느새 바람처럼 장꾼들 사이로 빠져나가시거늘


공우가 온 장을 찾아 헤매다가 문득 상제님의 뒷모습이
보여 급히 쫓아갔으나 끝내 상제님의 종적을 놓쳐 버리니라.


이에 공우가 구릿골에 가서
초빈을 들춰 보니 성체도 없고 늘 있던 온기도 없거늘
공우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선생님은 우리들의 눈앞에 숨으셨을 뿐이요
별세하셨다 함은 당치 않다.” 하니라.


이후 박공우 교단에서는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날을 ‘둔일(遁日)’이라 부르니라.
(증산도 道典 10:98)


 

어천 후 상제님을 뵌 차경석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
차경석은 천지가 무너진 것 같은 비통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편으로는 상제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의심하나 의논할 곳도 없는지라

 

차마 처자 형제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다만
상제님을 뵙고 싶으면 구릿골 약방에 가서 약장 앞에 배례를 드리며 그리움을 달래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달포가 지났을 무렵에
경석이 여전히 허망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여 대흥리를 서성거리는데
홀연 태인(泰仁) 쪽을 향하여 가시는 상제님의 모습이 보이므로 기쁜 마음에 부지런히 뒤쫓다가

 

태인 김경학의 집 부근에서 종적을 놓쳐 버리거늘
경석이 경학의 집에 들러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경학이 “정말 그러하냐.” 하며 경석을 따라나서니라.


두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니
마침 태인 돌창이고개를 넘어가시는 상제님의 모습이 보이거늘
한달음에 원평에 당도하여 상제님께서 생시에 자주 다니시던 젖통네 주막으로 들어가니


젖통네가 말하기를 “증산 어른께서
방금 술 석 잔을 잡숫고 ‘전주로 간다.’ 하시며 떠나셨습니다.” 하니라.


이에 두 사람이 부지런히 전주쪽으로 가다가 흔들네 주막에 이르러
주모에게 물으니 “그 어른이 조금 전에 술 석 잔을 드시고 전주로 가셨소.” 하거늘


문득 경석과 경학이 서로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오도록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라.” 하며
성도들에게 연락하여 7월 그믐께 구릿골 형렬의 집에 모이기로 약조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증산도 道典 10:83)

 

 

도장 개창을 선언하심

신해년 10월에 태모님께서 모든 일을
안돈(安頓)하신 뒤에 상제님을 직접 모신 성도들을 불러모으시니
성도들이 찾아와 태모님의 신통력을 보고 모두 놀라며 이상히 여기더라.

 

이 때 태모님께서 신도(神道)로써
포정소(布政所) 문을 여시고 도장 개창을 선언하시매

 

상제님 어천 이후에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던
성도들이 다시 크게 발심(發心)하여 태모님을 모시거늘
태모님께서 대흥리 차경석의 집을 본소(本所)로 정하시고 각기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포교에 힘쓰게 하시니라.

 

태을주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짐
이로부터 우리나라에 비로소

상제님 무극대도의 포교 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어 신도들이 구름 일듯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그 후 3년 만에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와 경상남도와
서남해의 모든 섬에 태을주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게 되니라.
(증산도 道典 11:28)

 

 

 

무극대도의 도문과 성도

증산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무극대도(無極大道)의 도문(道門)을 열고 9년 동안 천지개조의 대공사를 행하셨나니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에 전주군 우림면 하운동(雨林面 夏雲洞)에
거주하는 김형렬(金亨烈)이 수종함을 시발로 하여 수십 명의 문도(門徒)들이 참여하니라.


이들이 각기 상제님께서 어천(御天)하시는
그 날까지 후천 천지대개벽 공사에 지대한 공덕을 쌓았나니
그 노고를 높이 받들고 그 뜻을 천추만대에 기리기 위해 천지공사에
수종한 종도(從徒)를 성도(聖徒)라 추존(推尊)하니라.
(증산도 道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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