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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신의 관액을 끌러 주심


11월 말에 서울로부터 백남신을 불러 올리라는
공문이 전주부(全州府)에 이르니 남신이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숨기고 있는데


김병욱이 남신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저의 화란(禍亂)을 선생님께서 끌러 주셨습니다.” 하니
남신이 병욱을 통하여 상제님께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10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곧 10만 냥의 증서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불사르시거늘 그 뒤로 남신의 관액이 풀리니라.

 

남신이 이 일을 겪고 난 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교자상(交子床)에다 음식을 성대히 차려 상제님을 모시니

 

상제님께서 “남신아, 음식은 많다만 이것보다 더 걸게 장만은 못 하겠느냐?” 하시는지라
남신이 아뢰기를 “일등 요리사들을 모두 불러 한껏 장만하였습니다.” 하거늘
그렇긴 하겠다만 후천 농민 음식보다 못하구나.”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드시려다
그만두기를 세 번 거듭하시더니 일어나 남신의 집을 나오시매
성도들은 영문을 몰라 아쉬워하며 뒤따르니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 있거늘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어느 허름한
주막집에 드시어 주인에게 밥을 해 오라고 명하시니

주인이 아뢰기를 “당장 해 드릴 양식이 없고
단지 안 찧은 겉보리만 있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놈 찧어서 어서 밥을 해 오라.” 하고 재촉하시니라.

이에 성도들까지 나서서 겉보리를 찧어 서둘러 밥을 지어 올리니
상제님께서 “그 밥맛 참 좋다.” 하시며 맛있게 드시니라.

 

이에 옆에 있던 한 성도가 “왜 진수성찬을 두고 겉보리밥을 드십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상 밑에 척신들이 가득 차서
내가 젓가락을 드니 척신들이 벌벌 떨며 ‘그걸 드시면 저희들은 어찌 됩니까?’ 하고

하소연하므로 내가 남신의 성의를 보아 젓가락만 세 번 들었다 놓았느니라.” 하시니라.

 

남신은 관액이 풀린 뒤
갑진년 7월에 육군 전주 진위대(鎭衛隊) 대장이 되고,
이어 10월에는 전북(全北)의 징세 독쇄관(督刷官)이 되어 큰돈을 모으니라.

(증산도 道典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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