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이 다 하고 싶어도 법(法)을 몰라서 못 하느니라.


이제 각 교 두목들이 저의 가족 살릴 방법도 없으면서 ‘살고 잘된다.’는
말을 하며 남을 속이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공자가 알고 하였으나 원망자가 있고,
석가가 알고 하였으나 원억(寃抑)의 고를 풀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저도 모르는 놈이
세간에 사람을 모으는 것은 ‘저 죽을 땅을 제가 파는 일’이니라.


수운가사에 ‘기둥 없이 지은 집이 어이하여 장구하리.
성군취당(成群聚黨) 극성(極盛) 중에 허송세월 다 보낸다.’ 하였느니라.
 
속언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참으로 성담(聖談)이니 잘 기억하라.

(증산도 道典 2:95)



공부의 정법(正法)

올바른 공부 방법을 모르고 시작하면
난법의 구렁에 빠지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9:200)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옛적부터 받들고 모셔왔던
천지의 부모이시며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의 도전 말씀을 통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천지부모와 조상과 부모님으로부터
이 한 몸을 받아내어 태어나서 누구를 막론하고 삶에 대한 해답을 얻고
영원한 행복과 부귀 복락을 누리고 사는것이 인간의 염원이며 우주와 인생의 결론입니다.


역사.종교. 철학. 과학.정치.경제.문학.예술등 전 분야에서
추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궁극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 핵심은

이 우주간에 태어나서 너와 내가 더불어서
행복하고 부귀와 복락을 누리면서 잘 살자는데 핵심과 해답이 있습니다.
그 어떤 행동의 행위와 가르침도 궁극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말 장난하는 가르침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결론은 그 가르침이 사기와 기만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인간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지식을 얻어 결론과 해답을 얻지 못하고 허무의 인생을 걸어 왔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의 종교인과 학자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자기자신도 제대로 모르는 논리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가르침을 펼쳤던 것입니다,


큰 공부를 못 이루는 선천의 학교 교육


하루는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여 천지의 역사(役事)를 시키려 함인데


현하의 학교 교육이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비열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므로 판밖에서 성도(成道)하게 되었노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88)


여러가지 복잡한 미사여구와 논리를 빙자하여 왜곡하여
인간의 사고를 멍청하게 만들고 욕망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짐승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덫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전쟁의 원한과 모순과 갈등의 대립과 투쟁의 상극질서속에서
부지런히 세 때 밥을 먹기 위해서 움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말씀을 하셨습니다.


人生世間何滋味오 曰衣曰食이요 衣食然後에 曰色也라
인생세간하자미   왈의왈식           의식연후    왈색야


사람이 세상사는 재미는 무엇인가.
입고 먹는 것이요 의식 연후에는 음양의 낙이니라.


故로 至於衣食色之道하여는 各受天地之氣也니
고   지어의식색지도       각수천지지기야


그러므로
의식색의 도에 이르러서는 각기 천지기운을 받나니


惑世誣民者와 欺人取物者도 亦受天地之氣也니라
혹세무민자    기인취물자      역수천지지기야


혹세무민하는 자와
남을 속여 재물을 갈취하는 자도
역시 천지기운을 받느니라
(증산도 道典 3:290)
 
인간이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도 결론은 이러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사는 재미는 무엇인가.
입고 먹는 것이요 의식 연후에는 음양의 낙이니라.
한 마디로 다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하기에 인생도 알고보면 간단한것입니다.
너와 내가 더불어 화합하며 상생하며 재미있게

복락과 부귀를 다 함께 같이 누리며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와 철학과 학문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을 잘 가르친것이 아니라
아예 자가 당착에 빠지게 만들어 바보 멍청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이문을 취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혼자 살기 위해서 모든 범죄를 꺼리낌없이 저지르며 

도리를 저버린 저질스러운 장사꾼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한 거친 표현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썩어빠진 현실에서 깨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양심적으로 바라 보시라는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는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세속 중생들의 생각하시며 한 수의 시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무엇으로 그 마음을 달래 주리오

이 달에 갑칠에게 장령(將令)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넘겨 오시니


류찬명(柳贊明)이 여쭈기를
이러한 묘한 법을 세상 사람이 다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길게 살기를 바라는구나.” 하시고 옛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稚兒哭問母何之하니 爲道靑山採菜遲라
치아곡문모하지       위도청산채채지


日落西山人不見한대 更將何說答啼兒오
일락서산인불견        갱장하설답제아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머니 간 곳을 물으니
저 청산에 약초 캐러 간 발걸음이 더디다고 이르더라.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데
장차 무슨 말로 저 우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리오.
(증산도 道典 10:20)


세상 사람들이 고통에서 울부짖어며
인생의 해답인 천지부모가 무엇인지 애타게 묻고있드라
이 현실 지구에서 세상의 모든이가 앓고있는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를 바라며 보채고 있는데


천지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고
인생은 우주여름철에서 우주가을철로 넘어가는데
우매한 중생들은 계절의 철을 깨우치지 못하고 도리를 몰라 다 죽어 빈 그림자만 드리우고
우매하게 난법의 구렇텅이에 빠진 중생을 모두 건저내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도가 얼마나 괴로울까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형렬(金亨烈)에게
너는 무엇이 장기더냐?” 하고 물으시니 형렬이 “아무것도 장기가 없나이다.”
하고 대답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그러면 너는 이 세상에 무용지물이로구나.
네가 무용지물이면 나는 무엇이 될거나.”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저 사람 못살면 내가 못사는 법을 모르니
세상이 모두 망하고 마는 것이며


제자가 못쓰면
선생이 못쓰게 되는 법을 모르다가 저놈도 죽고 이놈도 죽는 것이니
도시 제 마음 잘못 먹어 제가 죽는 줄 모르는구나


그러니 나의 도가 얼마나 괴로울까나.”
하시고 무엇을 속으로 읽으시며 한없이 슬퍼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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