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의 기본개념, 木




木이라는 것은

분발(奮發)하는 의기를 대표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生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용력(勇力)이나 용출(湧出)하는 모습과 같은 것은 모든 生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木氣의 성질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에나 동물의 경우에 있어서

힘이 강(强)하다는 말은 木氣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즉 목기를 생(生)이나 용출(湧出)이나 용력(勇力) 등의 주체로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 힘이 집중되어 있는 木의 활동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만일 그 힘이 집중(集中)하고 통일되어 있지 못하고

분산(分散)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에는 生도 용출도 용력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생(生)이라고 하는 그 힘[力]은 여하한 형태이며

또는 무엇 때문에 충족 ‘集中統一’ 되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사물이 모든 변화를 일으킬 때에 음양은

항상 억압과 반발이라는 모순과 대립을 나타내면서 모순-대립-조화의 길[道]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木氣가 발(發)할 때는

내부에 축적되었던 陽이 외부로 용출하려고 하지만

이때에 만일 외면을 포위한 음형(陰形)의 세력이 아직 너무 강하여서 이면(裏面)에 포위당하고 있는


소위 一陽의 분출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면

잠복한 바의 이양(裏陽)은 더욱 그 힘이 강화되게 마련인 것이다.

철학은 그 힘이 탈출할 때에 생기는 반응을 木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木氣라는 것은 형질간에 얼어나는 압력과 반발의 투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인 즉 그것이 모순-대립의 과정이다.

 

예를 들면 의자나 침대의 용심철(스프링)은 밟으면

밟을수록 점점 반발력이 강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상기한 바의 木氣의 운동현상인 것이다.


우리는 영어의 어휘에서 실로 흥미 있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스프링이라는 단어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의 한 예이다. 즉 spring이라는 단어는

‘봄’ ‘용심철’ ‘천수(泉水)가 용출하는 모습’ 등을 표현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생각하여 볼 것은 영국 사람들이 옛적에 이 단어를 만들 때에 벌써

우리가 지금 말하는 바의 목기의 원리를 지실(知悉)하고 spring이라는 어휘로써

이상과 같은 말본을 통일시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spring이라는 단어에는 木의 기능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木氣는 가장 많은 억압을 받는 것이므로 그 힘이 가장 강한 것이다.

사람에게 욕심이 생기는 것도 바로 목기발생의 원리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욕심이란 것은 자기의 것을 배출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것인즉

이것은 천도(天道)에서는 공욕(公愁)이고 인도(人道)에서는 사욕(私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木이 水를 발판으로 하는 것이므로 힘과 욕심이 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운(天運)이 여기에 이르면 순환하는 바의 五行의 위치는 벌써 양지(陽地)에 접어드는 것이니


그 힘과 욕심이 어찌 그냥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慾心에 대한 것은 後述).

水란 본래 응고(凝固)가 심하여서 용력(勇力)을 잠장(潛藏)하고 있을 뿐이고 뜻을 이루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때가 이르면 위 에서 말한 바와 같은

木氣로 변질되면서 그 힘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水氣는 木氣의 모체가 되는 것인 바

그 응고를 위주로 하던 水氣도 여기에 이르게 되면 응고력은 점점 약화되고

양기(陽氣)는 잠장(潛藏)에서부터 탈출하게 되므로 거기에서 陽의 활동은 시작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木氣의 활동이며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수에 있어서도

여기에서부터 火가 끝나는 때까지는 역수(逆數)를 하면서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것이다.


水氣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바의 木氣는 그가 점점 발전하는 동안에

이미 水氣로써 조성하였던 튼튼한 형질은 점차로 엷어지게 되어서 火氣가 시작되는,

즉 丙位에 까지 이르게 되면 자기의 모습은 火氣로 化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木이란 것은 水의 형질이 운동하는 시초의 모습인 것이다.

즉 五行 운동이란 것은 木火土金水의 순서로 발전하는 만물의 운동형태인데


그것을 피상적으로 보면

만물의 천변만화지만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물’ 의 5단계(木火土金水) 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木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최초 단계의 운동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木氣가 발하는 시기를 봄[春]이라고 하며

그 방위를 東方이라고 하는 것이니 봄은 만물의 싹[芽]이 통가다리(기본뼈대,중심)를

유지하는 때의 시기적인 총칭이요,


동방이란 것은 陽(木)이 발하는 기본방위를 칭하는 것이다.

그런즉 통가다리가 다시 분열(分裂)하기 시작하는 때가 이르게 되면

그것은 火氣에 속하는 때이므로 春氣(木氣)는 여기에서 소진(消盡)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象)을 인생일대에서 보면 木氣가 발동하는 시기는 소년기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의 지엽(技葉)을 내기 전,

즉 처녀 · 총각의 시절이 바로 인간의 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때는 힘도 많고 의욕도 가장 왕성할 뿐만 아니라

일방으로는 앞에 올 청년기(분열기)를 준비하는 시기인 것이니 이것이 바로 수기(水氣) 발전의 제1단계이다.

 

필자는 위에서 발전이란 말을 썼다.

發展이란 말과 前進이란 말은 서로 개념이 다르다.


전진이라는 것은 다만 앞으로 나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만 

발전은 전진의 모습에 굴신(屆伸)의 상(象)을 겸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애물을 극복시키면서 나아가는 상을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연계의 운동에는 단조로운 전진은 없고

발전만이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동정(動靜)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우선 철저한 정명(正名)을 하지 않으면

그 연구도 도로(徒勞)가 될 것이며, 따라서 율동(律動)하는 자연의 모습이나

현묘(玄妙)한 정신의 소재를 밝혀 낼 수가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상에서 木의 개념을 설명한 바 물론 이해되지 못하고 넘어간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그 미비점이 풀려나갈 것인즉 안심하여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