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태모 고수부님 일대기 연재 제9회] 거룩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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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종상/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제25장 해원의 노래
 
 “달은 가고 해는 오네. 지천(地天)의 운수로다. 운이 오고 때가 되어 만물이 해원이라.” (道典 11:220:5∼6)
 
 
 1928년 9월, 그러니까 숙구지 공사로 대사부를 출세시키는 공사를 행한 뒤
고수부님은 오랜만에 정읍군 우순면 초강리 연지평에 살고 있는 딸 태종의 집을 방문하였다.
고민환, 박종오, 전대윤 성도들을 대동했다.
딸과 사위 박노일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부용역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가 한쪽 팔이 불편하여 잘 쓰지 못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고수부님이 여자를 불렀다.

 
 “언제부터 팔이 불편해졌느냐?”
 
 “7년 전부터 우연히 이렇게 되었습니다.”
 
 고수부님은 그 여자를 앞에 앉히고 “불쌍하구나.
몸이나 성하여야 먹고살 거 아니냐”고 하면서 팔을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여자는 언제 그랬는가 싶게 팔이 나아 그 자리에서 밥상을 들고 나갔다.
 
 고수부님이 궁핍한 생활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삶을 돌보는 일화는 숱하다.
인류의 어머니로서 자애로움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해 9월 증산 상제님 성탄치성 때도 은진(恩津)에 사는 김기성의 아내 이씨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 아이가 산증(疝症)으로 심히 고통스러워하나이다.” 하니까
고수부님은 손으로 아이의 불알을 어루만져 주었고 곧 아이의 병이 나았다.
 
 증산 상제님 성탄치성을 마친 고수부님은 퍽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고수부님이 신도들 앞에 앉았다.

 
 태모님께서 가곡조(歌曲調)로 온화하게 창하시기를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순(堯舜), 우탕(禹湯), 문무(文武), 주공(周公) 같은
만고성현(萬古聖賢)도 때 아니면 될 수 있나.
전무후무 천지운도(天地運度) 우리 시절 당한 운수 성경신이 결실이니
삼도합일(三道合一) 태화세(太和世)를 그 누가 알쏘냐. 달은 가고 해는 오네.


지천(地天)의 운수로다. 운이 오고 때가 되어 만물이 해원이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공자의 안빈낙도(安貧樂道)란 인간이 못할 일이니,
나는 만물을 해원시키노라.” 하시니라.(22:220)

 

 
 가사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지금 ‘천지의 대운수를 만났다’는 것이다.
후천 선경세계가 그것이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열어 주는 후천 선경세계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세상이다.
죽어서 올라가는 천당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곧 후천 선경세계가 된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 ‘안빈낙도’란 무엇인가.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공자가 총애했던 제자 안회(顔回)는 학문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열심한 탓에
나이 스물아홉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가난하였다는 점이었다.
일생 동안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했고 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다.
 
안회는 그런 외부의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주어진 환경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성인의 도를 추구하는데 열심이었다.
안빈낙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고수부님은 그런 ‘안빈낙도의 삶’을 인간이 ‘못할 일’이라고 단호하게 부정했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질정해 놓은 후천 세상은 정신문명은 물론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되어
최상의 풍요를 누리는 현실 선경세계이므로 안빈낙도의 삶을 부정한 것이다.
일찍이 증산 상제님이 말씀한 후천 ‘선경세계의 생활 문화’는 이러하다.
 

 후천에는 만국이 화평하여 백성들이
모두 원통과 한(恨)과 상극과 사나움과 탐심과 음탕과 노여움과 번뇌가 그치므로
말소리와 웃는 얼굴에 화기(和氣)가 무르녹고 동정어묵(動靜語默)이 도덕에 합하며,
사시장춘(四時長春)에 자화자청(自和自晴)하고,
욕대관왕(浴帶冠旺)에 인생이 불로장생하고 빈부의 차별이 철폐되며,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이 바라는 대로 빼닫이 칸에 나타나며 운거(雲車)를 타고
공중을 날아 먼 데와 험한 데를 다니고 땅을 주름잡고 다니며 가고 싶은 곳을 경각에 왕래하리라.


하늘이 나직하여 오르내림을 뜻대로 하고,
지혜가 열려 과거 현재 미래와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일에 통달하며
수화풍(水火風) 삼재(三災)가 없어지고 상서가 무르녹아 청화명려(淸和明麗)한 낙원의 선세계(仙世界)가 되리라.

 

선천에는 사람이 신명을 받들어 섬겼으나 앞으로는 신명이 사람을 받드느니라.
후천은 언청계용신(言聽計用神)의 때니 모든 일은 자유 욕구에 응하여 신명이 수종 드느니라.(7:5)
 
 이틀 뒤 고수부님은 성도 10여 명을 대동하고 정읍 대흥리로 행차하였다.
도착한 곳은 보천교였다.
고수부님은 보천교 새 건물 주위를 돌아다니며 담뱃대로 건물을 겨누고 총 쏘듯이 탕탕 소리를 냈다.
이어 증산 상제님이 수부소로 정했던 보천교 본소에 가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흥강가, 흥강가”하고 노래했다.


 
 고수부님은 다시 보천교에서 ‘호천금궐(昊天金闕)’이라고 부르는 ‘십일전(十一殿)’으로 갔다.
아직은 공사 중이었으나 완공된 뒤의 십일전은 단일 규모로는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건축사상 가장 큰 건물이었다.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이 7보 5칸인데 비해 십일전은 9보 7칸의 2층 건물이었고
보통은 8척 기준으로 한 칸을 잡는데 십일전은 16척을 한 칸으로 잡았으므로 실제 규모는 근정전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역대 왕조시절에도 사용한 일이 없었던 황금색 기와를 올렸는데
중국의 천자궁을 본뜬 것으로 중국 기술자들을 불러와 지은 것이었다.


차경석 성도의 ‘천자(天子) 등극설’이 인구에 회자되는
가운데 보천교주 차경석의 야망이 과연 어디에 가 있는지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증산 상제님이 그토록 우려하고 또한 경계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었다.
 
 1907년 증산 상제님이 대흥리에 머무를 때 차경석을 데리고 네 차례씩이나 비룡산(飛龍山)에 오르며 공사를 행하였다.
그 무렵 증산 상제님은 차경석의 집 벽에
‘천고춘추아방궁(千古春秋阿房宮)이요 만방일월동작대(萬方日月銅雀臺)라’라는 글귀를 써 붙이며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되느니라.”하고 말했다.
어찌 예사로운 말씀이겠는가.
 


 아방궁이란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가 기원전 212년부터 건축한 호화로운 궁전.
전전(前殿)과 후궁(後宮)으로 나뉘는데,
전전의 크기만 동서 500보(675m), 남북 50장(113m)으로 위층에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에는 5장(丈)의 깃발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동작대는 중국 후한 건안 15년(서기 210년) 겨울에 조조가 업(킌)의 북서쪽에 지은 누대(樓臺)로서
구리로 만든 참새로 지붕 위를 장식한 데에서 생긴 말이다.
그러니까 증산 상제님은 차경석이 진시황제나 조조를 흉내 내어 아방궁이나
동작대와 같은 큰 건물을 지을 것을 경계한 것이다.


특히 ‘큰 건물을 짓게 되면 죽게 된다’는 증산 상제님의 단호한 말씀에 주목하자.
『도전』에 따르면 차경석은 이 공사를 증산 상제님이 자신에게 종통을 전했다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
불행한 운명을 자초했다고 할까.
 
 고수부님은 사다리를 타고 십일전 지붕 위로 올라가 풀쩍풀쩍 뛰어 다니면서
“도솔천궁(兜率天宮) 조화(造化)라,
나무(南無) 미륵존불(彌勒尊佛), 조화(造化)임아 천개탑(天蓋塔), 나무(南無) 미륵존불(彌勒尊佛)”하고 외쳤다.
그리고 고수부님은 “이 집은 지어도 절밖에 못 된다”고 말했다.


 
 공사 내용 중에 보천교 본소 건물을 향해 담뱃대로 총 쏘듯이 탕탕 소리를 낸 것은
보천교와 교주 차경석의 27년 난법 헛도수의 종국을 고하는 ‘사형선고’에 다름 아니었다.
고수부님이 춤추며 노래했던 ‘흥강가’는
『도전』에 기대면 ‘흥강(興姜)’으로서 ‘강증산 상제님을 믿어야 흥한다’는 뜻이다.

그 해 1월에 있었던 신로변경(信路變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차경석은 아내 이씨로부터,
“영안을 통하여 보니 상제님의 자리에 삼황오제신이 들어서고
 상제님께서 풀대님에 삿갓을 쓰고 보좌를 떠나시더라”는 말과 “삼황오제신은 곧
경석의 아버지 차치구”라는 말을 듣고 혹하여 차치구를 신앙 대상으로 받들고 교리도
 유교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신로변경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십일전 건물이 절밖에 못 된다’는 것은 보천교 ‘본소’의 운명을 얘기한 것이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합병과 거의 동시에 종교계의 반일사상을 제거하려는 목적에서 온갖 탄압정책을 구사했다.
1911년 ‘사찰령(寺刹令)’(제령 제7호)과 ‘경학원 규정’(제령 제74호)으로 유림과 불교계를 장악하고
105인 사건(百五人事件, 데라우치 총독암살미수사건) 등으로 유림과 불교, 기독교계를 탄압했다.


1915년 8월 16일 총독부령 제83호로 이른바 ‘포교규칙’이란 것을 공포했다.
총독부가 공인하는 종교는 신도(神道)와 불교, 기독교라고 규정하고,
이외의 종교(단체)는 모두 ‘유사종교(類似宗敎)’로 분리하여 불법화시키고 탄압한 것이다.
‘민족종교’를 사교(邪敎) 또는 유사종교라 격하시키면서
민족정기를 말살시키려는 술책으로 혹독한 탄압을 자행한 것이다.

 
 1936년 일제는 ‘유사종교해산령(類似宗敎解散令)’을 내려 민족종교를 모조리 해산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해산령으로 민족종교는 물론 민족주의 성향을 띠지 않았던 일반 종교(단체)들도 대부분 해체되었다.
한국 민족종교사상 최대의 암흑기가 닥친 것이다(윤이흠,「일제강점기의 민족종교운동」;
김삼웅, 「사교(邪敎) ·유사종교로 격하 민족정기 말살 획책」). 같은 해 교주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 역시 ‘유사종교해산령’으로 인해 해체되었다.


이와 함께 저 아방궁이나 동작대를 연상케 했던 보천교 본소의 모든 건물은 일제 당국에 의해 뜯겨지게 된다.
십일전 건물은 서울 태고사(太古寺, 현재의 조계사),
정화당(靖化堂)은 전주역사(全州驛舍), 그리고 보화문(普化門)은 내장사 대웅전으로 옮겨졌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짜 놓은 천지공사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러니까 고수부님은 지금 ‘보천교 난법 기운을 거두는’ 공사를 행하는 중이었다.
이 공사 이후로 보천교는 교단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제26장 천지의 어머니
 
 “너희들은 다 내 새끼들이니 내 젖을 먹어야 산다.” (道典 11:226:2)
 
 대흥리 보천교 본소를 다녀온 지 며칠 뒤 고수부님은 담뱃대를 좌우로 휘저으며 말한다.
“천하의 뭇 무리들이 서로 내가 낫노라고 다투어 고개를 쳐들고 먼저 나오려 하니
이것이 천하에 끼치는 병폐의 하나로다.
이제 그대로 두면 분란이 가중되고 혼란이 자심하리니
이 담뱃대를 휘둘러 그 쳐드는 꼭뒤를 치면 그 머리가 본처로 쏙 들어가리라.”


 
 천하의 난법자를 없애는 공사다.
그리고 신도들의 심법을 다지는 공사 말씀이 이어졌다.
 
 대업 공부를 하자면 수마(睡魔), 마신(魔神), 척신(隻神)을 먼저 물리쳐야 하느니라.
또 생문방(生門方)부터 알아 두라. 사문(死門)은 입구멍이요, 생문(生門)은 똥구멍이니라.
입은 사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못 하느니라.

병종구입(病從口入)이요 화종구출(禍從口出)이니라/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니라[병(病)은 입으로부터 들어가고 화(禍)는 입으로부터 나오느니라.
/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라]. 천지 아구를 아느냐.
천지 입망을 찾으려면 생사문(生死門)을 알고서 공부해야 하느니라.
목구멍 똥구멍이요, 먹고 똥싸는 것이니라.(11:223)
 


 우리 공부는 오장육부 통제 공부니, 곧 선각(仙覺) 지각(智覺)이니라.
이 공부가 도도통(都道統)이니라.
제 몸에 있는 것도 못 찾고 무슨 천하사란 말이냐! 소천지(小天地)가 대천지(大天地)니라.
느닷없이 생각나서 읽는 글이 도수(度數) 맡아 오는 글이니 명심하여 감격(感激)하라.(11:224)


 
 전자에서 ‘병종구입 화종구출’은 진(晉)의 부현(傅玄, 서기 217∼278)이 한 말이고, ‘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는 오대(五代)의 정치가 풍도(馮道, 서기 882∼954)의 「설시(舌詩)」에 나오는 구절이다.
고수부님이 심법(心法)교육 차원에서 이 글을 인용한 것이다.
후자는 지난 해 동짓달 11일에 행하였던 ‘오장육부 통제 공부’의 또 다른 공사 말씀이다.

 
 잠깐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 분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본다.

첫째, 가장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심오한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필요하다면 유가의 경전은 물론이요 고금의 한시까지 망라한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다.

셋째, 많은 조어(造語)가 거침없이 사용되고 있다. 증산 상제님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2:13)고 했으되, 여기에는 언어사용도 예외가 아닐 터이다.

넷째, 상황에 따라 비어(卑語)까지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증산 상제님은 “육두문자(肉頭文字)가 나의 비결이니라. 육두문자를 잘 살피라.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체하느니라.”(4:110)라고 말했다.
정리하면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는데 때로는
어려운 듯 심오한 말씀으로, 때로는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듯 자애로운 말씀으로,
또 때로는 호된 육두문자를 사용해 듣는 자들을, 들어야 하는 자들을 후려치면서 정신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하루는 고수부님이 공사를 보는데, 매우 파격적이었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고수부님이 젖을 배꼽까지 늘어뜨리고 성도들에게 젖을 훑어 뿌렸다.
“야, 이놈들아! 내 젖 먹어라. 너희들은 다 내 새끼들이니 내 젖을 먹어야 산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수부님은 갑자기 속옷을 벗고 두 다리를 벌리고 섰다.
그리고 마치 천하를 향해 포효하듯 말했다.
 
 “이놈들아, 네놈들이 전부 내 밑구녕에서 나왔다.
 내 보지 밑으로 나가거라. 어서 오너라, 어서 와.”
 
 성도들은 그리로 지나가지 않으면 죽는 줄 알고 서로 머리를 들이밀고 먼저 들어가려고 야단법석이었다.
 
 고수부님이 “야, 이놈들아! 한 놈씩 들어오너라”하고 호통을 쳤다.
이 때 호호백발의 노인들까지 갓 벗을 겨를도 없이 뿔뿔 기어서 통과하려고 하는데
고수부님이 갓을 뜯어 버리고 밀어 넣듯이 지나가게 하였다.
남자 신도들뿐만 아니었다. 여자 신도들도 모두 기어서 지나갔다.


 
 이 공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 앞서 먼저 고수부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 공사의 참뜻을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고수부님은 만유 생명의 어머니이다.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을,
아니 한낱 이름 없는 청춘과부였던 인간 고판례를 ‘수부’로 들어 올렸을 때부터,
옥황상제 강증산과 혼례식을 치른 이후부터 당신은 이미 인류의 어머니, 온 천지의 어머니가 되었다.
증산 상제님은 수차에 걸쳐 고수부님이 ‘천지의 어머니’임을 확인시켜 주고 공사로서 확정해 놓았다.
고수부님 역시 1926년에 몸소 ‘온 인류의 어머니로 부르도록 공사’를 보았다.
이 공사는 그와 같은 공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수부님이 온 인류의 어머니이니까, 천지의 어머니이니까 천하 창생들이 모두 당신에게서 나왔고,
공사에 참석한 신도들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해 말하는 것임에 유의하자 이 당신의 자식이 되고,
당신의 젖을 먹어야 사는 것은 당위일 터였다.
결론적으로 이 공사는 고수부님 당신이 억조창생의 생명의 어머니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도전』 그대로 ‘신도(神道)와 인도(人道)의 천지 어머니 공사’이다.
 

 
 한 해가 저물었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1929년 1월 3일, 정삼치성일이다.
고수부님이 초헌(初獻)을 하고 이어서 성도들이 절을 올렸다.
 
 성도들이 절을 하고 물러났을 때 고수부님이 큰 소리로 “천지정리무기토(天地定理戊己土)”라고 세 번을 외쳤다.
역학에 기대면 ‘무기토(戊己土)’는 곧 하늘 기의 움직임 가운데 중앙에 위치하여
천지만물의 생성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원이 되는 토(土)를 일컫는다.


만유 생명의 조화의 바탕자리가 중앙 토이듯 인사에 있어서도 모든 조직의 근본정신은
중앙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개돼야 조직 자체가 길이 창성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고수부님은 지금 천지사업을 이루는 조직기강 확립에 대한 공사를 집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치성을 모시던 제단 바로 위 천장에 큰 거미가 매달려 있는 것이 고수부님의 눈에 띄었다.
고수부님은 앞에 있는 옥구사람 강재숙(姜在淑, 1879∼1945) 성도를 향해
“거미의 이치를 알면 말하라”고 하였다.
강재숙이 “알지 못합니다”하고 대답했다.
고수부님은 “이 또한 특별히 연구해야 할 이치다”라고 말하며 성도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거미가 집을 지을 때 24방위로 줄을 늘이나니 집을 다 지은 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숨어 있느니라.”
 
 이 공사는 우선 고수부님 자신의 은둔 공사로 이해된다.
1926년 6월에도 고수부님은 거미의 이치를 들어 자신의 ‘오성산 은둔’ 공사를 보았었다.
내용인즉 크나큰 세 살림 도장을 다 마치고 나면 오성산에 가서 은둔하겠다는 공사 말씀이다.

 

 
 이 달에 고수부님은 과거 증산 상제님이 행하였던 종통대권 계승공사를 회상하며 공사를 보았다.
 
 “너희 아버지가 9년 천지공사 끝지는 해 어느 날 자리에 누워 식칼을 내놓으시며 ‘올라타라.’ 하셔서
올라탔더니 또 ‘멱살을 잡아라.’ 하셔서 멱살을 잡았었구나.
다시 내게 식칼을 들게 하시고 당신을 찌를 듯이 하여 ‘꼭 전수하겠느냐.’ 하라 하시는데
말이 나오지 않아 가만히 있으니 역정을 내시며 ‘시간이 지나간다.’ 하시기에 마지못해 목안 소리로
‘반드시 꼭 전하겠느냐?’ 하였더니 ‘예, 전하지요.’ 하시며 ‘
이왕이면 천지가 알아듣게 크게 다시 하라.’ 하시므로 조금 크게 ‘꼭 전하겠느냐?’ 하였더니
‘꼭 전하지요.’ 하시더라. 이렇게 또 한 번 하여 세 차례를 마치니….”


 
 증산 상제님이 당신에게 보았던 과거 공사를 회상하면서 고수부님은 현재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침식 절차와 제반 일체를 나더러 먼저 하라 하셔서
내가 먼저 하고 너희 아버지는 내 뒤를 따랐던바 오늘날 나를 이런 자리에 이런 일을 맡기고…,
내가 밥을 제대로 먹느냐, 잠을 제대로 자느냐. 너희들이 잘 알지 않느냐!
너희 아버지는 친구와 어울려 어디로 놀러 간 것밖에 안 되느니라.”


 
 말을 마친 고수부님은 별안간 대성통곡하였다.
공사장이 숙연해지는 가운데 고수부님이 “너희들 모두 듣거라.
내가 갔다 다시 올지 모르겠다”하고 얘기를 했다.
당시 공사에 참가했던 성도들이 고수부님의 말씀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들리는 ‘이별의 말씀’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성도들도 모두 통곡했다.
그때 고수부님은 방문을 열어 제치고 어진 속 증산 상제님을 향해 “가려면 갑시다.
어서 갑시다”하고 재촉하였다.

 
 성도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성도들은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 어진을 모시고 어디로 갈까 싶어 문을 막으며 만류하였다.
고수부님은 “그것이 아니다”하고 방에 들어가더니 언제 대성통곡을 했느냐는 듯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이 공사의 앞부분은 ‘도통맥 전수 예식’이고 뒷부분은 고수부님 자신의 선화(仙化)를 암시하는 공사다.
증산 상제님이 자신의 어천을 암시하는 공사를 보았듯이 고수부님 역시 같은 공사를 수차례 보았다.
공사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은
그날 이후 고수부님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며칠 동안 밤낮으로 문 앞을 지키며 전전긍긍했다.

 
 7월 칠석이다. 고수부님은 해마다 7월 칠석치성을 성대히 봉행하였는데 보통 3, 400명에 이르는 성도들이 참석하였다.
그해 칠석절에 고수부님은 치성을 봉행한 후 성도들에게 “오성산에 공사가 있어 가리니 행장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다음날 고수부님은 이근목, 강사성, 전준엽, 강원섭, 김내원, 고찬홍 등 성도 10여 명을 대동하고 도장을 떠났다.
옥구 오성산에 도착한 고수부님은 고민환의 집에 거처를 정했다.
그날 밤 고수부님은 마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동서남북과 중앙에 다섯 개의 등을 각기 밝혔다.

 
이어 오성산의 오성위(五聖位, 오성산 오성五聖에 대해서는 뒤에서 얘기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오성산에 모셔진 다섯 성인 정도로만 이해하자)와
산신위(山神位)를 설위하여 술상을 성대히 차리게 한 다음 성도들로 하여금 주문을 송주케 하였다.

 
 어둠이 덮고 있는 오성산 주위에 성도들의 주문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고수부님은 술을 부어 산신에게 권하며 “천지의 무궁한 무극대도를 창건하는 역사(役事)에 협력하여 주니
고맙구려”하고 치하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에 전송하는 예를 행하였다.
 다음날, 그러니까 7월 9일 고수부님 일행은 성덕마을을 출발하여 군산을 거쳐 조종리로 돌아왔다.


 
 
 제27장 도통천지 해원상생
 
 “선천에서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道典 11:250:8)
 
 1929년 8월, 한가위치성을 모신 후였다. 고
수부님은 갑자기 “내가 이제 정읍에 공사가 있어 가면
장구한 세월이 되겠으니 미리 가서 집 한 채를 사 놓으라”고 말했다.
 
 성도들은 정읍군 입암면 왕심리(旺尋里)에 다섯 칸짜리 주택을 구입해 놓았다.
정읍 입암면은 대흥리가, 보천교가 있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멀지 않은 왕심리에 고수부님이 머물 주택을 구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며칠 뒤 고수부님은 성도들에게 말했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성경신(誠敬信) 석 자를 일심으로 잘 지켜 수행하라.
찾을 때가 있으리라. 수심(修心), 수도(修道)하야 앞세상 종자가 되려거든 충신과 진실이 제일이니라.”
 
 고수부님이 조종리를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둘째 도장 살림인 조종리 시절은 고수부님 10년 천지공사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리를 떠나려고 한다는 것은 왕심리에 시급하고 중요한 공사가 있다는 것이요,


더 이상 조종리에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도장의 내분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도장 분위기는 그렇게 보이지만 정작 고수부님은 차분하기만 하였다.
천지의 어머니는 천지의 어머니다. 조종리 도장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고수부님은 창생을 구제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공사 말씀 중에 ‘앞세상 종자’란 개벽의 대혼란기에 구원을 받아 후천에 거듭 나도록 선택된 자를 일컫는다.
그들이 바로 후천 세상에서 인간 ‘씨종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조종리 도장에서 떠나게 만드는 ‘신도’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가는
그날까지 단 한 명이라도 ‘앞세상 종자’로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마음 , 그것이 고수부님이었다.
 


 8월 21일은 추분절로서 치성을 봉행했다. 그날도 고수부님은 천지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바둑판을 가져오게 하여 방 한가운데 놓고 바둑판 중앙 장점(丈點)에 돌을 놓았다.
‘장점’은 우리 고유의 순장바둑에서 배꼽점을 일컫는 말이다. 순장바둑은 첫 점을 장점에 둠으로써 시작한다.

 
 고수부님은 다시 마당에 자리를 깔고 제구와 청수동이를 놓고
그 앞에는 주과포와 매실, 삼씨[麻仁], 밤, 대추를 진설케 하였다.
이어 공사에 참여한 성도 10여 명으로 하여금 “나를 따라 읽으라”고 한 뒤 큰 소리로
“천동 지동 인동(天動地動人動) 만물합동(萬物合動) 소원성취”라고 노래하듯 말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춘분 추분 하지 동지”를 읽게 하였다.
그때 별안간 큰 지진과 천둥이 일어나 지축을 뒤흔들었다.
고수부님은 “도통천지 해원상생”을 외면서 성도들에게 다시 따라 읽으라고 하였다.
 
 이 공사에서 고수부님이 ‘장점에 돌을 놓았다’는 것은
곧 후천 개벽의 시작과 전개과정에 대한 공사로 이해된다.
그리고 고수부님이 외친 ‘천동 지동 인동’은 무엇인가.
 
 앞에서 우리는 1928년 4월 초파일치성 직후 공사에서
고수부님이 얘기한 ‘천갱생(天更生) 지갱생(地更生) 인갱생(人更生)’이야말로
‘천지공사’와 ‘개벽’의 개념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독해하였다.


증산 상제님은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내가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고 했다.(2:42)
앞부분이 ‘천지공사’를 정의한 것이라면, 천지공사가 곧 천지개벽이 된다.
다시 말하면 천개벽(天開闢)과 지개벽(地開闢), 인간개벽(人間開闢)이다.
고수부님은 1928년 공사에서 ‘미륵갱생(彌勒更生)’을 덧붙였다.
 


 ‘천동 지동 인동’은 더욱 짧은 조어(造語)로 천지공사를, 개벽을 정의했다고 할 수 있다.
고수부님은 여기서 ‘만물합동 소원성취’를 덧붙였다.
개벽이 완성된 이후의 세계 인류가 가장 소망하는 천지공사의, 천지개벽의 종착역인 후천 선경세계이다.
‘만물합동’한 세상, 인류의 소원이 성취된 세상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