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도통을 원하느냐
 
 “도통(道通)이 두통(頭痛)이다, 이놈들아! 어른거려서 못 사느니라.”
 “제 오장육부 통제 공부로 제 몸 하나 새롭게 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 (11:165:1, 11:182:7)
 
 이 무렵 고수부님이 심법공사에 치중하는 것도 도장 안의 분열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개인적인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은 수석성도 고민환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고민환의 ‘개인적인 욕망’은 좀 다르긴 하였다.
그것은 ‘개인적인 욕망’이라기보다 신앙인의 열망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이라면 십중팔구 열망 하나씩을 갖고 있을 터.
도통에 대한 열망이 그것이다.
고민환도 누구보다도 도통에 대한 열망이 컸다.
열망이 너무나도 간절했던 고민환은 고수부님에게 심고할 때마다
항상 “…어머니, 저에게 도통을 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고수부님도 고민환의 열망을 모르지 않았다.


 
 어느 날 고수부님은 이용기 성도에게 “야, 민환이가 도통 달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고민환을 보고 “야, 이놈아! 도통이 어디 있다냐.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것이 도통이다”하고 꾸짖었다.
 
 그러나 고민환은 쉽게 도통에 대한 열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루는 집에 돌아와 있는데 문득 도통해 볼 생각이 크게 일어났다.
아예 산에 들어가서 공부하려고 돈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막상 입산하려고 하니까
고수부님이 눈앞을 가렸다. 고민환은 고수부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너 지금 어디 가느냐?” 고민환의 속내를 모르지 않는 고수부님이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도통문을 닫아서 통(通)이 없으니 너는 내 곁을 떠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네 공부만 해라.
마음 닦는 공부보다 더 큰 공부가 없나니 때가 되면 같이 통케 되느니라.
너는 집만 잘 보면 되느니.”

 
 고민환을 도장에 주저 앉혔으나 고수부님의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하였다.
조종리 도장의 수석성도 고민환의 마음이 그러할진대 다른 성도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인간의 욕망이란 그랬다. 아무리 가르쳐도 듣지 않는 성도들을 보고 고수부님은 답답하고 야속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수부님은 더욱 더 강하게 성도들의 마음단속을 하였다.
 
 “도통(道通)이 두통(頭痛)이다, 이놈들아!
어른거려서 못 사느니라.” 고수부님은 호통을 쳤다.
“내 일은 판밖에서 성도(成道)해 가지고 들어오나니 너희들은 잘 닦으라.”
 
 고수부님이 아무리 깨우쳐 주어도 성도들은 도통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이후 성도들이 “도통.” 소리만 하면
고수부님은 “아나, 도통 여기 있다!” 하고 담뱃대로 사정없이 때리곤 했다.

 
 그해 9월 21일 고수부님은 고찬홍, 전준엽, 이근목 성도 등 10여 명과 함께 금산사로 행차하였다.
금산사 미륵전에 치성을 올린 후 고수부님은 선언하였다. “상제님의 성령이 이제 미륵전을 떠나셨느니라.”
 
 고수부님은 성도들에게 “요강을 가져 오너라”고 하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금산사 대중들이 혼비백산하여 말렸으나 고수부님은 당장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다.
금산사 대중들은 꼼짝을 못하고 뒤로 엉거주춤 물러섰다.
고수부님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강에 걸터앉아 소변을 보고 옆에 있는 이근목 성도에게 주었다.

 
 “저 미륵한테 가서 끼얹어라. 헛것이니라.”
 
 누가 감히 그와 같은 명령을 망설임 없이 따를 수 있겠는가.
이근목이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데 고수부님이 벼락을 쳤다.
이근목이 할 수 없이 요강을 들고 미륵불상 앞으로 다가갔다가 짐짓 넘어지는 체하며 미륵전 마룻바닥에 오줌을 엎질러 버렸다.
 
 “앞으로 너희는 절도 하지 말고 오지도 말라. 헛것이니라.” 고수부님이 말했다.
 
 미륵전을 나온 고수부님은 다시 대적광전으로 갔다.
불단 앞으로 다가선 고수부님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향해 꾸짖듯 말하면서
담뱃대로 석가모니불상의 머리를 탕탕 때렸다. “너는 어찌 여지껏 있느냐. 빨리 가거라.”

 
 좀 희화적이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간담이 서늘하기조차 하는 이 공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녕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일을 고수부님은 지금 천지공사로서 집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신도 차원이 아니라면 접근하기조차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 도문과 금산사 미륵전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증산 상제님은 인간으로 오기 전에 금산사 미륵불상에 30년 동안 임어해 있었고
그때 고수부님이 안내하고 모셨었다는 것은 이미 논의하였다.
어천 직전에 증산 상제님은 “내가 미륵이니라. (…)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고수부님이 이따금씩 금산사 미륵전을 찾아와 치성을 드린 이유도 물론 거기에 있었다.
불가의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상이 아니라 미륵불인 증산 상제님에게 치성을 올린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공사에서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의 성령이 이제 미륵전을 떠났다’고 선언한 점이다.
고수부님은 자신의 선언을 확인하듯 요강에 오줌을 누어 미륵불에게 끼얹었고 ‘헛것’이라고 했다.
내막은 그러하였다.
증산 상제님은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고 유언한 직후 “내가 8월 1일에 환궁하리라”고 말했다.
1909년 6월 24일 어천한 이후 금산사 미륵전에 머물다가 8월 1일 천상의 호천금궐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다.

 
 증산 상제님의 장례식을 치른 뒤 뿔뿔이 흩어졌던
김형렬, 차경석, 김광찬 성도들은 같을 해 7월 그믐날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는
증산 상제님의 유언을 되새기며
금산사 미륵전으로 와서 [옥황상제지위]라는 종이 위패를 미륵불상에 붙이고 치성을 드렸다.
김형렬은 바로 그날이 증산 상제님이 환궁하겠다고 한 8월 1일인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일화에 따르면 증산 상제님의 성령이 금산사 미륵전에 머물렀던 것은
1909년 음력 6월 24일부터 같은 해 음력 8월 1일까지였다.
 


 그해 동짓날, 고수부님은 동지치성을 봉행한 뒤 신도 120여 명을 소집하여 대공사를 행하였다.
24방위에 각기 다섯 사람씩 세우고 중앙에는 단을 높이 설치한 다음 고수부님이 단 위에 앉았다.
고수부님은 “이 공사는 후천 오만년 선불유(仙佛儒) 삼도합일의 운도(運度)를
다시 살펴 새롭게 하는 공사다”라고 결론부터 말했다.
 
 ‘후천 오만년 선불유 삼도합일의 운도’는 무엇인가.
이해를 위해서 증산도 우주론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때는 우주의 가을이 문턱에 와 있는 후천 가을개벽기 .

 
 증산 상제님은 말한다.
 
 지금은 온 천하가 가을 운수의 시작으로 들어서고 있느니라.
내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후천을 개벽하고 천하의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후천선경의 무량대운(無量大運)을 열려 하나니 너희들은
오직 정의(正義)와 일심(一心)에 힘써 만세의 큰 복을 구하라.
이때는 천지성공시대(天地成功時代)니라.

천지신명이 나의 명을 받들어 가을 운의 대의(大義)로써 불의를 숙청하고
의로운 사람을 은밀히 도와주나니 악한 자는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떨어져 멸망할 것이요,
참된 자는 온갖 과실이 가을에 결실함과 같으리라. 그
러므로 이제 만물의 생명이 다 새로워지고 만복(萬福)이 다시 시작되느니라.(2:43)


 
 삼척동자도 다 알다시피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요, 또한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길러져’ 이제는 저 들판에 무르익어 가는 황금의 곡식들도,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온갖 과일들도 농사꾼에 의해서
가을걷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결국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떨어져’ 부패할 것이다.
알곡이 되느냐, 낙엽이 되어 떨어지느냐 ,
여기에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까지도.


 
 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지난 ‘여름철’까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유불선과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삼도합일의 운도’를 맞이한 것이다.
 
 본래 유(儒)·불(佛)·선(仙)·기독교(西仙)는
모두 신교(神敎)에 연원을 두고 각기 지역과 문명에 따라 그 갈래가 나뉘었더니
이제 성숙과 통일의 가을시대를 맞아 상제님께서 간방 땅 조선에 강세하시매 이로써
일찍이 이들 성자들이 전한 천주 강세의 복음이 이루어지니라.(1:6)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2:40)
 


 증산도 우주론, 상제관에 기대면
증산 상제가 인간으로 온 것도 우주의 가을 개벽기에 ‘삼도합일의 운도’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온 증산 상제님은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내가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이라”(2:41)고 하여 개벽을 통한 새 역사의 시작을 온 우주에 선언하였다.
그는 또한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2:13)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고수부님이 ‘삼도합일의 운도를 다시 살펴 새롭게 하는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단 위에 우뚝 올라앉은 고수부님은 고민환에게 [현무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담뱃대를 좌우로 휘두르는데
갑자기 서기 어린 노을이 일어나 도장 건물을 환하게 둘러쌌다. 이어 고수부님이 창을 한다.


 
 “선지조화(仙之造化)요, 불지양생(佛之養生)이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선도는 조화를 주장하고 불도는 양생을 주장하고 유도는 범절을 주장한다).”
창이 끝나고 고수부님이 단에서 내려오자 상서로운 노을이 흩어졌다.
 
 이 공사는 증산 상제님이 집행한 바 있는 ‘가을 문명, 유불선 통일의 관왕(冠旺) 도수’(2:150),
종교문화 통일 공사(4:8)들과 유사한 공사라고 할 수 있다.
관왕 도수를 보면서 증산 상제님은 “…모든 술수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놓은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여기서 ‘술수’는 물론 유·불·선을 가리킨다.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상제님은 종교문화 통일 공사를 행하면서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였다.
“나의 도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 고 하셨다.
깊은 논의는 생략하겠으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후천 가을개벽을 앞둔 천지의 가을시간대를 맞아 유·불·선의 정수를 뽑아 통일시켰다는 것이다.


 
 증산 상제님의 이와 같은 공사를 고수부님은
 ‘후천 5만년 선불유 삼도합일의 운도를 다시 살펴 새롭게 하는 공사’로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공사를 마친 고수부님은 성도들을 단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 오장육부 통제 공부로 제 몸 하나 새롭게 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후천 천지 사업이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각자 제게 있으니 알았거든 잘 하라.” 하시니라.(11:182)
 
 어디 당시 공사 현장에 참석한 성도들뿐이겠는가.
그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고수부님이 단속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후천 5만 년 천지 사업을 하는 모든 일꾼들의 마음이요,
일하는 자세일 터였다.
 

 

 
 “천갱생(天更生) 지갱생(地更生) 인갱생(人更生) 미륵갱생(彌勒更生)
 
 “하늘 아래 사는 놈은 다 내 자손이니 사람 대접을 잘하라.” (11:189:7)
 
 해가 바뀌었다.
1928년, 그해는 새해 벽두부터 이른바 사상사건으로 나라안팎이 온통 시끌벅적하였다.
영등할머니가 시샘을 하는 듯 아직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해 2월 사회주의자 34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는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은 여전히 암울한 피압박민족의 한 해를 예고하는 듯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해는 증산계 교단, 그 중에서도 보천교에서 일대 파란이 일어난 해였다.


 
 그해 정월 초사흗날 치성(증산도에서는 ‘정삼치성正三致誠’이라고 부른다.
 이하 같은 명칭으로 표기한다)을 마칠 무렵 고수부님이 별안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조종리 도장 안팎이 발칵 뒤집혔다. 성도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다행하게도 고수부님은 쓰러진 지 서너 시간 뒤에 깨어났다.
고수부님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둥글게 휘둘렀다.
옆에 있던 고민환, 박종오 성도가 처음에는 고수부님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했다.
그때 문득 한 성도가 “상제님의 영정을 그리라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고수부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환을 비롯하여 도장에 머물고 있던 성도들이 증산 상제님의 ‘어진(御眞)’을 그리는 작업을 서둘렀다.
증산 상제님 어진을 그리려면 화가부터 찾아야 한다.
성도들은 김제군 백구면 가전리에 살고 있는 화가 김옥현(金玉鉉: 1878∼1960)을 불러
증산 상제님의 어진을 주문하였다.
어진이 완성됐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2월이다.

고수부님은 간부들을 소집하여 “상제님 영정을 다시 그려 봉안하라”고 명하였다.
간부들이 의논한 끝에 화가 정산(定山)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을 선정했다.
 
 정산은 조선조 전통양식의 마지막 인물화가로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걸쳐 활약했던 손꼽히는 대가.
전통 초상화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서양화법과 근대 사진술의 영향을 받아 소위 ‘채석지(蔡石芝, 석지는 채용신의 다른 호) 필법’으로
일컬어지는 독특한 화풍을 개척한 인물이다.


고종어진과 흥선대원군, 최익현, 전우, 황현, 최치원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20년이 넘게 관직에 종사하였던 정산은 1906년 전라도로 낙향하여
익산, 변산, 고부, 나주, 남원 등지로 전전하면서 초상화 제작에 몰두하였다.
1941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허영환, 『석지 채용신 연구』) 1928년
당시 조종리에서 멀지 않은 정읍군 용북면 육리에 살고 있었다.


 
 증산 상제님 어진을 주문 받은 정산은 흔쾌히 응낙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였다. 정산이 증산 상제님 어진을 거의 다 그려갈 무렵 고수부님이 찾아왔다.
고수부님은 그림을 보더니 담뱃대로 휙 걷어 젖히고
이어 담뱃대로 정산의 등을 내려치며 “이놈아! 증산을 그리라 했거늘…” 한 마디를 남기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정산은 차마 할 말을 잃어버린 표정이었다.
도장 간부들이 정산을 달래어 어진을 다시 그리게 하였다.


 
 증산 상제님 어진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고수부님이 다시 찾아왔다.
어진을 보던 고수부님은 또 “증산을 그리라 했지, 누가 미륵을 그리라 했더냐!” 호통을 치며
정산의 등을 담뱃대로 때렸다.
그리고 어진을 담뱃대로 휙 걷어서 젖혀버렸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 정산이 화구를 수습하여 돌아가려 하였다.


이때 고민환 성도가 나서서 정산을 진정시키고 다시 어진을 그리게 하였다.
정산이 세 번만에 증산 상제님 어진을 그렸다. 고민환이 고수부님에게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고수부님은 “그만하면 너희 아버지와 비슷하다.”하며 허락하였다.
증산 상제님 어진은 그해 3월 26일 고수부님 성탄절에 봉안되었다.
 

 고수부님의 조종리 도장 시절,
치성 때가 되면 동냥을 온 한 거지가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먼발치에서 고수부님을 향해 절을 올린 뒤 돌아가곤 하였다.
그해 치성 때도 그 거지는 어김없이 나타나났다.
마침 식사시간이라 거지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맨 뒤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고수부님이 거지를 불렀다. “아이고, 이놈. 내가 너를 좋은 곳으로 보내 주마.”
 고수부님은 부엌일을 하는 성도들을 향해 “이놈 밥 좀 줘라”고 말했다.
고수부님이 아직 수저를 들기 전이다.
성도들은 밥 퍼 줄 생각을 않고 자기 할일에 바빴다.
고수부님은 “너 요놈 먹어라”하고 자신의 밥상을 거지에게 밀어 주었다.


 
 거지가 돌아간 지 며칠 뒤였다.
고수부님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야, 너희 놈들, 형제간에 우애가 그래서야 쓰겠느냐”하고 꾸짖었다.
영문을 모르는 성도들은 ‘우애 있게 지내려고 신도들 간에 서로 형님 아우하며 지내왔는데
어째서 저러실까?’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만경 삼거리 솔밭에 가면 너희 형제란 놈이 거기에 있을 것이니 가서 보고 오너라.” 고수부님이 말했다.
 
 성도들이 만경 삼거리 솔밭에 가 보았는데 치성 때 왔던 거지가 얼어 죽어 있었다.
성도들이 거지를 땅에 묻어 주었다.
 
 도장으로 돌아온 성도들을 보고 고수부님은 “참 좋은 일 하고 왔다.
그런 사람을 잘되게 해 주어야 후천이 올 것이니라”하고 말했다.
 
 얼마 후 고수부님이 “내일 큰손님이 오니 대청소를 하라”고 말했다.
 성도들은 서둘러 도장 안팎을 청소했다. 이튿날 삼베옷을 입은 누추한 차림의 한 노파가 도장을 찾아왔다.
 
 “아이구. 저런 노파 때문에 어머니께서 대청소까지 시키셨는가.
야박도 하시구먼.” 성도들이 실망하는 투로 투덜거렸다.
성도들의 분위기를 모르지 않은 고수부님은 “없는 사람을 더 끔찍이 알라”고 당부하듯 말했다.


 
 앞의 거지 일화와 함께 이 ‘노파’ 일화는 인류의 어머니로서
고수부님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들이다. 이 무렵 고수부님은 같은 공사를 자주 행하였다.
 
 하루는 태모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잘나든 못나든 모두 천지자손이니라.”하시고
 “하늘 아래 사는 놈은 다 내 자손이니 사람대접을 잘하라.” 하시니라.(11:189)
 
 그해 4월 초파일이다. 고수부님이 도장을 개창한 이후 4월 초파일치성을 봉행해 왔다.
물론 그해 4월 초파일 치성도 예년과 다름없이 봉행됐다.
그리고 치성을 봉행한 후 고수부님은 “4월 초파일 행사는 석가불의 탄신일이니 불가에서나 할 일이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언했다.


 
 “세상 돌아가는 철을 찾아야 하나니 앞으로 치성은 절후를 찾아 봉행함이 옳으니라.
이것은 곧 본래의 뿌리를 찾는 일이니라. 앞으로는 미륵 운이니라. 선천 종교는 씨가 다 말라죽었느니라.”
 
 절후란 24절기를 가리킨다.
‘절후를 찾아 봉행하는 것이 본래의 뿌리를 찾는 일’이라는 것은
증산 상제님 대도의 종지이기도 한 원시반본(原始返本) 정신에 따른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일찍이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2:26)고 선언했다.
그 선언 이전에 증산 상제님 또한 ‘원시반본의 도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1:1)한 것이다.
증산 상제님이 그러하다면 고수부님도 예외가 아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가 우주의 가을철에 해당한다고 했다.
가을에는 농부에 의해 가을걷이 되는 알곡이 될 것인가, 낙엽 되어 떨어질 것인가
두 길 중의 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왜 그러한가.
가을은 곧 어떤 식으로든 통일(수렴)하는 계절인 까닭이다.
원시반본은 문자적으로는 ‘시원의 근본(뿌리)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가을의 통일(수렴)운동의 정신을 의미한다.


결실·추수하는 우주 가을의 때를 맞이하여
가을의 변화 정신에 따라 천지만물은 생명의 근원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도전』에 따르면 이 때 ‘반본(返本)’의 방향인 시원(始原), 뿌리[本]는 곧 조상, 민족의 주신 등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다. 원시반본은 보은(報恩, 넓게는 도통천지보은)을 통해 이루어지며
실천적인 면에서는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을 통해 달성된다.
원시반본이 보은, 해원, 상생과 함께 증산 상제님 대도의 종지가 되는 까닭이다.


 
 공사 후반부에서 고수부님은 기성종교 시대는 가고 미륵의 시대,
다시 말하면 증산 상제님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공사 역시 증산 상제님과 지금까지 진행된 고수부님 자신의 공사와 입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해 9월 21일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빨리 떠나라’고 꾸짖으며
담뱃대로 석가불상의 머리를 때리는 공사를 집행하였고
이날 공사에서는 ‘4월 초파일 행사는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다음 공사도 마찬가지다. 고수부님은 고민환, 박종오, 강원섭, 강사성, 유일태, 오수엽, 강춘택, 강대용 등
성도 수십 명을 늘여 앉히고 “오늘은 천상계의 신선세계에 사는 선관선녀(仙官仙女)의 제도와 풍경을 보여 주리니
모두 동북하늘을 보라”고 하였다. 성도들이 모두 동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때 고수부님이 담배연기를 입으로 훅 내뿜었다.
동시에 오색구름이 일어나 사람형상으로 변하며 선관선녀의 모습을 이루었다.
고운 옷을 입고 머리에 화관을 쓴 선관선녀들이 춤추며 기뻐하고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가 만발한 가운데 붉은 봉황과 백학이 춤추듯 창공을 날아다닌다.
고수부님은 “다가오는 후천 선경세계가 저러한 형국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루는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일은 다 신선(神仙)이 하는 일이니
우리 도는 선도(仙道)니라.” 하시고 “너희들은 앞으로 신선을 직접 볼 것이요,
잘 닦으면 너희가 모두 신선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신선이 되어야 너희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11:199)

 
 같은 날 고수부님은 다른 공사를 행하였다.
증산 상제님 어진을 모신 방문 앞에 단을 설치하여 향촉을 밝히고
치성 음식을 성대히 준비하여 진설하였다. 이어 강진용(姜鎭容)의 논 아홉 두락에
‘금산사 불양답(金山寺佛糧畓)’이라 쓴 푯말을 세웠다.
무대가 마련되었으므로 인물들이 등장할 차례다. 고수부님은 고민환 성도에게 가사와
법복을 입힌 뒤에 “단 앞에서 24일간 천수경과 칠성경을 송주하라”고 명하였다.


 
 “이 공사는 선천의 주불(主佛)인 석가모니의 운이 이미 갔으니
이제 후천 용화세계의 주불이신 미륵불을 봉영하는 공사니라.”
 
 고수부님은 “천갱생(天更生) 지갱생(地更生) 인갱생(人更生) 미륵갱생(彌勒更生)”이라고
삼창한 뒤에 방으로 들어갔다.
 
 증산 상제님은 일찍이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고 하였으되,
고수부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미륵불’ 증산 상제님과 함께
하늘도 새롭게 바뀌고 땅도 새롭게 바뀌고 사람도 새롭게 바뀐다는,
후천 대개벽을 앞두고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게 되는 ‘후천선경의 주불 미륵불 봉영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천갱생 지갱생 인갱생. 지금까지 우리는 천지공사에 대해 많은 논의를 전개해 왔고
선행연구에서도 천지공사에 대한 많은 연구가 없지 않았으나
고수부님의 이 한 마디만큼 ‘천지공사’의 개념규정을 정확하게 드러낸 말씀이 또 있을까.


천지공사가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공정한 ‘우주 재판’을 통해 뒤틀린 자연 질서와 그릇된 인간질서에 대한
재조정 작업을 시도하여 우주 생명의 판과 틀을 새롭게 짜서 바꾸는 일이라고 할 때,
구체적인 목적은 (고수부님의 가르침 그대로) 천개벽(天開闢)과 지개벽(地開闢), 인간개벽(人間開闢)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연개벽과 문명개벽, 인간개벽이다.
여기서 고수부님은 미륵갱생을 덧붙였다.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한다.

 
 
 제24장 대사부 출세공사
 
 “들어가기는 어느 구멍으로나 다 들어가 서로 잡아먹다가
나올 적에는 한 구멍밖에는 나오는 데가 없으니 꼭 그리 알라.”
 
 그해 5월 고수부님은 간부 신도들을 불러 모은 뒤에 10개 항목의 ‘계율’을 내려 주는 공사를 행하였다.
 
  (1) 투도(偸盜)하지 말라.
  (2) 간음(姦淫)하지 말라.
  (3) 척(隻)짓지 말라.
  (4) 시기(猜忌)하지 말라.
  (5) 망언(妄言)하지 말라.
  (6) 기어(綺語)하지 말라.
  (7) 자만심(自慢心)을 갖지 말라.
  (8) 도박(賭博)하지 말라.
  (9) 무고히 살생(殺生)하지 말라.
  (10) 과음(過飮)하지 말라.
 
 계율이 무엇인가. 신앙인으로서 수행생활의 규칙,
도덕적인 덕을 실현하기 위한 규범을 일컫는다.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실라(sila: 戒)’와 ‘비나야(vinaya: 律)’로 원래는 불교용어이다.
그러나 불교의 계율에 해당하는 종교적 규범은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또한 교단의 규칙이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따라서 고수부님이 내려준 계율에는 당신의 도덕적 실천 윤리관을 확인할 수 있는
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 주목된다.
 


 고수부님은 왜 이 시점에서 계율을 내려주었을까. 성도들에게 심법공부를 계속 시키고
증산 상제님 시대를 거듭 선언하고 이제 계율까지 내려주는 공사를 행하는 고수부님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우선 조종리 도장 안의 내분을 지적할 수 있다.
문제는 조종리 강씨 신도들이었다.
원래 고수부님을 조종리로 모시고 왔던 그들은 대부분 감투욕과 권력욕에 빠져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 분란을 일으켰다.
고수부님이 몇 차례 주의를 주었으나 도대체 뉘우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고수부님이 간부 조직을 개편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고민환을 내무로, 고찬홍을 외무로, 그리고 사정방에는 전준엽을 동방주로,
이근목을 남방주로, 강원섭을 서방주로, 강운서를 북방주로 임명했다.
조종리 강씨 신도 중 원로격인
강응칠과 강사성은 빠지고 강원섭과 강운서 성도가 사정방에 등용되었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고수부님이 갑자기 조직개편을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고수부님이 그토록 우려하고 경계했던 조종리 도장의 내분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강응칠, 강사성 성도 등은 도장을 나가 아예 드러내놓고 고수부님을 비방하였다.
내분 양상은 살해 음모로까지 발전했다. 일차적인 타깃은 수석성도 고민환이었다.
고수부님도 그와 같은 움직임을 알았다. 조종리 강씨 신도들의 고민환 살해음모는 매우 심각했던 것 같다.
고수부님이 도장 밖으로 공사를 보러 갈 때는 고민환을 병풍 뒤에 숨겨둘 정도였다.
그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 있지 말고 몸을 피하라.” 고수부님은 고민환에게 말했다.
고민환이 밤을 틈타 고향 옥구로 돌아갔다.
 
 도장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고수부님의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럴수록 더욱 큰 공사를 행하였다. 그것도 앞으로 전개될 도운 공사,
특히 자신의 후계자를 내는 공사가 이 무렵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두목을 내는 정읍 칠보산 상봉에서의 태자봉 공사(11:210), 백만 억 불(佛) 출세 축원 대공사(11:211)들이 그것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가고 가을 초입에 들어섰다.
이 무렵 고수부님은 종종 “자던 개가 일어나면 산 호랑이를 쫓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내가 숙구지(宿狗地, 오늘날의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화호마을) 공사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숙구지 공사’가 무엇인가.
1908년 어느 날 증산 상제님은 개의 창자를 빼낸 후 그 가죽을 둘러쓰고 느닷없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크게 놀라 줄행랑을 쳤다.
며칠 뒤 증산 상제님은 문공신 성도에게 “잠자던 개가 일어나면 산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이 있나니
태인 숙구지 공사로 일을 돌리리라”(6:75)고 말했다.


1909년 봄에도 증산 상제님은 문공신 성도를 주인으로
‘후천 대개벽 구원의 의통 집행 공사: 숙구지 도수’(6:111)를 집행하였다.
숙구지는 문자 그대로 ‘개가 잠자고 있는 형상’의 땅이다.
이 공사에서 증산 상제님은 숙구지혈, 다시 말하면 잠자고 있는 개의 기운을 끌어와
후천 대개벽 구원의 숙구지 도수를 붙였다.
 


 그렇다면 숙구지 공사에서 ‘잠자는 개’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 도운의 참 일꾼 추수자(대두목),
증산 상제님의 광구창생의 대업을 실현하는 참주인 되는 대사부가 바로 그 사람이다.
결국 숙구지 도수는 후천 대개벽을 앞두고 증산 상제님의 대행자에게 붙인,
(증산 상제님의) 천지대업을 실현하는 최종 결론 도수가 된다.

 
 9월이다. 고수부님은 “이제 때가 멀지 않으니 자는 개를 깨워야겠다”고 말하며
성도 수십 명을 거느리고 길을 나섰다.
 
 고수부님이 공사 진행에 앞서 터트린 일성은 의미심장하다. ‘이제 때가 멀지 않았다’는 말씀에서 ‘때’는 무엇인가.
두 말할 나위 없이 후천 가을개벽의 때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자는 개를 깨워야겠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증산 상제님의 숙구지 공사와 병행하여 읽어야 한다.
증산 상제님이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숙구지에서) ‘잠자는 개’ 도수를 정해 놓았고,
고수부님은 지금 그 ‘잠자는 개’를 깨우는 공사를 집행하고 있다.
‘숙구지 도수’가 후천 대개벽 구원의 도수라고 할 때
후천 가을개벽이 그만큼 임박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수부님이 도착한 곳은 물론 태인 숙구지. 공사내용은 그러하였다.
먼저 마포로 일꾼들 옷 30벌을 지어 동네 머슴들에게 입힌 뒤 통 하나에 고깃국을 담고
밥을 잘 말아 뜰 앞에 놓으며 동네 머슴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고수부님은 그들에게 “많이 먹으라”하고 따뜻하게 말했다.
 
 공사를 마친 뒤에 고수부님은 “이제 잠든 개를 깨웠으니 염려는 없다”고 하였다.
후천 가을개벽의 순조로운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공사를 진행한 뒤 고수부님은 비로소 안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사로서 후천 가을개벽을 앞두고 증산 상제님의 대행자 대사부가 출세하게 될 것이다.


 
 며칠 뒤 고수부님은 갑가지 웃옷을 벗어 속곳 차림으로 젖가슴을 늘어뜨린 채 “윷판 가져오너라”고 하였다.
고수부님이 평소 윷놀이를 좋아하였으므로 윷판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옷을 벗어 젖가슴까지 늘어뜨리는 모습을 보면 무슨 큰 공사를 보는 것이 분명하다.
한 성도가 윷판을 대령하였다. 고수부님은 앞에 놓인 윷판의 출구를 항문 쪽으로 돌려놓았다.


 
 “들어가기는 어느 구멍으로나 다 들어가 서로 잡아먹다가
나올 적에는 한 구멍밖에는 나오는 데가 없으니 꼭 그리 알라. 윷놀이는 천지놀음이니라.”
 
 고수부님은 또 “나는 바닥에 일(一) 붙은 줄 알고 빼려 드니 누구든지 일 자,
삼 자를 잡아야만 임자네”하고, 다시 “같은 끗수면 말수가 먹느니라”하고 결론을 지었다.

 
 이 공사는 증산 상제님의 1908년 문공신 성도를 주인으로 하여 보았던
‘신천지의 참주인 진주(眞主)노름의 독조사 도수’(5:226), 1909년에 보았던
‘도운을 추수하는 매듭 일꾼’(5:357) 도수와 연장선상에 있는 도운공사다.
 
 1908년 공사에서 증산 상제님은 문공신 성도에게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진주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어 남의 돈은 따 보지 못하고 제 돈만 잃어 바닥이 난 뒤에
개평을 뜯어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가 있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고 했고,
1909년 공사에서 “현하대세가 가구(假九)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고 말했다.


 
 이 공사에서 ‘진주’는 증산 상제님의 참일꾼 추수자로서
(증산 상제님의) 광구창생의 대업을 실현하는 ‘참 주인’을 일컫는다.
‘독조사’란 오직 제 것으로
사람을 살리고 증산 상제님의 도판을 개척해서 인재를 기르는 지도자의 길을 가리킨다.
자자손손 자신의 청춘, 재산, 정성을 모두 바쳐
무에서 유를 개척하여 창업을 실현하는 것이 진주의 사명이요 독조사의 사명이다.


 
 고수부님 공사 말씀을 주목하자. 윷판에서 ‘들어가기는 어느 구멍으로나
다 들어가 서로 잡아먹다가 나올 적에는 한 구멍밖에는 나오는 데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1928년 현재 증산 도판에서 보천교를 비롯한 각종 난법 단체가 활개를 치고 있으나
결국 서로 잡아먹다가 끝날 때는 한 구멍,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대행인 정통 지도자 휘하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공사의 재료가 된 윷판을 주목하자.
굳이 공사뿐만 아니라 고수부님은 자주 윷판을 공사재료로 활용하였다.
윷판의 바깥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가운데 점은 북극성을, 옆의 스물여덟 점은 28수(宿)를 본뜬 것이다.


말이 윷판을 돌아서 빠져나가는 길고 짧고 중간이 되는 4행로는 동지, 하지, 춘분, 추분의 4계절을 비유한다.
이는 천체도를 축소시킨 것이다(김문표, 〈사도설〉).
고수부님이 윷놀이는 천지놀음이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고수부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이와 같은 우주적 거대담론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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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8.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