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태모 고수부님 일대기 연재 제8회] 거룩한 생애
 

 

노종상/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제19장 인존(人尊)
 
 “인생이 없으면 천지가 전혀 열매 맺지 못하느니라.” (11:118:10)
 
 
 천지공사는 계속된다. ‘인류구원과 행복을 기도’하는 공사를 행한 이틀 뒤인
(1926년) 5월 27일, 고수부님은 성도들에게 “금산사에 일이 있어 가려 하니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고찬홍, 고민환, 박종오, 강사성 등 열다섯 명의 성도들과 함께 금산사로 갔다.

 
 금산사 초입의 금산동문(金山洞門)을 지날 때였다.
길옆 돌부처 앞에 다가선 고수부님은 “귀신도 안 붙은 것을 여기다 무엇 하러 세워 놓았냐”고 하며
담뱃대로 머리를 딱 때렸다. 돌부처의 머리가 뚝 떨어져 나갔다.
이 돌부처는 현재 금산사 입구 금산교(金山橋)를 건너기 전 왼쪽 숲 속에 있다.
고수부님 공사 후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을 지금은 시멘트로 붙여 놓았다.


 
 돌무지개문을 지나 금산사 도량에 도착한 고수부님은 곧장 미륵전으로 갔다.
증산 도문에서 금산사 미륵전이 무엇인가. 증산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기 전에 30년 동안 임어해 있었고,
그때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을 모시고 있었던 (증산과 고수부님 도문에서) 성지 중의 성지가 아닌가.
고수부님에게는 지상에서 영혼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미륵전에서 치성을 올린 뒤 고수부님은 “이는 미륵이 갱생함이라”고 말했다. 미륵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겠다.
여기서 우리는 증산 도문에서 미륵이 곧 증산 상제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기억하자.


 
 ‘미륵전 공사’를 마치고 나온 고수부님은 맞은편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갔다.
상단 위에 ‘제물’을 진설한 뒤 고수부님은 공사를 보았다.
한창 공사를 행하던 고수부님은 불단 중앙에 봉안되어 있는 비로자나불을 가리켰다.
 
 “이 부처는 혼이 나갔으니 밥을 주지 못하리라.”
 
 그리고 담뱃대로 불단에 금을 그어 동서로 가른 후에
동쪽 부처 앞에 있던 제물을 서쪽 부처 앞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성도들이 다시 제물을 진설하였다.
고수부님은 담뱃대를 들어 천장을 가리키며 “법전(法殿)이 퇴락하였으니 중수하여야 하리라”하고 말했다.
 
 천지공사란 그렇게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다.
과연 고수부님이 아니라면 누가 있어 법당 안에서 담뱃대를 휘두를 것이며,
누가 있어 그와 같은 소리를 외칠 것인가. 공사내용도 궁금하다.
‘대적광전’이란 불가에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비로자나불은 석가의 진신(眞身)을 높여 부르는 칭호. 불지(佛智)의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는 화엄종의 본존불이다.
『대일경(大日經)』에 의하면 무량겁해(無量劫海)에 공덕을 쌓아 정각(正覺)을 성취하고
연화장(蓮華藏)세계에 살면서 대광명을 발하여 법계를 두루 비추는 부처이다.

 

고수부님은 왜 비로자나불에게 혼이 나갔으니 밥을 주지 못한다고 했을까.
어떤 원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이를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 있다.
현실적으로는 대적광전을 중수하여야 한다는 공사내용과 관련이 있다.
고수부님이 공사를 행한 며칠 뒤에 금산사 대적광전 대들보가 부러져 지붕이 무너졌고
비로자나불이 부서진 것이다. 법당도, 부처도 부서졌으므로 밥을 주지 못하는 것이야 당위일 터였다.


 
 그해 6월 어느 날에도 고수부님은 성도들을 데리고 공사를 보고 있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일 때 고수부님은 “억조창생이 ‘인생의 근본원리’를 모르고 있도다”고
말하며 고민환 성도를 불렀다.
 
 “내가 설법(說法)하는 공사 내용을 적어라. …그 이치를 상세히 기술하여 온 인류에게 알리도록 하라.”
 
 고수부님은 말한다. 천지를 향해서.
 
 인생을 위해 천지가 원시 개벽하고
 인생을 위해 일월이 순환 광명하고
 인생을 위해 음양이 생성되고
 인생을 위해 사시(四時) 질서가 조정(調定)되고
 인생을 위해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창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 성현이 탄생하느니라.
 인생이 없으면 천지가 전혀 열매 맺지 못하나니, 천지에서 사람과 만물을 고르게 내느니라.(11:118)


 
 인존(人尊)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이 공사에는 온 인류의 어머니로서
고수부님의 마음이 절절이 스며들어 있다.
증산 상제님은 일찍이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2:22)하고 ‘우주사의 인존시대’를 선언했다.
그러니까 ‘인존’이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천지 공덕의 열매를 맺고 우주의 주인자리에 서는 것을 일컫는다.
 
 증산 상제님은 또 말한다.
 
 形於天地(형어천지)하여 生人(생인)하나니
 萬物之中(만물지중)에 唯人(유인)이 最貴也(최고야)니라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天地生人(천지생인)하여 用人(용인)하나니
 不參於天地用人之時(불참어천지용인지시)면 何可曰人生乎(하가왈인생호)아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2:23)
 
 
 두 공사를 비교하면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천지공사가 어떻게 상호보완작용을 하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고수부님은 증산 상제님과 자신의 공사에 대해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낳는 일이요,
나의 천지공사는 키우는 일이니라”(11:99)고 말했다. 『시경』에 “아버지께서 날 낳으시고(父兮生我),
어머니께서 날 기르셨도다(母兮育我)”라는 시구가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父親生子女, 母親撫養子女).
그러니까 ‘부생모육(父生母育)’이란 전통적인 가족 담론이었다.

 

천지의 부모인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천지공사에도 부생모육의 원리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천지공사는 바로 온 인류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주는 사랑의 정표이기에!
 
 공사가 끝날 무렵 고수부님은 고민환에게 “…기록한 공사의 설법 내용을 낭독하라”고 하였다.
고민환의 낭독이 끝난 뒤 고수부님은 그 글을 받아 불사르고 동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기도했다.
 
 이날 고수부님의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옥구군 성산면장 강필문(姜弼文, 1893∼?)이 그 사람이다.
고민환 성도와 절친한 그는 이날 친구를 찾아왔다가 고수부님 공사를 참관하게 된 것이었다.
공사가 끝난 뒤 강필문은 “이 분은 진실로 여자 성인이로다!”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후로 마음속으로 항상 고수부님을 존경하는 한 사람이 됐다.
 

 

 6월 17일이다. 고수부님이 고민환에게 “너의 집 근처에 오성산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민환은 “…있나이다”하고 대답했다.
 
 “그러하냐. 거미가 집을 지을 때는 이십사방(二十四方)으로 줄을 늘여서 짓고,
다 지은 뒤에는 남이 알지 못하게 한편 구석에 숨어 있는 법이니라. 너는 그곳을 떠나지 말라.”
 
 증산 상제님은 일찍이 “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默) 하나라도 천지공사가 아님이 없고
잠시도 한가한 겨를이 없이 바쁜 줄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느니라.”(3:18)고 하였다.
이 말씀은 천지공사 시행을 선언한 1926년 3월 5일 이후 고수부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공사에서 ‘거미’는 고수부님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고수부님 자신이 장차 오성산에 은둔할 것을 암시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전』은 물론 고민환의 『선정원경(仙政圓經)』에 따르면
고수부님의 오성산 은둔 공사에 대해서는 증산 상제님도 이미 집행한 바 있다.
 
 이튿날 고수부님은 성도들을 데리고 오성산으로 향했다.
그때 성도들이 하늘을 보았는데 흰 구름 한 줄기가 조종리 도장 상공으로부터 오성산을 향하여 길처럼 뻗쳐 있고
그 위에 구름 무더기가 사인교 모양을 이루어 고수부님의 행차를 따랐다.
돌아올 때에도 가마모양을 이룬 구름이 공중에 떠서 따랐다.
 
 
 제20장 천지일심
 
 태모님께서 보시고 “검부적 많구나!” 하시며
추리고 남은 짚을 움켜잡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진짜니라.” 하시니라. (11:130:7)
 
 
 그해 6월 그믐날. 그날도 고수부님은 천지공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수부님은 박종오, 고찬홍, 이근목, 전준엽, 강응칠, 강사성, 강원섭,
이석봉 성도들을 벌여 앉힌 뒤에 고민환 성도를 앞에 앉으라고 하였다.
 
 이날 공사에 참여한 면면을 보면 왠지 심상치 않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인물들은 조종리 강씨 신도들이다.
물론 ‘조종리 강씨들’이 모두 고수부님 도장에서 신앙한 것은 아니었다.
조종리 강씨들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응칠과 그의 아들,
강사성, 강원섭, 그밖에 몇 명 강씨들이 신앙했는데 십중팔구 4촌 아니면 6촌간이었다.


이밖에 조종리 본소의 재정을 총괄하고 있는 전준엽이 전대윤과 사돈이요,
김수남과 매제·처남사이, 그리고 몇 달 전 강응칠이 딸을 전준엽의 집으로 시집보내 사돈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공사에 참여한 신도들이라고 해도 대부분 조종리 강씨들과
그들의 일가친척들이었다. 강종용(姜宗容, 강사성의 장남)의 아내 전복추(田福秋) 노인에 따르면
당시 신앙인들은 도(道)를 해야 살고, 안 하면 죽는다는 신앙관을 가지고 있어서
신도들끼리 서로 사돈을 맺는 일이 많았다.
 


 공사는 계속 된다. 단위에 올라가 앉은 고수부님은 뜻밖에도 남자 의관을 갖추어 입었다.
잠시 후 고수부님은 고찬홍 성도를 향해 “나는 강증산이요, 고민환은 나니라. 절을 하라”고 명을 내렸다.
‘나(고수부님)는 강증산, 고민환은 나(고수부님)’라는 말씀 중에 후자는 주목되는 대목이다.
 
 고찬홍 성도는 전자에 주목했던 것 같다.
고찬홍은 “저는 상제님께서 육신으로 출세하시기를 원할 뿐이요,
성령으로 출세하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하고 절을 하지 않았다.
 
 고수부님은 거듭 동의하기를 명하였으나 고찬홍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크게 노한 고수부님은 담뱃대로 고찬홍을 마구 때렸다.
 
 고수부님이 공사 중에 담뱃대로 참석자를 내려치고 추상같이 꾸짖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전복추 노인은 “어느 날 저녁에는
태모님께서 신도들에게 벌을 주시는데 모두 꿇어앉히시고 추상같이 호령하셨다.
그리고 기다란 담뱃대로 내려치셨는데 그럴 때마다 문도들은 어구구 하고
매 맞는 소리를 지르며 사죄했다”고 회고했다(『도전』).


 
 고수부님이 아무리 때려도 고찬홍은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고수부님은 지팡이를 들고 다시 때렸다. 온몸에 멍이 들고 피가 낭자하여 몸을 수습할 수가 없게 되었으나
고찬홍은 바위같이 틀어 앉아 끝까지 굴복하지 않을 본새였다.
고찬홍이 거의 실신하여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고수부님은 지팡이를 놓고
성도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얼굴에는 노여움이 사라졌다.

 
 “보았느냐. 너희들의 믿음이 이러하여야 상제님께서 출세하시리라.”
고수부님이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이 공사에 대한 『도전』의 해석은 이렇다.
고찬홍 성도와 같이 잘못된 환상을 품고 신앙하는 사람들이 있다.
증산 상제님은 새 천지의 기본 틀을 다 짜고 하늘 보좌로 돌아가
오직 상제님의 심법을 그대로 집행하는 일꾼들이 나와 대업을 이루기만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까 고수부님은 고찬홍 성도의 생각은 잘못되었으나
그의 고집 하나만은 전범이 될만한 신앙의 지조로서 인정해 준 것이다.

육신이 산산조각으로 찢겨지는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태산처럼 틀고 앉아 꿈쩍도 하지 않을 옹고집이 있어야 생애를 바칠 수 있는 개척자의 신앙을 할 수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고수부님의 천지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해 7월 25일 고수부님은 자동차를 타고 도장을 떠났다.
고찬홍, 박종오, 강원섭, 강사성, 전준엽, 이근목, 서인권, 고권필, 김재윤 성도들이 뒤를 따랐다.
정읍 대흥리에 당도하여 신대원의 집에 거처를 정했다.
그리고 날마다 성도들로 하여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했다.


 
 28일 저녁이다. 고수부님은 강원섭과 더불어 누런 수건을 한 끝씩 잡고
하늘을 향하여 “영세불망(永世不忘) ”을 외운 뒤에 길을 떠났다.
성도들이 “영세불망, 영세불망…”을 외우면서 뒤를 따랐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증산 상제님의 묘각이었다.
고수부님은 큰 소리로 증산 상제님을 세 번 부른 뒤, “…왜 이다지도 깊이 주무시나이까”하고 통곡했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안에서 강사성에게
‘상제님 명정(銘旌)’을 읽게 한 뒤에 (증산 상제님 보호신장인) ‘만수(萬修)’를 크게 불렀다.
 
 이 공사는 왠지 예사롭지 않다. 증산 상제님의 묘각까지 찾아가
공사를 행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터이지만,
추측성 해석은 우리의 영역을 벗어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고수부님 ‘읽기’는 이어지는
공사와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후, 고수부님은 치성을 봉행했다. 치성이 끝난 뒤
고수부님은 “육임(六任) 도수를 보리라”고 말하며 도체(道體)조직 공사를 행하였다.
공사에 참석한 신도들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당시 참석자 가운데 1백10여 명의 명단이 『도전』에 기록되어 있다.

 
 공사 준비는 고수부님이 직접 지휘하였다.
먼저 동서남북 네 방위에 인원을 정하여 동서남북 사방에 청색, 백색, 적색, 흑색의 큰 깃발을 세웠다.
깃대 앞에는 책임자를 정해 세웠고 중앙에는 황룡기를 세운 뒤에
그 앞에 층으로 단을 높게 설치하였다. 단에는 윷판을 그려 놓고 그 위에 고수부님이 정좌했다.
 
 

“사방 60리 지령 기운(地靈氣運)이라. 지령 기운이 다 돌면 사람 추린다.
선자(善者)는 사지(師之)하고 악자(惡子)는 개지(改之)하라(선한 것을 본받고 악한 것을 잘 고치라).”
고수부님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내용인가. 지령 기운 다 돌면 사람을 추리게 되므로
내 마음에 선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본받아 스승으로 삼고 마음에 악한 것이 있다면
즉각 고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어 성도 50명을 뽑아서 사정방(四正方)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육임(六任), 팔봉(八奉), 십이임(十二任), 이십사임(二十四任)을 선정하여
동쪽 기에 육임, 서쪽 기에 팔봉, 남쪽 기에 십이임, 북쪽 기에 이십사임을 일렬로 세웠다.
나머지 인원도 배정하였다. 육임 아래에 6명씩 배정하여 모두 36명, 팔봉 아래에 여덟 명씩 배정하여 64명,
십이임 아래에 열두 명씩 배정하여 144명, 이십사임 아래에 스물네 명씩 배정하여 576명이다.
마지막으로 고민환과 강원섭 성도가 고수부님을 모시고 중앙에 섰다.

 
 고수부님은 말한다. “…이 다음에 수백만의 인원이면,
그 본줄기 되는 인원만 일정한 규칙을 정하여 나아갈진대 세계 민족을 포섭하리라.”
 
 이 공사를 집행한 이후부터 사정방의 육임, 팔봉, 십이임, 이십사임과
그 하단 조직으로 포교 운동을 일으켰다. 도세는 크게 일어났다.
 
 9월이다. 음력 9월이면 가을 기운이 깃들면서 만산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조종리 도장의 9월에는 증산 상제님 성탄치성이라는 큰 행사가 있다.
고수부님은 물론 신도들도 맡은 바 각 분야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장연마을 신도 강봉삼, 김재윤, 이용기, 김봉우, 김형대, 박준달, 강성중, 박일중, 양문경, 전영숙 등
열 사람은 자금을 모아 황소 한 마리를 사서 도장에 헌성했다.


 
 9월 18일, 조종리 도장에서는 장연 마을 성도들이 올린 황소 한 마리와 여러 가지 제수를 갖추어
증산 상제님 성탄치성을 성대히 준비했다. 원래 조종리 도장에 큰 치성이 있으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신도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장관을 이루었다.
건넛마을 원조에서 보면 흰 도포에 큰 갓을 쓰고 길을 따라 일렬로 걸어오는 신도들의 모습이
마치 빨랫줄에 흰 빨래를 나란히 걸어 놓은 듯하였다.


도장 안팎은 치성 며칠 전부터 북새통을 이루었다.
치성에 참석한 신도가 많을 때는 임시 화장실을 수십 개씩 지어야 했다.
신도들은 도장 뒷산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치성을 기다리는데 조종리 일대를 하얗게 덮을 정도였다.
 
 사람뿐만 아니었다. 치성에 바칠 소들의 행렬도 장관이었다.
주로 경상도에서 오는 신도들이 황소를 몰고 왔는데 쇠짚신을 신긴 소가 먼 길을 걸어서 오느라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조종리 도장을 향하여 걸어오곤 하였다.


소가 들어오면 도장 뒷산의 소나무에 매어 두었다가 잡아서 제수로 쓰는데
어느 때는 이것도 모자라 조종리 근방에서 개, 닭, 돼지도 수십 마리씩 사들여야 했다.
 
 치성을 준비할 때는 대문 입구에 금줄부터 친다. 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자리를 깔아
그 위에 제단을 쌓고 병풍을 세워 신위를 모신다.
대문 양쪽에는 등 두 개를 달고 장정 두 사람이 대문을 지키며 출입을 금하니 아무나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고
오직 고민환 성도만이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고수부님의 명을 받들어 치성 준비를 감독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치성이 시작되면 시종 엄숙한 가운데 진행된다.
치성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천주주’와 ‘태을주’를 비롯하여 여러 주문을 읽는데
고수부님은 신도가 내려 주송은 하지 않고 묵송을 하였다.
각지의 신도들이 치성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에서 지역별로
수십 명씩 모여 한꺼번에 고수부님한테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때마다 고수부님은 신도들의 노고를 치하하시며 손을 들어 답례하는데
그 자체만으로 신도들에게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조종리 도장에서 치성을 모실 때 광경이 그러할진대, 고수부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수부님이 치성을 모실 때는 베를 떠다 옷을 새로 해 입고 주요 간부들도 새 옷을 해 입도록 했다.
또 치성 음식은 사람을 따로 정하여 준비케 하는데 “침 들어간다.” 하며
입을 천으로 가리고 말도 함부로 못하게 했는데,
보는 사람마다 “그 정성이 기가 막히다”하고 혀를 내둘렀다.


 
 이튿날 19일에 성탄 치성을 봉행한 후에 고수부님은 “12방위의 열두 동물을 모두 구하여 오라.” 하고 명하였다.
성도들이 구해 온 동물을 각 방위에 세우는데 동물을 구하지 못한
인진사오신(寅辰巳午申) 방위에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 대신하도록 했다.
 
 고수부님이 별안간 “서양 신명들은 어떻게 먹는다냐?” 하고 성도들에게 물었다.
 “밥은 먹지 않고 닭과 계란을 잘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하냐. 그러면 너희들이 알아서 준비하라.”
고수부님의 말씀을 들은 성도들은 동쪽으로 10리 되는 부용 시장으로,
남쪽으로 20리 되는 김제 시장으로, 북쪽으로 30리 되는 익산 시장으로 나가 닭과 계란을 사서 올렸다.

 
 동서남북과 중앙에 오색기를 세워 놓고 공사를 행하는데 고수부님이 공사를 진행한다.
고수부님의 의중을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불지 않은 것이 당신의 뜻은 아닌 듯 했다.
고수부님은 12방위를 맡은 열두 동물에게 “너희들도 알지 않느냐?” 하고
갑자기 담뱃대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도전』은 기록한다.
 
 …그 동물들이 다 각기 소리를 내는 가운데 바람이 일어나
사방에서 중앙으로 불어오매 중앙 기가 나부끼며 태모님의 전신을 둘러 감더라.(11:129)
 
 고수부님은 기다렸다는 듯 성도들에게 ‘시천주주’를 읽게 한 뒤
동방 청색과 중앙 황색의 기폭(旗幅)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춤을 추면서 고수부님은 말한다.
 
 “너희들 잘 들어라. 모두 일심(一心)들이냐?”
 
 “예!”
 
 “그러면 짚 한 다발 들여라.”
 
 고수부님의 말씀을 듣고 한 성도가 짚을 갖다 놓았다.
고수부님이 짚을 추려 내라고 했다. 그 성도가 짚을 추려 내는데 고수부님이 계속 “더 추려 내어라.”고 말했다.
영문을 알 턱이 없는 성도가 “어머니, 어쩌려고 자꾸 이렇게 추려 내십니까?”하고 물었다.
고수부님은 “더 추려 내어라.” 하며 호통을 쳤다.
몇 번을 반복하여 짚을 추려 냈으므로 손에는 한 움큼 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고수부님이 가만히 보고 “검부적 많구나!” 하며
추리고 남은 짚을 움켜잡고 “이것이 진짜니라.” 말했다.
『도전』에 따르면 증산 상제님의 천지대업을 이루는 가장 큰 관건은 일꾼들의 천지일심에 있다는 말씀이다.
 
 
 제21장 상제님이 오셨네
 
 “고해에 빠진 창생 질병에서 구제하러 오셨네. 온갖 죄업 용서하러 오셨네.” (11:146:4)
 
 고수부님이 도문을 개창한 뒤
천지공사로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던 1926년이 가고 1927년 새해가 밝았다.
고수부님의 나이 48세가 되는 해였다. 정월 초열흘이다. 조종리 도장에 이상한 급보가 날아들었다.
이른바 ‘보천교 혁신파’ 이달호, 임경호, 채기두, 채규일, 임치삼들이 장정 10여 명을 거느리고
자동차 두 대로 대흥리 본소 정문 앞에 내려 정문을 깨뜨리고 돌입을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보천교 신도 수백 명한테 구타를 당하여 중상을 입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다.


 
 고수부님은 이미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민환, 고찬홍, 전준엽, 강사성, 문영희, 김수응, 이근목 등 성도들이 뒤를 따랐다.
정읍에 도착한 고수부님은 병원으로 가서 ‘보천교 혁신파’ 간부들을 문병하고 치료비를 주는 등 위로했다.
고수부님이 증산계 교단의 일에 직접 찾아간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고수부님 자신이 씨앗을 뿌린 교단과 신도들의 일이라 관심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해 2월 3일 경칩절 치성을 올리는 날이다. 그날 치성에 참석한 성도들은 4, 50여 명 정도였다.
증산계 난법 교단이 (증산 상제님이 도수를 붙여 놓았던) ‘초장봉기지세’의 말기 현상을 보이는 마당에
고수부님으로서는 생각나는 이 가신 님 증산 상제님이요,
만백성의 어머니로서 안타까운 것은 후천개벽을 앞두고 죽어가는 천하창생들의 운명이다.
후자를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참 일꾼들이었다.


 
 이날 치성 때 고수부님은 신도들에게 “일심으로 신봉하라. 너희들 신세를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증산 상제님과 내가 합덕하여 여는 일이니 너희들은 팔 짚고 헤엄치기니라”고 격려했다.
 
 하루는 (고수부님께서- 인용자주) 말씀하시기를
“천지공사와 후천 도수는 너희들의 아버지께서 말(斗) 짜듯 물샐틈없이 짜 놓았으니
부귀영달(富貴榮達)과 복록수명(福祿壽命)이 다 믿음에 있는 고로 일심만 가지면 안 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 일은 후천 오만년 도수니라.” 하시니라.(11:139)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에게 “그대와 나의 합덕으로 삼계를 개조하느니라”(6:42)라고 행하였던 공사의 재확인이다.
고수부님의 이 공사 내용을 당시의 조종리 도장 신도들에게 한정하여 이해한다면 오독이 될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진법 도장에서 신앙하는 모든 참 일꾼들에게 들려주는 천지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의 목소리다.
 
 태모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척(隻)이 없어야 한다. 척을 풀어야 하느니라.” 하시더니
성도들을 거두어 쓰실 때 반드시 먼저 그 액(厄)을 제거하시고 몸에 붙어 있는 척신(隻神)을 물리쳐 주시며
혹 몸에 병이 있으면 그 병을 낫게 하시고 또 앞길의 모든 장애를 없애어 새롭게 하신 뒤에
비로소 따르게 하시니 성도들이 태모님의 은혜에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더라.(11:140)


 
 1927년 이후부터 고수부님은 질병 치유에 대한 공사를 많이 행하였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러하듯 고수부님의 치유공사에는 조선이고 일본이고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해 3월 장연 마을에 사는 일본인 쿠라오까(倉岡)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체증이라 하여 약을 썼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이용기 성도를 통해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고수부님은 “그 병은 체증이 아니라 주달(酒疸)이라.” 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쿠라오까는 다음날에 완치되었다.

 

 
 이 무렵 고수부님은 직접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오셨네, 오셨네, 상제(上帝)님이 오셨네.
 주조(主祖)님이 오셨네, 열석 자로 오셨네.
 고해에 빠진 창생 질병에서 구제하러 오셨네.
 천길 만길 가로막힌 장벽 허물러 오셨네.
 세상의 온갖 죄업 용서하러 오셨네.
 지극한 평화와 기나긴 영락으로 인도하러 오셨네.(11:146)
 
 공사에서 ‘열석 자로 오셨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천주를 모시는 주문
‘시천주주’의 열석 자(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신앙대상인 천주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노래로 부르는 이 공사는 증산 상제님을 기리는,
증산 상제님이 인간으로 온 이유를 재확인해 주는 공사라고 할 수 있다.
고수부님을 직접 모시는 성도들은 물론 온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임은 물론이다.


 
 고수부님은 치성 때가 돌아오면 많은 신도들이 보는 가운데 인마(人馬)를 타고 다니곤 하였다.
여러 성도들이 번갈아가며 인마를 지었으나 주로 강원섭 성도가 맡았다.
강원섭의 호는 백호(白虎). 고수부님이 인마를 타려고 할 때는 큰 소리로 “백호야! 백호야!”하고
원조마을을 향해 불렀다.
중조 마을에서 1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원조마을에서 강원섭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달려오면 고수부님이 “인마를 지어라”고 명하였다.


 
 강원섭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등을 타고 오른 고수부님은 손으로 강원섭의 허리께를 말채찍 휘두르듯 철썩철썩 때리며
큰 소리로 “백호야! 달려라. 이랴! 어서 가자”하고 도장 마당을 돌았다.
어떤 때는 강응칠 성도의 아들 대용에게 인마를 짓게 하고 강원섭을 마부로 정하여 인마를 끌게 하기도 하였다.
종종 인마를 타고 중조 왼편에 위치한 당산마을 앞 당산나무 주위를 강강술래 하듯 빙빙 돌았는데
그때마다 성도들은 공사를 마칠 때까지 계속하여 주문을 읽었다.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 665번지 일대 당산마을 앞에 있는
당산나무 느티나무는 지금도 암수 두 그루가 마주하고 서 있다.
‘김제시 지방 보호수 지정번호 9-16-3-1’이기도 한 당산나무는 수령이 310년, 높이가 14미터,
둘레 62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목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인마 공사의 의미다.

 
 ‘온 인류의 어머니’되는 고수부님이 역시 마흔 살이 넘은 남자신도
강원섭을 인마로 하여 이와 같은 공사를 행하였다는 것은 왠지 예사롭지 않다. 그
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고수부님의 천지공사 문법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우선 키워드(key word)를 찾아내 그 의미를 알아내는 일이다.

이 공사의 키워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인마’일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나는 옥황상제니라. (…) 나는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느니라”(6:7)고 하였고,
또 “…난리 치나 안치나 말(馬)이 들어야 성사하느니라.
말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5:108)고 하였다.


증산 상제님이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천지대업을 이룰 수 있는,
천지대업의 성패 여부가 달려 있는 ‘열쇠’가 ‘말[馬]에 있다‘고 할 때,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증산 상제님이 이와 같은 공사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 공사가 고수부님의 인마 공사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당시 조종리 도장의 재정규모로 보아서
말 한 필을 구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을 터인데 왜 굳이 인마인가?
우리의 해명은 이렇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대도 천지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말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사에서 ‘인마’로 표현되는
‘바로 그 사람’은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을 인마 태우고 천지대업을 이루게 될 것이다.

 
 ‘도운’공사는 계속된다. 고수부님은 항상 “내 새끼들 중에서는 안 되고
판밖에서 성도하여 들어올 것이다”고 하였다는 것은 이미 논의하였다.
그때마다 성도들은 표현은 하지 않았으나 못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을 터였다.
그날도 고수부님은 같은 얘기를 반복하였다.


증산 상제님을 추종했던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으나
당시 성도들이 고수부님 도장에 와서 신앙하는 개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에
큰 환란기인 후천 가을개벽이 오고,
그 개벽에서 살아남아 후천 선경세계에 거듭나는 희망 때문이었다.
물론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가르침에 더욱 충실한다면
개벽기에 죽어가게 될 인명을 단 하나라도 더 많이 살리는 것이 신앙인들의 사명이 돼야 할 것이었다.
그것이 곧 천지대업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고수부님의 그런 얘기가 그들이 당신을 신앙하고자 하는 이유를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래서 수석성도 고민환이 용기를 내어 “늘 그와 같이 말씀하시는데
오늘은 왜 판밖에서 성도하여 들어오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고수부님은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사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성도들의 눈길이 고수부님을 향해 빗발같이 몰아쳤다.
고수부님은 “흥!”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성도들은 몰랐다.
도운이란 지난한 고생과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개척해야 하는 것이지 단지 ‘감나무’ 밑에 누워
입만 쩍 벌린 채 누워 있다고 해서 잘 익은 홍시가 떨어져 입으로 쏙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고수부님의 말없는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성도들은 ‘개인적인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며칠 뒤 성도들이 고수부님에게 간절히 청하였다.
“어머니, 하루 속히 개벽이 되어 좋은 세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너희들 검은머리가 흰 파뿌리 되도록 기다려도 어림없다.
이놈들아.” 고수부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리 앞에서 고수부님은 냉정하다.
고수부님은 “…기다리지 마라”고 한 마디로 잘라서 말했다.


 
 “천지에는 정해진 도수가 있나니 때 오기를 걱정하지 말고 너희 마음 심(心) 자나 고쳐 놓아라.”
 고수부님은 또 “너희들이 앞으로 한 지경을 넘어야 하리니 나는 그것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고수부님의 가르침이 당초 성도들이 신앙할 때의 ‘개인적인 욕망’과는 달랐으므로
도장 안에서 균열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조직의 생리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무렵 임피ㆍ옥구 신도들 중에 몇몇 사람이 주동이 되어 친목계를 조직했다.
그들은 각처로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포섭하여 계원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몇몇 성도들이 고수부님을 찾아와 이 사실을 고했다.

 
 “언제는 너희들이 돈을 모아 묶어 놓고 했느냐?” 고수부님은 성도들을 타일렀다.
“연전의 일을 잊었느냐?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일이다. 너희들은 잘 된 일로 아느냐?
…가서 일을 꾸미는 놈들에게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니 계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라.”
 
 성도들이 주동자들을 만나 고수부님의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들은 듣지 않고 오히려 고민환을 시켜 고수부님을 설득하려고 했다.
고민환이 고수부님을 찾아왔다.
 
 고수부님은 대뜸 “계의 내용을 아느냐?”고 묻고는
“너 죽을 줄 모르고 그러느냐. 당장 그만 두라”고 꾸짖었다.
 
 고민환이 돌아가 주동자들을 만나 “나는 다시 말을 않겠네”라고 말했다.
주동자들이 “민환과 상의하는 우리들이 그르다”하고 아예 결별을 선언했다.


 
 일은 점점 커져갔다.
주동자들은 평소 고수부님과 고민환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조종리 강씨 신도들과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민환이 본소에 오면 생사를 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잔뜩 벼르고 있었다.
본소 성도들이 조종리 강씨 신도들과 주동자들을 만나 간곡히 만류했다.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고수부님한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로부터 조종리 도장에는 ‘임옥조종파(臨沃祖宗派)’가 생겨나 임옥 신도들끼리도 갈라지게 되었다.

 
 조직의 분열상을 보고 있는 고수부님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임옥신도들이 분열한 것이 그랬다. 고수부님이 임옥신도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고수부님 도장에서 임옥 신도들만큼 성경신(誠敬信)을 다 바치는 신도들은 드물었다.
조종리 시절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그랬다. 임옥신도들은 고수부님의 신도 세계를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치성 때면 대소사를 전담하고 공사에 잘 수종하며 뒷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고수부님이 항상 “임옥 신도가 내 자손이니, 보리밥일 지경이라도 임옥 자손을 데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리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바로 그 임옥신도들이 분열을 했으니 고수부님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