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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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
 
겨울이다.
그해 가을 넘칠 듯 휘황한 빛으로 출렁거렸던 정읍 내장산의 단풍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한 빈 가지들이 무거운 정적 사이로 하늘거리던 동짓달—. 고수부님이 갑자기 안질을 앓았다.
웬일인지 쉬이 낫지 않았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을 때 차윤경이 구릿골 약방으로 달려가서 증산 상제님한테 전했다.
 
동짓달 스무이레 날이다. 그날 밤에 증산 상제님은 성도들을 데리고 정읍 대흥리로 갔다.
당시 고수부님의 내면풍경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이다.
사람이 살면서 병든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증산 상제님이 왔으므로 반가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으나 당장의 고통 때문에
고수부님의 마음은 뭐라고 형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대흥리 수부소에 도착한 증산 상제님은 수저를 돌려가며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
성도들에게 주문을 읽게 하고 고수부님을 팔에 안아 재웠다.
다음날 날이 밝으려고 할 때 고수부님이 눈을 뜨는 순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안질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나 증산 상제님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수일 동안 수부소에 머물면서 고수부님의 안질을 걱정했다.
그리고 수십 명의 성도들로 하여금 각자 기(旗)를 들게 한 뒤 고수부님에게 그들의 이름을 낱낱이 물었다.


또 깃발에 글자를 써 놓고 낱낱이 물어

알게하며 밤에는 등불을 향하여 불 모양을 물어 분명히 알게 하였다.
고수부님의 시력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상제님 당신이 입은 색저고리를

고수부님께 입히고“밖으로 나가서 집을 돌아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고수부님이 시키는 대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뒷문으로 들어오는데 증산 상제님은 미리 엎어

두었던 양푼을 들라고 하였다. 고수부님이 들어 보니 양푼 밑에 머리카락 한 올이 보였다.


고수부님이 그 머리카락을 들고 그대로 말했다.
증산 상제님은 비로소“이제는 염려 없다”고 안도의 빛을 보였다.
이와 같은 일화는 고수부님에 대한 증산 상제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자료다.
 
증산 상제님은 계속 수부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증산 상제님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천지공사 아닌 것이 없으므로 머물러 있는

그 자체가 공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증산 상제님은 대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은 성도 수십 명을 불렀다.


성도들이 왔을 때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과 나란히 서서 집밖으로 나왔다.
성도들이 뒤를 따랐다. 대열은 길게 이어졌다.
대흥리 마을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 일행은 집으로 돌아왔다.
 
수부소 앞에 도착하여 흰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른 뒤 증산 상제님은“이는 포정공사(布政公事)니라.
정읍에 포정소(布政所)를 정하노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포정소란 증산 상제님 어천 후에 도운을 처음 열어 도정(道政)을 집행하는 곳이다.
고수부님을 중심으로 증산 상제님 도문이 개창될 도수를 붙이는 공사였다.
 
한겨울 엄동설한풍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 무렵 증산 상제님의 행동에는 뭔가 모르게 초조한 빛이 나타나곤 하였다.
그와 같은 증산 상제님의 모습을 보았다면 고수부님으로서는 무척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날 하루도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과 단란하게 보내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인적이 드문 수부소 주위에서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증산 상제님은 갑자기 흰 종이에 ‘옥황상제(玉皇上帝)’라고 써서 붉은 주머니에 넣은 뒤

고수부님에게 건네주었다.
 
“잘 간직해 두라. 내가 옥황상제니라.”증산 상제님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엄숙하면서도 처연했다.
 
증산 상제님을 만난 지 1년이 지난 이때까지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의 신원을 알았다는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기록상으로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한테 자신의 신원에 대해 말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모를 일이지만 이때쯤이면 고수부님은 이미 증산 상제님의 신원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붉은 주머니를 향해 시선을 붓고 있는

고수부님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증산 상제님은,
 
“내가 없으면 크나큰 세 살림을 그대가 홀로 맡아서 어찌 처리하겠느냐!”하고 안타까운 듯 말했다.
 
고수부님은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다만 증산 상제님이 어느 외처에 출입하겠다는 정도로 알 뿐이었다.


바로 여기—, 공사 내용 가운데‘크나큰 세 살림’에 주목하자.‘ 세 살림’은
증산 상제님 어천 후에 고수부님이 세 번씩 장소를 옮겨가며 세 차례에 걸쳐 개창하게

될 도장(道場) 살림을 가리킨다.


그것이 고수부님이 감당할 몫이다.
고수부님의 앞날이 그만큼 험난하게 공사로 짜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고수부님의 위상이 높아지는

공사를 진행할수록 증산 상제님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차경석 성도였다. 그날도 수부소에서 고수부님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던 증산 상제님은
갑자기 경석을 불러“세숫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잠시 후 세숫물을 올리고 나가는 경석의 뒷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증산 상제님은,
 
“저 살기를 좀 봐라. 경석이 저 놈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되리니 극히 조심하라”라고 말했다.
 
증산 상제님이 차경석을 경계하는 말을 자주 하였으므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만 당장의 고수부님으로서는 실감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경석은 이종사촌동생일 뿐만 아니라 아홉 살 이후 친남매처럼 살아오고 있는 사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고수부님은 물론 친정어머니 박씨,

그리고 딸 태종까지도 차경석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한 인간으로서 고수부님은 그만큼 차경석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던 셈이다.
증산 상제님이 그와 같은 고수부님의 입장을 모를 리 없었다.

 

차경석을 경계하는 한편으로 증산 상제님은,
“그대 세 식구 먹은 밥값을 후히 갚아야 하리라”라고 말했다.
결국 고수부님의 입장에서 차경석에 대해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차경석을 경계하는 일과 그동안 졌던 신세를 갚는 일과….
 
유사 이래 원도 많고 한도 많았던 조선 민족—.

1908년 12월, 침략적 제국주의가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하수상한 시절,

그해 역시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불행과 불운, 불안, 울분, 분노의 해였다.
3년 전(1905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 이후 나라는 이미 강탈당했다.
 
여기는 전북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 차경석의 집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봉건적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조혼금지,
자유의사에 의한 과부의 재혼 등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유교사상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차경석의 집 두 칸 장방에서는 온갖 사회적 질곡 아래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근원적 해방을 상징하는 전대미문의 혁명적 의식 한 마당—천지공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날 주인공은 물론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
 
두 칸 장방에는 평소 증산 상제님을 믿고 따랐던 많은 성도들이 잔뜩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증산 상제님은 장구를 앞으로 메고 성도들의 눈길이 우르르 몰려오는 바로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성도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스승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증산 상제님은 이따금씩 파격적인 행동으로 성도들을 놀라게 하였다.

스승이로되 단순한 스승이 아니요, 인류의 스승이다. 인간이로되,

그냥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이다.


상제님이로되, 말로만 상제가 아니라 닥쳐오는 대환란의 후천 가을개벽을 예비하고
인류의 낙원이 될 후천 선경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는 천지공사를 집행해

왔던 개벽장 하나님이다.


그런 증산 상제님께서 무당의 모습으로 장고를 매고 태연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성도들의 궁금증이 막 폭발하려고 할 즈음 증산 상제님은,
 
“수부 나오라고 해라.”
 
종소리같이 청아한 목소리로 명하였다.
뒤이어 고수부님이 약속이나 한 듯 우쭐우쭐 춤을 추면서 나타났다.
잠시 동안 고수부님의 등장을 기다렸던 증산 상제님은 장구채를 휘두르며 두둥—, 장구를 쳤다.
 
“이것이 천지굿이라. 나는 천하 일등 재인(才人)이요,
너는 천하 일등 무당(巫堂)이니 우리 굿 한 석 해보세.”
 
증산 상제님은 판소리꾼이 아니리를 하듯 말하면서 다시 장구를 두둥 쳤다.
단순한 판소리 마당이 아니다. 종교적 의식행위로서 우주 주재자인 증산 상제님과

그의 반려자인 고수부님이 천지공사를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지공사란 앞 세상의 시간표, 이정표다(안운산, 『새 시대 새 진리 2』).
좀 구체적으로는 후천 개벽기를 맞이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가 짜는 프로그램이다.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이 천하 일등 무당이고 자신은 천하 일등 재인이며,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의식이 천지굿이라고 했다.

 

천지공사—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말씀’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저 화려한 비유법에 주의해야 한다.
일부 논자들은 언표만을 보고 고수부가 무당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한겨레 신문사 문화부,『 발굴 한국현대사인물 1』) 흔히 세속에서 일컫는 무당이라고 이해한다면 오독이다.
 
백 번 양보하여 고수부님이 무당이라고 한다면 큰 무당이요, 진짜배기 원형무당이다.
과연 근대 과학지식으로 샤머니즘 세계의 원형(archetype)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을까.
원래 샤머니즘의 세계는 우주의 대도 세계와 통해 있다.

 

무당은 대우주의 신령한 조화의 영기를 온몸에 충만히 받아내려 도통한 영적 성인(거룩한 사람)이다
(안경전,『 대도문답 2』). 증산 상제님은 말한다.

 

지금까지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온갖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원한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게 된다고(4:16). 또 말한다.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세우려면 먼저 해원이 돼야 한다고(4:19).

인류가 전멸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 후천 개벽기를 맞이하여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천지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원한풀이굿이다. 이름하여 천지 해원굿이다.
 
“이당저당다버리고무당집에가서빌어야살리라.”
 
천지굿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즈음 증산 상제님은 다시 노래하듯 말했다.
유유자적하듯 부르는 노래 같지만, 그 말씀 속에는 인류의 생사 문제가 달려있다.

후천 개벽기를 당하여 그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일등무당인, 천지해원굿의 주인공인

고수부님을 대도(大道) 연원의 뿌리로서,


생명의 근원으로서 모셔야 살아 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증산 상제님은 지금 천지굿이라는 해방의식을 통해 고수부님이야말로 당신의

종통대권을 이어받은 후계자로서 그 연원을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 나온 굿 한 석에 세계 원한 다 끄르고 세계 해원 다 된다네.
 
부부란 그런가. 증산 상제님이 장고를 둥, 두, 두둥— 울리는데

고수부님이 장단에 맞추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천지 굿판이 무르익는다. 신명이 절로 어우러진다.
잠자코 노래를 듣고 있던 증산 상제님은,
 
“그대가 굿 한 석 하였으니

나도 굿 한 석 해 보세.” 장고를 끌러 고수부님에게 주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고수부님이 장고를 받아 메고 두둥 둥 울렸다. 증산 상제님이 소리 높여 노래한다.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단주를 머리로 하여 세계해원 다 끄르니 세계해원 다 되는구나.
 
단주는 중국 요(堯)임금의 아들.

그는 수차례 요의 정벌전쟁에 참여하여 큰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고,
자기의 봉토도 갖고 있었으며, 당시 동방의 이족(夷族)과 서방의 하족(夏族)간의 전쟁을 종식시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다


(이재석, 『인류 원한의 뿌리 단주』).

그러나 요임금은 권좌를 물려주려 할 때 대신들이 천거하는 단주를 불초하다고 하여
천하를 두 딸과 함께 순(舜)에게 물려주었다. 역사는 순임금이 요임금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이상시대를 통치하였다고 기록한다. 과연 그러한가.
 
…단주는 총명하고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대장부였다.
증산 상제님은“요의 아들 단주가 불초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다”고 전제하면서“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온 천하를 대동세계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4:30)고 역사 기록자들을 꾸짖는다.
 
증산 상제님은 단주의 원한이야말로 원한의 역사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핵심사상 중 하나인 해원의 머리로 꼽는다.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2:24)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寃)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게 될지라.

 

대저 당요가 단주를 불초히 여겨 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보내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가 깊은 원을 품은지라 마침내 그 분울(憤鬱)한 기운의 충동으로 우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는 참혹한 일이 일어났나니


이로 말미암아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게 되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드디어 천지에 가득 차 세상을 폭파하기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고


또 천하를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時勢)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이 멸하는 참화를 당해 철천의 한(恨)을 머금고 의탁할 곳 없이
천고(千古)에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그 다음으로 하여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4:17)
 
풀어야 할 것은 여성의 원한뿐만이 아니다.
단주의 원한 이래로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게 되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천지에 가득 차게 되었고 이제는 폭발직전에 와 있다.


폭발한다면 지구는 물론 우주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온갖 진리와 사상,
학술, 종교로는 멸망직전에 놓여있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구원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활방은 지금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펼치고 있는 천지 해원 굿이다.
 
주목하자.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가 천하 일등 무당이요, 자신은 천하 일등 재인이라고 했다.
이 천지굿판에서 주인공은 고수부님이고 증산 상제님 자신은 보조역할이라는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천지 해원 굿을 통하여 유사 이래 쌓이고 쌓여온 천하 창생의 원한을 끌러주고
새로운 천지질서와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도(道)판을 열어 주었다.
그 천지질서와 도판의 첫 번째 주인이 바로 고수부님이다.

바꾸어 말하면 증산 상제의 종통대권을 이어
후천 가을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게 될 종통 연원자가 고수부님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다.
 
 
제9장 상제님과 태모님이 부르는
노래, 영변(寧邊) 수심가(愁心歌)
 
“나의 수부, 너희들의 어머니를 잘 받들라. …
수부의 치마폭을 벗어나는 자는 다 죽으리라.”
 
그해 겨울,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유난히도 바빴다.
누가 쫓는 것은 아니로되, 쫓기는 공사일정 때문이었다.
그날도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과 함께 수부소에서 중요한 공사를 행하고 있었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만이 할 수 있는 천지공사는 그 하나하나가 새로운 것이고,

그만큼 파천황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날 공사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 앞에 식칼을 내 놓고 자리에 벌떡 눕는 것이었다.
 
증산 상제님은“나에게 올라타서 한 손으로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 그 칼을 잡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나를 찌를 듯이 하여‘…꼭 전수하겠느냐?’하고 다짐을 받으소”하고 말했다.
 
아무리 천지공사요,

아무리 고수부님이라고 해도 증산 상제님 말씀대로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고수부님은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증산 상제님이“뭐하시는가. 시간이 다 가네”라고 재촉하였다.
 
고수부님은 역시 고수부님이다. 잠시 후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을 올라탔다.
그리고 증산 상제님이 시키는 대로 한 손으로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 식칼을 들고 찌를 듯이 하면서“…반드시 꼭 전하겠느냐?”하고 다짐을 받았다.
 
“예, 전하지요.”증산 상제님이 큰 소리로 대답한 뒤,
“이왕이면 천지가 알아듣게 크게 다시 하소”하고 말했다.
 
고수부님이 더욱 큰 소리로“꼭 전하겠느냐?”하고 다짐 받았다.
증산 상제님이“꼭 전하리다.”거듭 다짐을 했다.
같은 방법으로 세 차례에 걸쳐 다짐‘의식’이 이루어졌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종통대권 전수 공사다.
종통 전수 공사는 고수부님을 만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이 공사는 좀 특이하다.

식칼을 들고 찌를 듯이 하면서 종통대권을 전수받는 이가 전수하는 이에게 다짐을 받는 절차로

진행되는 것은 생사를 결단하는 자세로, 적어도 종통대권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의 의혹을 가질 수 없도록 재천명하는 의미가 있다.


같은 다짐을 세 번에 걸쳐 받았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천지가 알아듣게 다짐받으라는 것은 곧 천지 앞에서 맹세하는 의식일 뿐만 아니라

천지에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이 공사는 그만큼 절실한 가운데 이루어졌던 것 같다.
고수부님에게 종통대권을 전수하는 것은
곧 증산 상제님 당신의 도운의 앞날에 대한 대비책이기도 하였으므로
그만큼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날 이후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을 향하여“침식 절차와 모든 일들을 그대가 먼저 하소”하고 말했다.
이 후 증산 상제님은 천지공사를 하려고 할 때는 공사가 진행되기 전에
고수부님에게 그 가부를 물어서 응낙을 받은 후에야 행하였다. 공사뿐만이 아니었다.

 

식사를 할 때면 고수부님에게 수저를 주고 먼저 먹기를 권하였고
담배를 피울 때도 담뱃대에 담배를 넣고 불을 붙여“먼저 피우소”하고 권하여
고수부님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담배를 피웠다.

 

비록 천지공사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적어도 상제님보다도 앞선 분,
앞설 수 있는 분(물론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어느 분이 앞서고 뒤에 서는 분이 아니다.


정음정양의 원리로서 남녀동권시대의 전범이 되는 두 분을 우리는 반려자라고 표현한다)—,
그가 바로 고수부님이었다. 증산 상제님은 지금 고수부님을 한껏 올림으로써

그 위격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증산 상제님은 성도들을 향해 말한다.
 
“나의 수부, 너희들의 어머니를 잘 받들라. 내 일은 수부가 없이는 안 되느니라.
…수부의 치마폭을 벗어나는 자는 다 죽으리라.”
 
깊은 속내를 다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당신의 어천을 앞두고 증산 상제님은 이제 모든 권한을 후계자인 고수부님에게 전하고 있었다.
바로 그 사실을 공사에 참여한 성도들은 물론 천지신명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날 공사도 그랬다.
마주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증산 상제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고수부님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영문을 몰랐던 고수부님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증산 상제님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얘기하며 착했던가 모질었던가를 일일이 물었다.
 
“…옳지 못한 일에는 용서를 하오.”증산 상제님은 간절하게 빌었다.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에게‘인사대권을 전하는 예식’이다.
 
정읍 대흥리 수부소에서 중요한 도운 공사들을

진행하던 증산 상제님은 엄동설한풍을 뚫고 구릿골 약방으로 갔다. 상제님은 쉴 틈이 없었다.
당신이 정해 놓은 어천할 시간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증산 상제님으로서는 마지막 남은 판을 짜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날도 대공사의 깃발이 올라갔다. 성도 아홉 명을 벌여 앉혀 놓은 뒤
증산 상제님은“이제 도운을 전하리라”고 말했다.
이어서“대[竹]의 기운이 만물 중에 제일 크니 그 기운을 덜어 쓰리라”고 말한 뒤
김갑칠 성도에게“푸른 대 하나를 뜻대로 잘라 오라”고 명하였다.
 
잠시 후 김갑칠 성도가 잘라온 대나무의 마디 수를 헤아려 보는데 모두 열한 마디였다.
증산 상제님은 그 중에서 한 마디를 끊게 하여 무릎 밑에 넣고 남은 열마디 중 끝의 한 마디를 잡았다.
 
“이 한 마디는 두목이라.
왕래와 순회를 마음대로 할 것이요 남은 아홉 마디는 교(敎) 받는 자의 수효와 맞는도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증산 상제님은 김갑칠에게“밖에 나가 하늘에 별이 몇 개나 나타났는가 보라”고 하였다.
김갑칠이 밖에 나가서 보았는데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고
다만 하늘 복판이 열려서 별 아홉 개가 떠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그대로 전했다.
 
“그러하냐. 이는 교 받는 자의 수효에 응함이니라.
도운의 개시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
 
도운의 전개, 특히 도맥과 교맥을 받는 숫자를 대나무 마디를 들어 비유적으로 암시하는 공사다.
처음에 잘라낸 한 마디는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도통을 받아 정통을 계승하는 도의 줄기이고,
나머지 열 마디는 증산 상제님을 직접 추종한 성도들이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들은 말씀과 부분적인 가르침만을 가지고 나름대로 전한 교의 줄기이다.

 

남은 열 마디 중 상제님께서 손으로 잡으신 끝의 한 마디란 고수부님이 뿌리가 되고(落種),
이를 모태로 하여 아홉 교파(移種)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공사는 훗날 현실화된다.
 
앞에서 우리는 도운의 전개과정에서 고수부님이 ‘두목’이 되는 공사를 얘기하였다.
이 공사에서 대나무 열 마디 중 한 마디는‘두목’, 곧 고수부님이다.
나머지 아홉 마디(한 마디를 끊게 하여 무릎 밑에 넣었다)는 교를 받는 수효’로서 교맥의 계승자들이다.
그리고 처음에 잘라낸 한 마디가 있음에 우리는 주목한다. ‘
두목’고수부님으로부터 전해진 도운의 추수자 대두목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공사는 증산 상제님 어천 후에 현실화된다.
증산 상제님을 직접 추종했던 판안의 성도들은 물론 판밖의 인물들이 나타나

여기저기서 교파를 개창하게 된다.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普天敎), 김형렬 성도의 미륵불교(彌勒佛敎),
안내성 성도의 증산대도교(甑山大道敎), 문공신 성도의 교단, 박공우 성도의 태을교(太乙敎),
이치복 성도의 제화교(濟化敎), 김병선 성도의 교단, 김광찬 성도의 도리원파(桃李園派) 등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초장봉기지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초장봉기지세’란
중국 진나라 말기 진시황의 포학을 타도하기 위해 봉기했던 초패왕 항우와 초나라

장수들의 기세를 일컫는다.

 

증산 상제님의 이 공사로 인해 고수부님께서 씨를 뿌린 도운이 차경석 성도에 의해
이종—다른 교파의 형성도 차경석 성도의‘배신’으로 말미암아 도(道)판이 여러 개로 분열되는

 

결과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큰 틀에서 이종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이 되면서
짧은 시간에 여러 개의 교파로 나뉘고 추종하는 신도들 또한 수백만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공사는 증산 상제님 어천 후에 고수부님이 열어가게 될 도운의

앞날이 험난함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날 공사를 마친 증산 상제님은 김형렬 성도에게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행이라.
이 뒤에 네게 알리리라”라는 말을 남긴 뒤 훌쩍 떠났다. 정읍이란 물론 정읍 대흥리 수부소 주인

고수부님을 가리킨다. 그날 수부소를 찾아온 증산 상제님은 오랜만에

고수부님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결론적인 얘기지만 증산 상제님은

지금 부부로서 마지막 인간의 정을 고수부님에게 쏟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내가 죽으면 네가 머리를 풀겠느냐,

아니 풀겠느냐?”고 물었다.
 
“어찌 머리를 풀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염려마소서.”고수부님이 대답했다.
잠시 후 증산 상제님은“영변(寧邊)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라”하고 음성을 가다듬어 먼저 불렀고

고수부님도 뒤따라 불렀다.
 
소슬 동풍(東風)에 궂은비는 오는데 울퉁불퉁 저기저 남산(南山) 보아라.
우리도 죽어지면 저기 저 모양되리라.(10:4)
 
증산 상제님은 계속 대흥리 수부소에 머물렀다.
그러나 대공사를 행하는 중이었으므로 고수부님은 당신 곁에 있어도 말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이 무렵 증산 상제님은 아예 당신의 어천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고수부님과 함께 수부소에 있을 때 증산 상제님은,
 
“내가 이 세상에 있으면 삼계의 모든 일이 지연될 것이다.
이제 천상에 가서 공사를 펴내어 빨리 진행케하고 오리니 기다리지 말라.
공사를 마치면 돌아올 것이다”고 말했다.
 
고수부님은 증산 상제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고수부님은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증산 상제님이 어천한 뒤에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무렵 증산 상제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인간으로서, 부부로서,
도의 계승자로서 그리고 도의 반려자로서의 고수부님에 대한 정감을 애틋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천의 순간이 그만큼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이리라.
그날도 고수부님과 함께 있던 증산 상제님은“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하고 물었다.
 
“어찌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하냐. 암. 그래야지.”잠자코 고수부님의 대답을 듣고 있던

증산 상제님은 글 한 수를 조용히 외워주었다.
 
無語別時情若月(무어별시정약월)이요 有期來處信通潮(유기래처신통조)라.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10:7)
 
방안은 처연한 분위기가 감돌고 무거운 침묵이 짓눌렀을 것이다.
잠시 후 증산 상제님은,
 
“네게 세 가지 큰 병이 있으니 그중 악한 병이 단독(丹毒)이라.
내가 단독을 빼주마”하고 고수부님 가까이 다가앉았다.
 
“내가 천상에서 신씨보고 잘 맡아 보라 하였더니 병두 가지를 붙여서 보냈구나.”
 
신씨란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을 만나기 다섯 달전에 사망한 전남편을 가리킨다.
증산 상제님은“독기를 뺀다”하며
고수부님의 손등을 피멍이 질 정도로 한참 동안 깨문 뒤“이제 단독은 염려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병도 없애 주소서.”
“모든 일에 한도가 있고 책임이 있으니. …나머지는 이후에 치유할 사람이 있다.”증산 상제님이 말했다.
 
부부의 정을 나누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천지공사의 일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고수부님에게‘나머지 병’이 있고, 그것을‘이후에 치유할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다.


누구인가, 고수부님의‘나머지 병’은 무엇이고, 그 병을‘치유할 사람’은?
고수부님은 태종을 낳은 뒤부터 복통을 자주 일으키곤 하였다. 혈적증이었다.

 

훗날 고수부님 도장의 수석성도 고민환이 산약(散藥)을 써서 치료하게 된다.
고수부님의‘나머지 병’이란 바로 그 혈적증이지 않을까. 확신할 수는 없으나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을 일단 신씨에게 맡기신 이후 붙여진(생긴) 병이라면 혈적증이 확실한 듯하다.
 
천지공사와 도수의 목적은 무엇인가.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는 미래 역사 속에서 인사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공사가 현실화되는 과정은 어떠한가. 공사 집행 당시에는 그 도수를 맡는 주인공(당대 성도들)이 있고
그 도수는 역사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사대권자에게 전해지는 형태가 된다.


이것이 하나의 법칙이라고 할 때 고수부님의‘나머지 병’은 혈적증이고,

그 병을‘치유할 사람’은 고민환 성도가 되지만, 천지공사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고수부님으로부터 종통대권을 이어받아 인사대권을 행사하게 될

증산 상제님의 대행자—인사대권자가 되는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 당대뿐만 아니라 고수부님 이후,
그러니까 당신의 도운이 펼쳐질 전 역사적 과정을 공사로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공사는 계속 된다.

그날도 증산 상제님은 성도 수십 명을 수부소에 불러 모았다.
성도들이 모였을 때 증산 상제님은『대학(大學)』과 여러 주문, 부서(符書)를 수습하여

고수부님 앞에 놓게 하였다. 공사가 시작되었다.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으로 하여금 동쪽을 향해 앉아서‘시천주주’를 스물한 번 외우라고 하였다.
주문 암송이 끝난 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서로 마주보고 절을 한 뒤 천지에 고축하였다.
이어 증산 상제님은 글 한 수를 읽어 주었다.
 
吾君誓約重十山(오군서약중십산)하니 踏盡高高太乙壇(답진고고태을단)이라
 
나와 그대가 맹세한 언약 온 세상 산보다 무겁고
높고 높은 태을궁으로 인도하여 천하창생을 건지느니라.(10:8)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언약 중의 하나는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천지대업을 맡아 처리하면서 중도에 변치 않겠다는 것이었다.
천지대업이란 후천 가을개벽기에 천하창생을 구원하는 일이고,


여기서‘태을궁’이란 천상의 높고 높은 조화세계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이 공사는 닥쳐오는 후천 가을 개벽기에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열어주는
인류구원의 경계를 이야기한 것이다. 글을 읽어준 뒤 증산 상제님은,
 
“내가 수만 리 밖에 가 있으면 어찌하겠느냐?”하고 물었다.
“어디든지 찾아가겠습니다.”
 
증산 상제님은“오지 못하리라”하고 잠시 뜸을 들인 뒤“내가 찾아오리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며칠 뒤 고수부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애틋한 정을 나누던 증산 상제님은
갑자기“임옥(臨沃)에서 땅빠진다!”라고 천둥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증산 상제님의 말 한 마디가 예사로울 수는 없다.
임옥은 전북 임피(臨陂)ㆍ옥구(沃溝)—. 임옥에서 땅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고수부님이 임피ㆍ옥구에 있는 오성산에서 선화(仙化)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증산 상제님의 공사는 그렇게 치밀하게 짜여지고 있었다.


고수부님이 선화하게 되는 것까지

공사로 진행한 증산상제님은“네가 나를 꼭 믿느냐?”하고 다짐을 받았다.
고수부님은“꼭 믿습니다”하고 굳게 맹세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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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상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1987년 5월 월간《문학정신》을 통해 소설가 되었다.
현재 증산도상생문화연구소 문예창작부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구논저《동아시아 근대소설과 민족주의》ㆍ

《손창섭소설 연구》, 장편소설《임진강》ㆍ《아리랑》ㆍ《붉은 까마귀》ㆍ
《풀잎은 바람에 눕지 않는다》ㆍ《태양인 이제마》, 논문〈최인훈《광장》의 사상의학적 구조〉ㆍ

강증산, 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생애와 사상-〉ㆍ〈수부, 천지의 어머니 - 생애와 사상-〉등이 있다.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www.jsd.re.kr
(301-050) 대전시 중구 선화동 356-8번지 TEL.(042) 222-0680~4 상생의 새 진리,
증산도의 세계화·대중화를 위해 연구·저술·번역 사업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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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8.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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