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태모 고수부님 일대기 연재 제3회] 거룩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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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대권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울창한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한 빈 가지만 드러낸 1907년 동짓달 초사흗날—.
정읍 대흥리 한복판에 위치한 차경석 성도의 집 안팎은 정적이 흐를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였다.

 

고판례 부인에 대한 수부 책봉 예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좀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증산 상제님과 고부인의 혼례식 날이다.
혼례식이되 세속적인 차원의 그것이 아니라


증산 상제님과 수부님이 우주 만유의 어버이됨을 천지에 선포하는 의식에 다름 아니다.

또한 정음정양의 후천 세상을 여는 천지대도의 수부 공사이며
상제님 대도(大道)’의 종통을 전수하는 예식이다. 그랬으므로 혼례식 장면 또한 특이하기만 하였다.
 
두 칸 장방에는 30여 명의 성도들이 증산 상제님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다.
이윽고 증산 상제님이 차경석을 향해“수부 나오라 해라”고 말했다.
일찍이 증산 상제님은“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默) 하나라도 천지공사가 아님이 없고
잠시도 한가한 겨를이 없이 바쁜 줄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3:18)고 했다.


따라서 증산상제님이 수부라고 지칭했으므로 고부인은 이미 수부님이 되었다.

잠시 후 고수부님이 천천히 들어왔다.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을‘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다’는 앞부분 말씀이다.
고수부님이 이미‘예정된 수부’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에서 우리는 고수부님이 천상에서부터 증산 상제님과 큰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고수부의 말씀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런데 삼계대권을 갖고 있는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를 찾기 위해 15년 동안 정력을 들이는 동안‘
예정된 수부’였던 고수부님이 혼인을 하고 딸까지 두었다면, 그 이유가 궁금하다.
 
증산 상제님의 핵심사상 중 하나인 해원사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수부가 무엇인가.
고수부님의 거룩한 생애를 더듬어 가면서 우리는‘수부’라는 위격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수부란“선천 세상에 맺히고 쌓인 여자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정음정양의 새 천지를 여시기 위해 세우신 뭇 여성의 머리요
인간과 신명의 어머니”(6:2)이며“온 인류의 원한과 죄업을 대속(代贖)하시고
억조창생을 새 생명의 길로 인도”(11:1)하신 분이다.


이와 같은 개념에 유의할 때,

지금까지 얘기해 온 고수부님의 고난 가득한 삶 자체가 원과 한이 맺힌 여성,
나아가서는 인류의 원한과 죄업을 대속하시는 삶에 다름 아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 살 나이에 조혼을 했으며
또 남편과 사별한 청상과부로서, 홀어머니로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고수부님의 삶은 뭇 여성들의

해원의 전범이 된다. 고수부님이 겪는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원한과 죄업을 대속’하는 폭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 될 터. 증산 상제님은 바로 그런 큰 고수부님을 찾기 위해

15년 동안 정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겠는가.
 
 
증산 상제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또 하나는 뒷부분이다.
상제님께서는 천지대업을 고수부님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이 공사에서는 증산 상제님이

도문을 개창한 이래 누구에게 후계사명을 내리고 종통대권을 전했는가
하는 문제의 핵심을 확인할 수 있다.

 

천지대업이 무엇인가? 천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주재,
통치자가 인간으로 와서 만유생명을 건지는 일이 될 것이다. 종통(宗統)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증산 상제님이 전한 후천 선경 건설의 도통맥이다.
증산 상제님은 지금 고수부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하고 종통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과 팔짱을 끼고 방에서 나왔다.
성도들이 붉은 책과 누런 책 각 한 권씩을 번갈아 깔아 주었고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그 책을 밟으며 마루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걸어갔다.
마당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춘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을 향해

“남쪽 하늘의 별을 보고 네 번 절하라”고 말했다.
 
고수부님이 절을 한다. 천지신명에게 수부됨을 고하는 의식일 터이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다시 책을 밟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시 방 안—. 증산 상제님은 갑자기 고수부님을 향해“웃통을 벗고 누우라”고 말했다.
일반인의 상식수준에서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경계를 측량하기란 불가능할 터이다.
많은 성도들이 보고 있는 천지공사 현장에서 고수부님에게 윗저고리를 벗고 누우라니!
 
고수부님은 과연 고수부님이다.

고수부님은 저고리를 벗고 누웠다.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의 배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한다.
 
“경석아, 장도칼 가져오너라.”차경석 성도가 장도칼을 가져왔다.

증산 상제님은 장도칼을 들고 곧 찌를 듯이 고수부님의 목에 들이댔다.
 
“죽어도 나를 섬기겠느냐, 천지대업을 하는 중도에 변하지 않겠느냐?”
“변할 리가 있으리까.”
 
고수부님의 대답을 듣고 증산 상제님은“그러면 그렇지!”만면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예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증산 상제님이 직접 방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고수부님을 향해“내 배 위에 앉아서 그와 같이 다짐을 받으라”고 말했다. 고
수부님은 증산 상제님의 배위에 올라앉았다. 오! 온 세상에 누가 있어 상제님의 배위에 올라탈 수 있단 말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오직 한 분—, 증산 상제님의 반려자 고수부님만이 가능한 일이다.
 
“…나를 일등으로 정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고수부님은 다짐을 받아내듯 물었다.
 
증산 상제님은“변할 리가 있으리까.
의혹하지 마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符)를 써서 불사르며 천지에 고축하였다.
 
이날 천지공사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공사를 마치면서 증산 상제님은“대인의 말은 천지에 쩡쩡 울려 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으리라”고 말했다.

 

천지공사에 증인이 있어야 한다.
증산 상제님은 이도삼(李道三), 임정준(林正俊), 차경석 세 사람으로 하여금 공사의 증인을 세웠다.
그날 예식이 끝났을 때 증산 상제님은 성도들은 물론 천지신명들을 향해 확인하듯 말했다.
 
“…이것이 천지대도(天地大道)의 수부 공사(首婦公事)니라.
만백성이 부모가 되려면 이렇게 공사를 보아야 하느니라.”
 
 
그랬다. 일반인에게는 특이하게 보일 수 있는 예식이지만,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만백성의 부모’로서 당신들의 신원에 맞는 의식을 행한 것이다.
이 의식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첫째, 칼을 들어 목에 대고 다짐을 받아냄으로써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서로 간에 생사를 결단하는 자세로 사명을 다하겠다는

맹약을 받아냈다는 점이다.

 

둘째, 증산 상제님이 고수부님의 배위에 올라탔고
고수부님이 같은 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정음정양, 평등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행위가‘만백성의 부모’로서 전범이 된다고 했을 때,
이와 같은 의식에는 남녀동권시대를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셋째, 특히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의 배위에 올라타고 장도칼을 그의 목에 대고
맹약을 받아냄으로써 증산 상제님이 선언하는 후천 음존시대(陰尊時代)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다.
 
그날 수부 공사가 끝날 무렵이다.
증산 상제님은 갑자기 고수부님을 향해

“우리 내외 하나 되자!”하고 천지가 무너지도록 큰 소리를 질렀다. 성도들은 깜짝 놀랐다.
증산 상제님은 성도들의 반응을 모르지 않는다는 듯“세상 사람이 내가 누군지만 알려 해도

지각이 있어야 하느니라”하고 말했다.
 
고수부님은 이제 천지의 어머니가 되는 수부님이 되었다.
수부에게는 수부의 법도가 있을 터.
 
상제님께서 수부님께 수부의 법도를 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나는 서신(西神)이니라.
서신이 용사(用事)는 하나, 수부가 불응(不應)하면 서신도 임의로 못 하느니라.”하시고
여러 가지 공사를 처결하실 때 수부님께 일일이 물으신 뒤에 행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부의 치마 그늘 밖에 벗어나면 다 죽는다.”하시라.(6:39)
 
그날 이후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에게 수부로서 맡아야 할 모든 일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문명(文命)을 쓸 때도 반드시 고수부님의 손에 붓을 쥐게 한 뒤 등 뒤에 겹쳐 앉아 손목을 잡고 쓰게 하였다.
또한 차경석의 집에 고수부님의 처소를 정하여 머물게 하고 ‘수부소(首婦所)’라 부르게 하였다.
 
 
그 해 겨울의 대공사
 
“그대와나의합덕으로삼계(三界)를개조하느니라.”
 
고판례께서 수부에 책봉됨으로써 천지공사가 순서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수부를 정하지 못한 연고로 도중에 지체되었던 일이 허다했던,


산적해 있던 수부 책임하의 중대한 공사”(3:209)가 이제 고수부님이 책봉됨으로써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된것은 천지공사를 주재하는 증산 상제님은 물론이요 천지 만유의 입장에서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지공사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증산 상제님으로서는

마음이 급하고도 급했을 터였다.
 
고수부님이 천지공사의 동반자가 된 이후

증산 상제님은 당분간 정읍 대흥리 수부소에 머물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공사는 봇물 터진 듯 바쁘게 진행되었다. 15년 동안 정력을 들인 끝에 만난 고수부님이었으므로

그동안 지연되었던 공사를 처리하기에 바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무렵 증산 상제님이 행한 공사 주인은 대부분 고수부님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고수부님이 주인이 된 공사가 십중팔구는 도운(道運)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증산 상제님이“수부 책임하의 중대한 공사가 산적해 있다”(3:209)고 했던 바로 그 공사일 것이다.


천지공사는 크게 도운 공사와 세운(世運) 공사로 구분된다.
전자는 상제님 도의 종통 계승의 운로를 정하여 광제창생, 통일천하 대업완수의 칙령을 내리는 공사요,

 

후자는 세계질서의 움직임, 운명을 천지도수로 정하여인사로 전개되게 하는 공사이다.
따라서 이 무렵 진행되는 고수부님 중심의 공사가 도운 공사와 관련됐다는 것은
곧 고수부님에게 종통대권 후계사명이 맡겨졌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천지공사에 다름 아니다.
 
그날도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천지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증산 상제님은 남쪽 방향을 등지고 북쪽을 향하여 섰다. 고수부님에게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여 서게 하였다. 두 분 사이에는 술상이 놓여져 있었다. 막이 오르고 공사가 진행된다.
증산 상제님은 많은 글들을 써서 술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고수부님과 함께 서로 마주 보고 절을 한 뒤 증산 상제님은 말한다.
 
“그대와 나의 합덕으로 삼계(三界)를 개조하느니라.”

고수부님을 향한 증산 상제님의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였다.
어느 날 증산 상제님은 한시 한 수를 적어 고수부님에게 건네주며 당신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驅情萬里山河友(구정만리산하우)
 供德千門日月妻(공덕천문일월처)
 明月千江心共照(명월천강심공조)
 長風八隅氣同驅(장풍팔우기동구)
 
 정을 만 리에 모니 산하가 내 벗이 되고
 덕을 온 천하에 베푸니 일월이 내 짝이 되는구나.
 강마다 밝은 달은 내 마음을 함께 비추고
 온 천지에 큰 바람은 내 기운을 함께 모는구나.(6:43)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딸 하나만 데리고 혼자 살고 있던 고수부님이 증산 상제님을 만나 수부가 되고,
수부소 주인이 된 뒤부터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수부’를 이해할 수 없는 동네사람들에게는 남편과 사별한 지 다섯 달밖에 되지 않은 청상과부가

개가한 것으로 보였을 터이기 때문이다.
 
증산 상제님도 동네 인심을 모르지 않았다. 이미 그정도는 예상하였을 터였다.
증산 상제님은 차경석의 집 마당 한가운데 청수를 올리고 공사를 보았다.
이후 동네에서는 고수부님을 두고 더 이상 수군거리는 일이 없어졌다.
증산 상제님이 공사로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잡음을 단번에 제거해버린 것이었다.
 
증산 상제님과 성도들이 고부 운산리(雲山里)에서

체포되어 고부경무청에 수감된 것은 그 해가 저물기 직전이었다.
물론 이 소식은 고수부님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것은 고수부님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자초지종은 그러하였다.
 
이 무렵 증산 상제님은 고부 와룡리 문공신(文公信, 1888~1954) 성도와
운산리 신경수(申京守, 1838~1923) 성도의 집을 왕래하며 바쁜 공사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터에 상하귀천이 따로 없었다.

조선인의 기개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병으로 증명해 주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남의 나라를 강탈하여 주인행세를 하려는 일본제국주의 당국은 조선인이 몇 명만 모여 있어도
의병혐의를 씌워 체포해 가는 하수상한 시절이 되었다.

 

그해 12월 26일 새벽 증산 상제님은 신경수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무장한 순검 수십 명이 신경수의 집을 포위한 가운데 증산 상제님을 의병혐의로 체포하여

고부 경무청으로 끌고 갔다.
 
증산 상제님의 수감소식을 알았다고 해도

고수부님으로서는 당장에 어떤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동안 진행된 천지공사를 통해 이미 수부사명에 대해 알고 있었으므로 증산 상제님이 경무청에 갇혔다면,
그것도 천지공사의 일환이라고 짐작하셨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증산 상제님은‘후천선경 건설의 진주천자 도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주천자 도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도전』5:196 ~ 5:226을 참고).
그러나 옥바라지를 하는 차경석을 통해 들리는 얘기는 점점 절망적이었다.
 
이에 순검들이 계속하여 심문하며“네가 누군데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하니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나는 강 천자(姜天子)다!”
하시매“어찌 강 천자냐?”하니“너희가 나를 강 천자라 하니 강 천자이니라.
나는 천하를 갖고 흔든다.”하시거늘 형렬과 자현은 이 말씀을 듣고
혼비백산하여“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하고 성도들 가운데 누군가는“저, 죽일 놈 보게.”하며 욕을 하니라.
 
이 때 순검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죽검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며 갖은 욕을 보이는데 공
신이 보니 상제님의 가슴이 갑자기 20세 처녀의 젖가슴처럼 부풀거늘 순검들도 놀라 매질을 멈추니라.
잠시 후 혹독한 매질이 계속되매 상제님께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안구가 튀어나온
채 혀를 물고 혼절하시거늘 순검들이 비로소 상제님을 대들보에서 내려 구류간으로 옮기니라.(5:213 ; 5:214)
 
1908년, 그 해에도 조선의 운명은‘추락하는 날개’와 같았다.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했던 13도창의군이 일본군의 선제공격으로 패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새해 벽두였다.


정읍 대흥리 수부소 텅 빈 방을 홀로이 지키는 고수부님의 외로움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증산 상제님이 석방된 것은 수감된 지 38일 만인 그해 2월 4일 경칩절이었다.
당시 고수부님은 온 신경을 증산 상제님을 향해 열어 두었을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증산 상제님은 고부 객망리 본댁으로 갔다.
본댁에서 3일 동안 머문 뒤 차경석을 대동하고 와룡리 황응종의 집으로 옮겼다.
이때 증산 상제님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차경석을 보고“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꿈만 꾸는 자도 죽으리라”고 경고했다.

 

증산 상제님 어천 후 고수부님을 염두에 두고 차경석을 경계하는 것이지만,
당장에 경석으로서는 증산 상제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을 터였다.
이후 증산 상제님은 차경석을 데리고

다시 객망리 본댁으로 갔다가 주막에서 술을 마신 뒤 고수부님이 기다리는 대흥리로 향했다.
 
몇 달 만에 증산 상제님을 만난 고수부님의 내면풍 경이야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반갑고 비통하고…. 경무청에서의 가혹한 고문, 감옥살이,
그리고 추 종했던 성도들의 배신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도 상했을 증산 상제님이다.
그날 이후 증산 상제님은 대흥리 수부소에머물렀다. 그동안에도천지공사는계속되었다.
 
그날의 공사 주인은 고수부님이었다.
증산 상제님은 성도들 10여 명을 차경석의 집 마당에 늘여 세운 뒤에 고수부님과 더불어 마루에 앉아 있었다.
차경석 성도에게 망치를 들게 하고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을 치며 동상례(東床禮)를 받으라고

한 뒤 방안으로 들어갔다. 동상례란 일명 신랑다루기 또는 신부다루기를 가리킨다.

 

전통 혼례에서 신랑이 대례 절차를 마친 후 신부 집에 재행했을 때
동년배의 동네 청년들이나 친척들이 신랑을 매달거나 발바닥을 때리는 등 고초를 겪게 하는

일종의 통정(通情)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지낸 이튿날 점심때를 전후하여 행한다.
 
감옥에서 나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증산 상제님이 혼례식을 치른 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굳이 동상례를 자청해서 치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는 확인할 수 없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치르는 동상례가

곧 천지공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보다 난감한 것은 차경석 성도일 터였다.
상제님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차경석은 망치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신랑 강증산’을 향해 동상례를 받았다.
 
동상례가 한창 진행됐을 때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고수부님은“죽으면 한 번 죽을 것이요,
두 번 죽지는 못하리라”라고 말하며 차경석을 가로막았다. 증산 상제님의 의중을 알 수는 없으나

고수부님은 이미 당신의 뜻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을 크게 칭찬했다.
잠시 후 증산 상제님은 안내성 성도에게 망치를 들게 하여 차경석을 치며“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안내성은 증산 상제님의 성도들 가운데 가장 우직하게 믿음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안내성이 망치를 들었다. 경석은“역모를 하겠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증산 상제님 앞에서 역모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차경석이다.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물론

그곳에 있었던 참여자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모두 천지공사의 재료가 된다.
차경석이 고수부님 앞에서 역모를 하겠다고 외친 그 자체도 천지공사다. 물론 이 공사는 훗날 현실화될 것이다.
고수부님이 수부로 책봉된 이후 증산 상제님은 자주 차경석을 경계하는 공사를 집행하였다.

 

증산 상제님 어천 후 종통대권 후계사명을 맡은 고수부님이 전개하게 될 도운 과정에서
차경석이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경계하는 공사였다.
경석의‘역모’를 확인한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을 향해 돌아앉았다.
 
“네 나이는 스물아홉이요, 내 나이는 서른여덟이라.
내 나이에서 아홉 살을 빼면 내가 너 될 것이요, 네 나이에 아홉 살을 더하면 네가 나 될지니

곧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니라.”(6:46:6~8)
 
증산 상제님이 곧 고수부님이 되고, 고수부님이 곧 증산 상제님이 된다고 했다.
하느님의 음성으로, 몸짓으로, 말씀으로… 천지공사로! 말할 나위 없이 고수부님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공사다.
증산 상제님의 후계사명을 재천명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한 이 공사를 동상례 공사를 행하는 장소에서,
특히 차경석의‘역모’공사에 이어 진행하였다는 것은 주목된다.

고수부님으로의 종통계승 재확인,

차경석을 경계하는 천지공사는 이후에도 몇 차례 계속된다.
 
그날 공사도 마찬가지였다.

태인 새울에서 천지공사를 보았던 증산 상제님이 다시 대흥리 수부소를 찾아왔다.
증산 상제님은 고수부님을 보고“쌀을 많이 팔았는가?”하고 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고수부님은 “알지 못합니다”고 대답했다. 내용인즉 그러하였다.
며칠 전 태인 새울에서 공사를 행하고 있을 때 증산 상제님은 차경석에게 돈을 주며“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으라”고 말했다. 경석은 그 돈을 고수부님에게 알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써버렸다.


증산 상제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인에서 차경석에게 수부천거를 명하신 이후
차경석은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산 상제님은이 일이 있은 후

차경석에게 부탁하지 않고 모든 일을 고수부님과 직접 의논하여 조처하게 된다.
증산 상제님이 당신의 후계사명에 대해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을 사전에 정리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증산 상제님은 성도들을 데리고
태인 성황산(城隍山)에 올라 치마바위(일명 장군바위)에 가서 몇 가지 공사를 행하였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증산 상제님은 별안간“치마 밑에서 대도통 난다”고 말했다.


이 공사에서‘치마’는 고수부님을 비유하는 것이다. 고수부님 밑에서 도통이 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수부님으로부터 도운이 전개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정읍 대흥리로 돌아온 증산 상제님은“정읍에 천맥(阡陌) 도수를 붙인다”고 말하며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공사를 행한 후에“여기가 못자리니 이것이 천하파종(天下播種) 공사니라”고 말했다.
고수부님이 거처하고 있는 정읍이 못자리가 되고, 우주 주재자인 증산 상제님이 이곳에

천하파종을 하는 도수를 붙였다면 어떻게 되는가.

 

말 그대로 당신의 종통계승자인 고수부님이 이곳에서 도문을 개창하게 되고,
그 도문에서 도운이 천하로 뻗어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공사이다.
이 공사를 이어받은 고수부님은 훗날 이종(移種)과 추수 공사를 하게 된다.
그 공사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
 
그해 4월 증산 상제님은 전주군(全州郡) 구릿골(오늘날의 김제군 청도리 동곡)에 살고 있는
김준상(金俊相,: 1878~1966)의 아내가 고질병으로 앓고 있던 발의 종창을 치유해 주고
그 대가로 머릿방 한 칸을 얻어 약방을 차렸다.


구릿골 약방개설은

증산 상제님의 천지 공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루게 된다.

증산 상제님은 차경석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의 직업에 대해 ‘의원노릇을 한다’(3:180)고 하였고,

의원이되 천지의원(9:21)이라고 했다. 구릿골 약방개설은 천지의원인 증산 상제님으로서 큰 병을 앓고 있는
천지의 병을 뜯어고치는 천지공사의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다.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2:16)
 
구릿골 약방을 개설한 뒤 증산 상제님은 주로 약방에서 머물면서 천지공사를 행하고 있었다.
고수부님은 여전히 정읍 대흥리 수부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떨어져 있었다고 이해한다면 오독(誤讀)이다.
증산 상제님 없는 천지공사가 없듯이

1907년 이후부터는 고수부님 없는 천지공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지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은 늘 함께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천지공사를 진행하는 증산 상제님의 말씀에 고수부님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천지공사라는 큰 틀안에서 볼 때 그곳에는 고수부님이 함께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어떨까. ‘천지공사’호라는 큰 배가 있다. 사공은 증산 상제님이다.

당신이 노를 젓는 그 배에는 고수부님이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배가 정박할 때마다 다른 손님들이 타고 내릴 것이다.
그러나 사공인 증산 상제님과 당신의 반려자인 고수부님은

 때로는 고수부님의 육신이 직접 배에 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내리지 않고 망망한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다.
 
 
그날도 천지공사호는 잠시 정박했던 포구를 떠나 거친 바다를 향해 출항한다.
증산 상제님은 구릿골 약방 벽 위에 사농공상 음양 기동북이고수 이서남이교통

(士農工商陰陽氣東北而固守理西南而交通)’이라는 글을 써 붙였다.
글은 김일부의『정역』에 있는 한 구절이다.

 

동양철학의 심오한 내용이라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지만
좀 거칠게 이해한다면 태시(太始)에 천지우주가 열릴 때부터
우주 1년의 순환과정에서 기(氣)는 동북으로 굳게 지키고 변화의 새 원리[理]는

서남에서 크게 교통된다는 뜻이다.


왜 그러한가? 라는 물음을 제기할 때, 번역의 뜻만 가지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문장에는“동양의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최고의 신비이자
최고로 난해한 문제”(윤창열, 『우주변화의 원리 강의(1)』)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역』한 구절과 함께 많은 글을 써 벽에 붙이고 그 위를 흰 종이로 겹쳐 붙인 뒤에

증산 상제님은 김형렬 성도에게“그 위에 흰 종이로 포개어 붙이라”하시고
“오늘은 천지대공판을 떼는 날이니 자네들은 그렇게 아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준상에게“보시기 한 개를 가져오라”하고
김자현에게“마음 가는 대로 보시기를 종이 바른 곳에 대고 도려 떼라”고 하였다.
김자현이 명하는 대로 하였는데 그 속에서‘음(陰)’자가 나왔다.
 
증산 상제님이“옳다! 천지도수가 맞아 들어간다”고 말했다.
“ 음과 양을 말할 때에 음 자를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地天泰)니라.
너의 재주가 참으로 쓸 만하구나. 옳게 떼었다. ‘음’자의 이치를 아느냐?
사람은 여자가 낳는 법이므로 옳게 되었느니라. 후천에는 음(陰)도수가 뜨게 되느니….”
 
지천태’란『주역』의 열한 번째 괘. 원래 양 기운은 상승하고
음 기운은 하강하는 성질이 있는데 지천태는 음 기운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양 기운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 음양이 자유로이 상호 교류됨으로써 조화가 일어나 안정을 누리게

되는 평화의 괘이다. 지금 증산 상제님은 음을 강조하고 후천에는 음 도수가 뜨게 된다고 하였으므로
지천태는 곧 후천의 괘가 된다.
 
아, 우리는 알고 있다. 고수부님은“후천 음도(陰道)운을 맞아
만유 생명의 아버지이신 증산 상제님과 합덕(合德)하시어 음양동덕(陰陽同德)으로
정음정양의 새 천지인 후천 오만년 조화 선경을 여시는”(11:1) 분이라는 것을.
여기까지 이해되면, 우리는 이 공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다름 아닌 고수부님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증산 상제님은“약장(藥欌)은 곧 안장롱(安葬籠)이며 신주독(神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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